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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원 Apr 21. 2022

바람이 좋다

딸에게 배우는 인생

딸아이는 36개월이 되어서야 말문이 트였다. 그토록 고대하던 딸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전까지 단어의 나열과 3 단어 정도로 만든 문장만을 듣고 딸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행여나 알아차리지 못했을 땐 어김없이 소리치는 딸아이를 만나야 했다.


대화가 가능하다는 건 그만큼 요구사항이 많아진다는 걸 의미한다. 몰랐다. 요구사항이 얼마나 늘어나고 디테일해지는지를... 그저 딸아이와 대화할 수 있으면 행복할 거라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었다.


여하튼 말문이 트이고 맞이한 봄과 여름 사이 어느 날이었다.


"좋다!"

"햇빛이 좋다!"

"바람이 좋다!"

"좋아요!"

"꽃이 좋아요!"


연신 좋다고 외치는 딸아이를 보며 덩달아 나도 '좋아요!'를 외쳤다.

"햇빛이 좋다! 좋아요!"


한 동안 딸아이는 외출할 때마다 차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어디에서나 "햇빛이 좋다!", "바람이 좋다!", "꽃이 좋아요!" 연신 외쳤다.


우리 옆에 항상 있는 햇빛, 바람, 꽃이 얼마나 좋은지 우린 알아채지 못하고 흘려보낸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햇빛은 눈을 부시게 하는 존재이며 피부를 상하게 하는 존재라서 얼굴을 가리고 피해버린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도 봄에는 황사 먼지라며 코와 입을 막고 겨울에는 춥다며 옷을 여민다. 평상시엔 아름답게 핀 꽃을 바라봐도 그저 스쳐 지나친다. 꽃내음을 맡을 여유도 없거니와 매일 지나치는 꽃이 특별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딸아이가 말문이 트여 재잘재잘 말이 많아지던 그 시기에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개골개골 소리치며 개구리를 찾아다니고 햇빛과 바람과 꽃과 무지개와 아지랑이를 보며 감탄했던 딸아이를 떠올리며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딸아이처럼 몸과 마음에 감각을 열고 살아가면 아마도 행복이 가득한 삶일 거다. 나처럼 어느 순간 몸과 마음에 감각을 닫고 목표를 향해서만 내달리는 경주마가 되어 주변을 느끼지도 즐기지도 못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지금처럼 자연에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살아가길 바래본다.


딸아이가 외쳤던 그 말들이 가끔 떠오른다. 자연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표현하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다온이 모습에 난 내 몸과 마음을 깨운다.

바람이 좋다!


"난 경주마가 아니라 사람이야!"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자연에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덩실덩실 춤을 출 때야!"

"그래야 각박한 삶을 살아내지! 그래야 소중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지! 그래야 내가 살고 싶은 방향으로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지!"


고마워 다온아!

오늘도 아빠는 너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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