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거의 죽기 직전 이었던 몬스테라의 말라비틀어진 원래 줄기 사이를 비집고 새 잎이 돌돌 말린 채로 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났다. 스스로를 ‘식물 파괴자’라 부르지만 식물이 죽을 때는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그게 선물로 받은 거라면 더 속상하고 미안하다.
몬스테라도 가게를 열었다고 선물로 받았다. 친구가 멀리서 화분을 사 들고 문경까지 왔다. 어떻게든 잘 키워보려고 했는데 작년에 책방을 거의 닫아두다시피 하면서 가끔 가서 물만 줬더니 잎이 시들기 시작했다. 식물은 물만 필요한 게 아니라 바람도, 빛도 중요하다더니 실내에 갇혀 있던 몬스테라잎이 누렇게 갈색으로 변했다. 몬스테라뿐이 아니었다. 이사올 때 선물로 받아 나름 잘 키우고 있던 알로카시아도 밑동이 물러서 부러졌고, 커피나무는 죽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작은 화분들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식물도 살아있는 생물이라 관심이 과해도, 관심 안 줘도 제대로 살 수가 없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의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선물 받은 사람에게 너무 미안해하며 말을 했더니 “그깟 화분이 죽은 게 뭐 어때 너만 잘 지내면 되지”라는 답을 듣고 마음이 편해졌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냥 죽어버리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싫었다. 나도, 화분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도 잘 못 돌본다는 생각이 들면서 화분이 죽어가는 게 싫다.
문경으로 내려와 우연히 시작한 책방은 돈을 벌기에는 부족했고, 이미 내려왔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농사도 지어야 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틈틈이 했다. 누가 일을 부탁하면 우선 해야 했다. 그렇게 본업이었던 책방은 문을 닫기 일쑤였고, 어차피 열어놔도 손님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며 핑계를 댔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렇게 책방도, 식물들도 애써 외면하면서 제대로 돌보지 못하며 붙잡고 있었다. 결국 작년 가을 3년을 채우고 책방은 조용히 영업 종료를 했다. 먼지가 쌓인 책과 식물들을 보며 마음이 쓸쓸했다.
책방을 정리했다. 언제 다시 꺼내게 될지 모를 책들을 박스에 담아 정리하고, 날이 추워지기 시작해 화분은 집으로 가져왔다. 인터넷을 뒤져 과한 습도로 죽어가는 식물들은 뿌리를 물에 담가놓으면 다시 살아난다는 걸 알았다. 집으로 가져와 화분에서 꺼내 흙을 털고 양동이에 담가놓고 겨울을 보냈다. 죽은 것 같지도, 살아있지 않은 것 같지도 않은 상태로 한참 동안 있더니 새잎이 나왔고, 밑동이 부러진 알로카시아도 뿌리가 나왔다. 그렇게 겨울을 지내며 다시 살아낸 식물들이 기특했다. 엉망으로 키우고 있었지만 다들 어떻게든 살아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금전수는 다시 싹이 났고, 재작년 겨울에 미처 대피시키지 못해 얼었던 산세비에리아도 하나만 남아있던 잎이 다시 번졌다. 커피나무가 심겨 있던 화분에 싹을 옮겨심어 2개가 됐다.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였던 선인장은 한 뼘으로 자라났고, 아이비는 비실비실 하지만 계속 살아있었다. 예쁜 모양으로 자라고 있진 않았지만 다들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약간은 엉망으로 자라고 있는 화분들이 어떻게든 문경에서 살고 있는 내 모습 같아서 안쓰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문경에서 다섯 번째째 봄을 맞이하고 있다. 엉망으로 살고 있는지 혹은 겨우내 참았다 새잎을 터트린 몬스테라처럼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잘살아 보려고 기다리는 중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선 올해도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틈틈이 가르치고, 또 돈이 되는 일 들을 누가 부탁한다면 해야 한다. 그렇게 조금 엉성하고 더디게, 죽지 않고 잘 살아가는 화분들처럼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