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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리 May 26. 2022

이웃을 잃다.

[이웃] 가까이 사는 집. 또는 그런 사람.

나는 이웃이 없이 살았다.


어릴 때 판교에서 용인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용인에 살면서 학교를 분당으로 다녔다. 그때부터였다. 동네에는 내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이 딱히 없이 지냈다. 친구를 만나려면 용인에 사는 내가 버스를 타고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동네에 친구나 이웃이라는 건 거의 없이 살다시피 했다.



결혼을 하고 수원에 살았을 때에도. 경비원 아저씨나, 시장에 자주 가던 정육점 사장님 정도만 인사하고 지냈고, 다들 살기가 바빠 그런지 아파트에서 살았던 내내 앞집 사람조차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게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게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서 문경에 내려오는 걸 조금 더 쉽게 결정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는 이웃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멀리 내려와도 외롭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경으로 온 후에 나를 만나러 친구들이 내려오는 게 그동안 겪어보지 않은 의외의 일이었고, 친구들이나 식구들이 놀러 오면 반갑게 맞이하고 배웅하는 게 새로운 기분이고 그게 또 좋았다.



시골은 내려오면 마을회관에서 잔치 비슷한 것들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려온 해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없었다. 어머님은 그래도 여기는 시골이니 동네에 떡이라도 돌리라고 하셨고, 시루떡을 맞춰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어르신들께 인사를 다녔다. 다들 젊은 사람들이 왔다고 반겨주셨고, 특히 우리  아래에 계시는 할머님 할아버님이  기특하다고 하시고,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다.



서툰 텃밭 농사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셨다. 쪽파 씨를 주셨었는데 안 심고 있었더니 집까지 올라오셔서 적당한 자리에 고랑을 어떻게 파고 쪽파를 어떻게 심는지 가르쳐 주시고는 다 심을 때까지 뒷짐을 지고 지켜보시다가 내려가셨다. 또 마당에 풀을 보시고는 풀약을 치면 없어진다고 얘기해 주셨다. 그런 것들이 참견 이라기보다 할아버지의 잔소리처럼 다정한 관심같이 느껴져서 좋았다.



시골에서도 사는 게 바빠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볼 때마다 반가운 이웃이었다. 우리는 나이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손주 뻘이었지만 여느 이웃들처럼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계절의 채소들을, 마음을 나누며 지냈다.



그런 할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분명 며칠 전에 밭에서 넘어지면서 다리가 다치셨고, 그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이야기를 할머님께 들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마을의 아는 언니에게 들었다. 마을방송으로 부고가 나왔다고 했지만 우린 듣지 못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장례를 다 치르고 난 뒤였다.


그래, 연세가 많으시긴 했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도 정정해 보이 셨어서 좀 갑작스러웠다. 나이가 많아도 '죽음'은 당연한 건 아니었다.


눈물이 조금 나올 것만 같고, 마음이 이상했다. 슬픈 것 같기도 하고, 공허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슬퍼해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랫집 대문이 며칠째 닫혀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주친 할머님은 먼저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시며 연세가 많아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셨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이셨다. 평생을 같이  남편을 잃은 할머니 앞에서 내가 슬퍼할 수는 없었다. 위로의 말도 섣불리 꺼내기가 어려웠다.


할아버지가 안 계신 할머님은 읍내에 갈 때 시간이 맞으면 태워달라고 부탁하시는 전화를 종종 하신다. 두 분이 참 사이좋게 다니셨는데, 시내에 나가실 때는 버스를, 읍내를 다니실 때에는 ATV(4륜 오토바이)를 직접 운전해서 타고 다니 셨다. 헬멧을 사이좋게 쓰고, 할머니를 뒤에 태우시고 가는 할아버님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셨다. 그 모습이 생각나 또 마음이 그랬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캐러멜 호두를 지난겨울에 좀 더 자주, 많이 가져다 드릴 걸 싶었다.



그렇게 문경에 와서 처음 사귄 이웃을 잃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랫집 대문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정겹다. 가지런히 걸린 마늘
심으신 당근을 짚으로 묶어서 주셨다.
캐러멜 호두를 처음 드린 날, 할아버지가 캐러멜 호두를 참 좋아하신다고 할머님이 어떻게 만드냐고 전화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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