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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Jin Jun 21. 2021

갑 티슈 한 묶음 치의 눈물

많은 분들이 우신다. 우실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분들도 알고 계신다. 순간 울컥하기 시작한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가라앉히려 애쓰면 애쓸수록 목소리는 떨리고 언제나 눈치 없는 눈물은 그만 떨어지고 만다. 얼마 전 고등학생 아들 담임을 만나고 온  내 친구도 주책맞게 눈물만 쏟고 와서 '쪽팔려 죽겠다'는 하소연을 했다. 엄마들은  참 많이 우신다.(부모님이 함께 오시거나, 아버지가 오시는 경우도 최근에는 늘었지만 아버지가 우시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엄마로 한정한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들은 그간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속이 문드러질 만큼 문드러지셨을 텐데도, 거기에 형제를 둔 엄마들은 목소리가 굵어질 만큼 굵어지셨을 텐데도 내가 "00가"라고 말을 시작하면, 손에 잡은 가방끈을 꼬거나, 마른 손을 비비기 시작하신다. 용케 울음을 참았어도 주차장에서 긴 한숨을 쉬셨을 것이다. 


아이를 낳기 전이니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학부모 상담기간이어서 내가 먼저 전화를 드렸는지 석주(가명)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하셨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연락이 닿아 석주 엄마가 학교에 찾아올 테니 저녁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셨고, 나는 기다렸다. 해가 지고, 동료들은 퇴근하고, 산 아래로 어둠이 깔렸다. 석주 엄마가 허리를 반쯤 숙이고 조심스레 교무실 문을 여셨다.  땀범벅이 된 채, 고개를 숙인 엄마의 두 손에는 갑 티슈 묶음과 박카스 한 박스가 들려 있었다. 의자를 내어드리자 엄마는 간절한 주문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셨다. 석주의 학교 생활 및 교우 관계, 성적 자료에 대해 설명드릴 참이었는데,  차근차근 성적 추이를 살피고, 대안을 함께 고민할 여유가 엄마에게는 없어 보였다. 내신 성적을 산출하는 방법, 모의고사 성적이 의미하는 것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드릴 수도 있었는데, 더 한 설명도 나는 해드릴 수 있었는데, 엄마는 나열된 숫자들을 보고 어려운 입시제도 설명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지방에서 일을 하다가 주말에만 집에 오신다는 엄마에게는 해야만 하는 너무 간곡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저는 잘 몰라요. 석주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대학 가게만 해주세요."


내가 뭐라고, 엄마도 못하는 일을 하고, 17살 먹은 사내아이의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도 모자라 공부를 시켜 대학 가게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관찰하고 수집한 자료를 제시하고, 그 자료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는 일뿐인데, 내 능력 밖의 것을 원하시니 나 역시 드릴 말씀이라고는, "석주가 참 성실하고 속이 깊은 아이인 것 같아요. 열심히 해요. 걱정 마세요."라는 말뿐. 짜내고 짜내어 그 아이와 얽힌 일화 한 두 개를 양념처럼 섞은 것이 다였는데, 갑자기 엄마가 주르륵 눈물을 흘리시더니,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하셨다. 같이 울고 싶었다. 엄마의 대책 없는 간절함이, 손 쓸 수 없이 멀어진 현실이, 엄마의 땀이 배인 박카스 박스가, 속절없이 짙어지는 어둠이 왜 나에게 찾아왔는가,  같이 울고 싶었다. 어머니가 들고 오신 갑 티슈 묶음 비닐 포장을 허락도 없이 찢어 어머니 앞에 놓았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기초가 없어서 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오니까, 자기도 힘이 빠지나 봐요"


한참 울고 난 엄마에게 한다고 한 말이, 위로라고 건넨 말이 고작 이거였다. 또다시 우셨다. 왜 기초가 없는지는 듣지 않아도, 쓰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이야기. 시간을 거스른 이야기의 화살촉은 엄마의 가슴을 향했다. 조퇴를 하고 박카스와 갑 티슈를 사 들고 이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교무실을 문을 열 때, 엄마는 이 만남이 자신을 찌를 것이라고 생각하셨을까?  어쩌면 평생 제때제때 아들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지 못했다고 자책을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쥐뿔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선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콧물 닦을 시점을 잘 포착해서 티슈를 곱게 접어 건네는 것 정도. 그것도 그 엄마가 사 오신 티슈로. 


다음날, 교실에서 석주를 보았다. 여전히 독기 서린 눈빛으로 날 쏘아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좀 더 자주 말을 걸 수 있었다.  네 엄마의 눈물이, 네 엄마의 땀이 세상 무엇에도 뚫리지 않을 방어막이 되어 너를 두르고 있다는 것을 석주는 몰랐을 것이다.  그나저나, 석주와 석주 엄마는 잘 지내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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