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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리 Dec 12. 2022

엉망진창 메주콩(노란 콩) 농사기-1

콩 수확이 끝났다. 다행히 날이 추워지기 전에 남편과 둘이 탈곡을 했고, 지금 돌, 콩깍지, 쭉정이가 함께 섞인 콩 자루 5개가 현관에 들어와 있다.


콩은 손이 덜 간다기에, 부업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덜컥 농어촌공사에서 임대하는 땅 1000평을 임대했다. 다행히도 땅은 좋아 보였고, 천평은 생각보다 넓었다. ‘둘이 어떻게든 해 보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콩 농사를 준비했다. (그건 착각이었다)


콩을 심어야 콩이 나오니, 우선 콩 종자를 신청했다. 농업인 상담소에 가서 천평에 심으려면 콩이 얼마나 필요한지 여쭤보고 4킬로짜리 자루 3개를 신청했다. 그리고는 주변에 콩을 심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다녔다. 콩 교육도 들었지만 여전히 알아듣는 말 반, 못 알아듣는 말 반이었다. 콩도 종자가 생각보다 많아서 내가 심은 노란 콩인 ‘대원’이 있고, 대풍, 새바람, 청자 4호, 청자 5호 등등 콩들도 이름이 여러 가지였다. 그동안 노란 콩, 검은콩 두 가지 이름으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콩들의 이름이 제각각인 게 참 신기했다.


밭이 집에서 좀 떨어진 동네에 있어 ‘남의 동네’에 농사를 짓게 되었다. 비타민 음료수를 한 상자 사서 이장님을 찾아가 인사부터 드렸다. 인상 좋으신 이장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둘이 귀농한걸 대견하다 말씀해 주셨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와주신다는 말씀 만으로도 조금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콩을 심어야 하는데 방법을 잘 몰랐다. 돈을 내면 커다란 농기계로 밭도 갈고 콩도 한 번에 심어준다고 했다. 남편의 아는 형이 해준다고 하기에 마냥 기다렸다. 그런데 그 형도 농번기에 여기저기 일을 하러 다니느라 바쁜 데다 중간에 비도 오면서 자꾸 일정이 미뤄졌고 애석하게 시간만 자꾸 흘러갔다. 콩을 6월 말 전에는 심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방치해둔 밭에는 풀이 사람 키만큼 자라 있었다. 천평 가득 피어있는 개망초를 보고 있자니 막막하긴 했지만 흔히 지나다니며 보던 개망초가 만들어 놓은 풍경이 신기하고 예뻐서 한참을 쳐다봤다.

사람 키 보다 훌쩍 키가 큰 개망초

이제 더 이상 기계만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과 둘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았다. 이장님께 다시 찾아가 여쭤보고, *로터리를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이장님이 우선 풀을 밀어 놓아야 한다고 하셔서 농기계 임대사업소에서 귀여운 승용예초기를 빌려 신나게 풀을 밀었다. 풀을 밀고 이장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문자를 남겨도 답이 없으셨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콩 심을 시기의 마지막이 코앞에 있었다. 사실 이미 늦었다. 길을 다니면서 콩밭만 눈에 보였다. 여기저기 콩밭엔 이미 심은 콩알이 싹이 되어 올라오고 있었다. (*로터리 : 흙을 고르는 일. 트랙터에 기계를 달아 흙을 고르는 작업을 한다.)


 그렇게 인상이 좋아 보이시더니 이럴 수가 없다면서, 남편과 이장님 욕을 했다. 당연히 비용을 드릴 거였는데, 우리가 로터리 비용을 드린다는 말을 안 해서 그러신 건가 싶었다. 이제 그 동네에서 농사는 어려워지겠다 싶어 앞이 깜깜해졌다. 그냥 올해 임대비는 날려야겠구나 하던 찰나에 이장님께 연락이 왔다. 장염이 너무 심하셔서 병원에 입원했고, 증상이 너무 심해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갔다가 다행히 호전되셨다고 했다. 아프신데 전화와 문자로 귀찮게 채근한 것 같아 되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제 괜찮으시다면서 그 주 내로 로터리를 쳐 주신다고 했고, 3일 정도 지나서 ‘로터리 완료. 250,000원’이라는 문자에는 계좌번호가 찍혀있었다.


밭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밭에는 고랑은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냥 콩을 심기로 했다. 다시 농기계 임대사업소에서 콩을 심는 파종기를 임대했고, 콩을 심는 간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신나게 파종기를 밀고 다녔다. 이게 나중에 어마어마한 결과를 만들어 낼 거 라는건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콩을 심고 바로 풀약을 쳐야 한다기에 남편은 분무기로 된 액체 약을, 나는 알갱이로 된 약을 뿌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주에 가보니 신기하게 콩 싹이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콩 싹 옆에 풀 싹도 새파랗게 같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쨌든 콩 싹이 올라왔으니 한시름 덜었다 싶었다. 이제 다음은 자연의 힘에 맡기고, 또 내 일을 하며 바쁘게 지냈다. 마음이 항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콩밭에 가 있었다. 지나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콩 밭을 볼 때마다 우리 콩을 잘 자라고 있는지 생각했다. 비가 많이 오면 오는대로, 비가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날씨가 걱정됐다. 날씨를 걱정하는 것 보니 농부가 맞긴 한 것 같아 남편과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콩밭에 가서 얼마나 자라고 있는지 확인했다.


여름이 되었더니, 풀이 콩을 넘어설 만큼 자라 있었다. 분명 2주 정도 전에 왔던 거 같은데 그 사이 풀은 콩의 키를 훌쩍 넘어섰고, 그대로 두면 안 되는 상태였다. 마당에서 그렇게 풀을 잘라내고서는 또 까먹고 있었다. 그것들의 생명력을.


그리고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2편에 계속)


예쁘게 핀 개망초를 밀어버렸다.


'황금 파종기'라는 콩을 심는 기계로 콩을 심고 있다.
콩과 함께 자라난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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