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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꿀 Jul 05. 2021

나는 좋은 딸이 아니었다

버스정류장

나는 좋은 딸이 아니었다. 참다가 한번 터지면. 속사포처럼 다다다다 쏟아놓은 스타일. 후벼 파는 말도 야무지게 해 대는 스타일. 어쩌면 누구보다도 내 말이 엄마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을 것 같다.


내가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아빠가 술이 된 채 트렉타를 몰다가 시골 도랑에 떨어지셨다. 아빠는 대퇴 골절이 되어 보훈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 덕에 엄마는 조리원에 자주 오진 못했지만 "엄마! 시멘트가 내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아" 하니 "그게 젖몸살이야" 하며 쉴세 없이 내 젖가슴을 뜨끈한 수건으로 마사지해주셨다. 나는 엄마가 더 오래 내 곁에 있어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엄마는 곧 조리원을 나서 보훈병원으로 갈 것이다. 거기서 아빠의 병간호를 할 것이다. 그때의 나는 아빠가 엄마를 힘들게 해서가 아니라 '왜 내 출산에 맞춰, 아빠는 또 사고를 치시냐' 하는 짜증에 집중되어 있었다.


내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다시 병원으로 출근해야 했을 때, 엄마는 우리 아이를 봐주겠다고 하셨다. 하루 종일 아빠랑 붙어 있는 것보다 낫다고 손주랑 놀면 좋다고 하셨다. '그래 아직 아이 하나이니깐 많이 힘들진 않을 거야. 아빠랑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싸우기만 더 하지. 이제는 농사도 예전만큼 크게 하는 게 아니고, 주5일, 엄마에게 주말을 줄 수 있으니깐, 아이 봐주시는 돈을 날짜에 맞추어 넉넉히 챙겨 드리자'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는 이른 아침 시골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한번 더 타서 50분 정도가 걸려 딸 집으로 오셨다. 나는 그때 너무 쉽게 생각했다.


장례식장에 시골 동네 어르신들이 오셔서 나를 보고 '네가 막내딸 맞지? 너희 엄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기다리던 모습이 엊그제 같다. 막내딸 다시 병원으로 일하러 간다고. 손주 봐주러 간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 하셨다. 엄마는 아마도 새벽부터 일어나 농사 일을 대충 보시고, 서둘러 준비를 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결혼, 내 출산, 내 아이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는 그때 엄마의 그런 수고를 많이 고마워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가 부산에서 담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이 힘들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서울로 올라가 진료를 받고, 수술이 가능한지 다시 물어보자고 했다. 이후 엄마는 서울에서 수술을 했고, 부산으로 내려와 항암 · 방사선 치료를 했다. 그것이 오히려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양쪽 길을 다 가보지 못하기 때문에 드는 후회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어쩌면 나는 엄마에게 수술을 권유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항암 · 방사선 치료에 힘들어하지 않고, 편안히 엄마의 인생을 정리하실 수 있는 시간을 지켜드리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 같다.


모든걸 자녀가 결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엄마에게 '대충 이렇다' 이게 아니라 현재 4기, 전이상태라고 말하고, 그게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설명해줄 의무는 있지 않나 싶다. 왜냐면 의사도 그때는 보호자만 찾고, 보호자에게만 설명하니깐. 머리로는 알지만 그게 막상 닥치면 쉽지는 않다. 고생 고생만 하신 부모님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의 정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해드려야 하는게 맞지 않나 싶다. 


나는 엄마 덕분에 잘 자랐다. 그래서 좋은 남자에게 사랑을 받고, 결혼을 하고, 아이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얼마 되지 않아 곧 나는 마흔이 되었다. 인생에 마흔이란 시간이 온다. 잘 지내다가도 문득 엄마의 기억이 떠오르면 마음이 아프다 못해 멍이 든다. 그러면서도 서서히 엄마의 부재에 익숙해진다. 또한 마흔은 슬프게도 내 삶의 꽃을 활짝 피우는 시절인것은 분명하다. 지금 내 삶이 단단할수록 더많이 미안하고, 더많이 고마운 엄마. 지금의 나라면, 리어카를 끌면서 '엄마에게 효도하겠다' 호언장담하던, 내 말을 어느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는 내게 슬픔이다.  


사진출처:https://m.blog.naver.com/kn010123/222426562276?view=img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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