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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집 얘기입니다만

by 꿈을꾸는아이

가난한 사람들은 왜 가난할까?

우리는 살면서 가난과 부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된다.

막연히 그렇다고는 생각했지만 가난이 왜 가난을 낳는지 잘 이해를 못 했던 것 같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반지하방에 살았었다.

수해를 입고, 먹을 쌀이 없었고, 입을 옷이 없었다.

그런데도 왜 가난한 지에 대한 의문을 달지 못했다.

가난이 곧 나였으니깐.


20대 때 경험이다. 하루 일당 7만 원을 받으며 냉동창고에서 알바를 하던 시절이다.

일을 마치면 함께 일했던 형들은 그 돈을 가지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 도우미로 그 돈을 다 탕진했다.

하루 벌어 하루에 다 쓰는 그 모습은 가히 충격이었다.

‘나는 저렇게는 안 살아야겠다’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크면서 알게 된 사실

우리 아빠의 돈 씀씀이는 굉장했다.

소득에 비해 값비싼 자전거

신차구입 통보

매년 바뀌는 최신형 휴대폰

남들이 보기엔 일상일 수 있지만, 10평 남짓의 전세방에서 4 가족에게는 과한 소비였다.


또 알게 된 사실

엄마의 소비가 만만치 않았다.

오직 가족만을 위해 살았던 불쌍한 엄마였지만 어쨌든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소비를 해왔던 것 같다.

매달 150만 원 이상 나간 보험료

과도한 학원비(나는 이 돈으로 항상 피시방을 향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도 않는 소득에서 칼 같이 나가는 십일조(나는 이 십일조를 싫어한다. 성경의 긴 맥락에서 이거 하나만 그렇게 강조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우리 집은 모을 돈이 없었을까? 돌아보면 쓸 데가 너무 많았던 거다.


나의 유년시절은 비교적 풍족했다. 금성사에 재직하던 아빠, 소형아파트, 엘란트라 1대…

아빠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고, 그 이후로 쉼 없는 내리막길이었다.

모든 게 다 하향 중이었지만 희한하게도, 씀씀이만큼은 산 중턱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지금의 나도 비슷하다. 엄마가 아프니 씀씀이가 커진다.

매달 나가는 병원비

동생 생활비와 교통비

코로나검사비(이걸로만 한 달에 50만 원…)

또 의료소모품은 어찌나 비싼 지, 카테터, 목관보호용품 그리고 특정 검사비용 크리까지 터지면 어마어마하다.

수많은 카드 명세서를 보면 월급쟁이의 소득은 명확한 데 지출이 가늠이 안된다. 이런 환경에 처하면 나도 씀씀이에 좀 유연해지게 된다.

”뭐 이 정도 돈 더 써도 되지”

”어 차피 돈 안 모이는 건 똑같다”

나도 그렇게 변해갔다.


이때 느꼈다. 정말 느꼈다.

가난해지는 이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면 돈이 모이지 않는다”

미래가 예측이 되면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계획이 있으면 집행을 할 수 있다.

근데 고정비보다 변동비가 훨씬 커지고, 변동성조차도 극심하게 출렁일 때, 우리는 예측이라는 게 불허해진다.

그때부터는 본능적이고 즉흥적으로 살게 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여기까지가 가난한 이유에 대한 내 추론이다.

우리 집안 하나만 보고 내린 편협한 결론이니 반박하면 당신 말이 옳다.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부모님과 비슷한 예측불가한 길을 걷고 있다.

나는 보법을 달리할 거다. 물론 무협의 경공술, 경신술 같은 보법은 쓰지 못할 거다. 그러나 나만의 독창정 스텝으로 완주할 거다. 그때 종착지는 결코 가난이 아닐 거다.



해당 글은 코로나가 유행하던 22년쯤 배경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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