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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원 Aug 09. 2020

WITH

나를 나답게 해주는 고마운 그대

사람은 변한다.
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변한다.     


이름은 변함없지만

몸은 늙어감에 변하고

마음은 세상에 대해 무뎌짐에 변하고

그렇게 이전의 나보다 비겁하고, 이전의 나보다 옹졸하며, 이전의 나보다 보수적이다.

     

뭐 경험과 경력이 좀 더 많아지고 삶에 대한 처세술이 과거보다 세련되고 은행에 대출을 점점 더 많이 받을 수 있어서 좀 더 누리며 살아가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나에 둘러싸여 난 혼란스럽다. 이런 혼란 속에 우유부단함이 복잡함이 마음을 휘젓고 다닐 때 생각나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어떤 친구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과거에 나도 현재에 나도 미래에 나도 친구는 더 잘 안다. 장기든 바둑이든 훈수 둘 때 더 잘 보이는 것처럼......

     


따르릉 전화가 울린다.

밤 10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 11시에 정확히 맞춰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17살 남학생 2명은 밤마다 연애하듯 투쟁하듯 논쟁하듯 수화기를 붙들고 우정을 나눴다. 부모님들은 아마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하시며 한편으론 한 숨을 푹 쉬셨을 테다.     


그렇게 우리의 고교시절이 지나가고 각자에 분야에서 나름 밥값은 해내며 40대 중반에 들어섰다. 2020년 코로나 19는 나와 너를 새로운 삶에 변주곡을 연주하게 만들었다. 나름에 방식으로 삶을 이어 나가며 27년 전처럼 우리는 가끔 아직도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다.

     

친구가 말한다.

"고등학교 그때  ***-**** 번호로 밤마다 너한테 전화했었는데."

"너희 집 번호는 ***-**** 맞지."

"하 하 하 우리 서로 전화번호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우리에겐 중요한 기억이었나 보다."

“27년 전에 전화를 하면서 우리는 지금처럼 삶에 과제에 치열하게 맞섰겠지. 그리고 서로의 고민을 달래주었겠지.”

"27년 뒤에도 이렇게 전화기를 붙들고 이렇게 서로 다독이며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변했지만 친구는 이전의 나를 나보다 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나를 기억해주고 토닥여주는 친구이다. 그런 친구가 있기에 나도 의미 있는 사람이라 느끼며 살아간다. 결과는 미미하지만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삶에 맞섰는지, 힘들고 힘들어 세상과 언제 타협했는지, 가족에게 직장동료에게 못하는 말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공감해주는 친구는 존재만으로 따뜻함이 스며든다. 그리고 내 자존감을 높여준다.

        

누군가에게 기억되어 되새겨지고 누군가에 삶에 흔적으로 남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참! 유쾌한 일이다. 그 존재가 친구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그 누구든 내 존재는 그로 인해 빛나고 나를 나답게 만드는 그 무엇을 그로 인해 확인할 수 있다.      


고마운 사람이다. 소중한 사람이다. 나도 아마 그에게 고맙고 소중하며 좋은 사람 이라 믿는다. 그리고 상상 다짐해본다. 먼 훗날 서로에 어깨에 기대어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수고했다 말할 수 있도록 계속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자고......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친구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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