"어머님, 내일 오빠가 같이 못 가서 버스 타고 가야 해요. 제가 첫차 표 끊어 놨어요. 6시 50분 차예요"
3달이 참 빨리도 돌아온다. 3월에 병원을 다녀왔던 게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병원에 가는 날이다. 3달에 한번 어머님은 서울에 있는 류머티즘 진료를 보는 대학병원으로 정기 검사를 받으러 가신다. 나는 어머님과 함께 다닌 지 5년이 좀 넘은 것 같고, 어머님은 서울로 병원을 다니 신지 20년은 되셨다고 하셨다. 그렇게 어머님과 세 달에 한 번씩 서울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온다.
언제부터 병원을 혼자 다니셨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있고 아들도 셋이나 있는데 가끔 가는 병원을 같이 가자고 한번 안 하시는지 의아스러웠다.
“그냥 버스 타고 가면 되지”
어머님의 대답이었다. 서울까지 혼자 가게 두는 남편이, 아들들이 조금은 야속할 만도 한데 아무렇지 않아 하셨다.
그래도 좀 마음이 그랬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3달에 한번 어머님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동서울 터미널에서 가서 어머님을 만나 병원을 가고 다시 터미널에서 버스를 태워 드리고 수원으로 돌아왔다. 직장을 다닐 땐 휴가를 냈다. 병원을 가는 날이 수요일이라 하루 쉬면 일주일도 금방 가서 좋았다. 문경으로 내려와서는 남편과 함께 차로 병원을 다녀온다. 그리고 오늘처럼 남편이 일이 있는 날엔 어머님과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로 여행을 간다.
사실 나는 살가운 편이 아니라서 나 같은 딸년이라면 딸이 필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마나, 아빠한테 무뚝뚝하다. 당연히 살가운 며느리도 아니다. 문경으로 왔지만 그리 자주 시댁에 가지도 않고, 안부 전화를 드리거나 하는 일도 드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머님 병원 가는 길만큼은 예외였다. 세 달에 한번 어머님과 함께 병원에 가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병원에 따라나서게 된다.
병원을 가며 버스를 타는 두어 시간 동안 요 근래 집에서 있었던 일들, 얘기하다 문득 생각나는 옛날이야기들을 신나서 하신다. 그게 벌써 5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젊어서 고생한 이야기나 남편 어릴 적 이야기들, 동네에서 있었던 일, 어쩌면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들을 참 덤덤하게도 웃으면서 얘기하셨다.
사십 년이 넘도록 시집살이를 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사오 년은 치매가 오셔서 밥도 방으로 따로 차려드렸다. 할머니는 텃밭에 채소들을 채 여물기도 전에 따내기 일쑤였다. 할머니가 탁구공보다 작은 감자를 다 캐내고, 방울토마토만 한 토마토를 다 땄던 그 얘기를 하시면서도 별일 아닌 듯 웃으면서 얘기하셨다.
병원에 가면 이 건물 저 건물을 넘나들며 피검사, 소변검사,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병원에 가면 아픈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지 예약을 해도 제시간에 진료를 받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어머님은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옆에 계신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병원에 워낙 오래 다니신 터라 간호사 분들과 안부를 나누기도 하셨다.
초반엔 딸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며느리라고 하면 사람들이 나를 칭찬을 해 줬는데 그럼 칭찬은 내가 받고 있지만 어머님이 좋아하셨다. 그럼 나도 그 상황이, 기분이 괜찮았다.
요새는 아버님이 카드를 주시는 데 그러면 어머님은 신이 나셔서 “니 아버지 카드 쓰자!”라고 하시면서 병원비랑 약값도 내시고,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하시면서 아버님 카드로 맛있는 밥도 먹는다. 그래 봤자 병원 푸트코트에 있는 된장찌개나, 순두부찌개 같은 게 다지만, 그게 어머님에게는 ‘일탈’ 같은 행동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병원에 사람이 별로 없어 오래 기다리지 않고 일찍 끝났다. 마치 학교가 갑자기 일찍 끝나 신이 난 애들처럼 어머님이랑 둘이 병원을 나섰다. 보통은 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병원에서 밥을 먹는데 오늘은 일찍 끝나서, 터미널로 먼저 왔다.
분주한 터미널에서 아버님 카드로 밥을 먹었다. 터미널에서 밥을 먹으니 여행 온 느낌이 났다. 마치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처럼 표를 끊고, 이야기를 하고, 어머님과 함께 밥을 먹었다.
나는 서울에서 볼일이 있어 어머님 먼저 버스를 태워드려야 했다. 버스에 타시기 전에 주머니에 쌈짓돈을 꺼내 셔서는 꼬깃한 오만 원짜리를 손에 쥐어주셨다. 병원에 오는 날은 고생했다면서 꼭 돈을 주신다. 그러면 할머니가 주는 용돈이 생각났다. 뿌리치는 내 손을 꼭 쥐고, 한사코 가져가서 서울 구경하고 맛있는 거 사 먹고 오라면서 버스를 타셨다. 손에 남아있는 꼬깃한 돈을 보니까 뭔가 코끝이 찡하고, 마음이 이상했다.
계절에 한번 서울로 시어머니와 여행을 간다. 오늘은 날이 좋아 더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여름 서울여행은 끝이 났다. 다음 여행은 가을이다. 다음엔 어머님 생신 즈음이니 아버님 카드로 조금 더 비싸고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
그리고 나는 지금처럼 옆에서 살갑지 않은 딸 같은 며느리로 시어머니와 함께 세 달에 한번 서울로 여행을 가면서 남은 시간들을 함께하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