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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가족만 생각했다.

by 꿈을꾸는아이

나에겐 생각하면 벅찰 정도는 아니겠지만 늘 빚진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게 있다. 바로 엄마의 사랑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와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지냈다. 우리는 20대가 되어서도 같이 쇼핑을 다녔고, 같이 장을 봤다. 엄마와 함께 자는 게 그렇게 좋았었다. 엄마 생일이면 부족한 솜씨로나마 생일 음식을 손수 차려 엄마를 대접했다. 하라는 대학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엄마를 돕기 위해 집안일은 늘 내가 자처했다.

이렇게 엄마에게 다정했던 나는, 지금의 아내에게는 어떤 남편이었을까? 농담이지만 아내는 효자가 싫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늘 효자(였었)다.

엄마가 나를 돌보던 시간

아직도 기억에 남는 큰 사건이 있다.

20대 후반, 취업을 앞두고 나는 큰 병을 앓았다. 현대의학으로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았지만, 소화가 안 되고, 걷기조차 힘들 만큼 몸이 쇠약해졌다. 178cm, 60kg이던 몸무게가 48kg까지 빠졌다. 뇌는 인지했지만, 몸이 반응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루게릭병이나 파킨슨병의 증상과 비슷했다.

그 시기, 엄마는 나를 온전히 보살폈다. 직접 침술을 배워 나에게 침을 놔주었고, 전국 곳곳의 한의원을 데려가며 치료를 위해 혼신을 다했다. 50대의 여자가 퇴근 후에도 매일 밤 아들을 위해 마사지를 하고, 각종 대증요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했다.

당시 나는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기에 그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조차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제는 엄마가 침대에 누워 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해주는 것이 별로 없다. 매월 220만 원 남짓의 병원비와 부대비용, 매주 손주를 데리고 가는 면회, 내가 만든 몇 가지 반찬. 이것이 전부다. 엄마가 지금껏 나에게 해 준 것들을 생각하면,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는 이제 몸도 회복되었고, 가족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다. 하지만 엄마는 요양병원에 홀로 있다. 몸이 움직이지 못할 뿐, 정신은 또렷하다. 외로움과 답답함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가 매주 면회를 가면, 엄마는 ‘자주 안 와도 된다’ 며 입모양을 움직인다. 그리고 늘 ‘미안하다, 고맙다’ 고 표현한다. 누가 누구에게 미안해야 하는 걸까.

엄마는 늘 가족만 생각했다.

나의 해마에서 기억들을 꺼내어보자면 엄마는 쭉 자식만 생각하며 살았다. 살림이 어려워도 아들을 과외 시키고, 학원을 보내려고 했다. 부족한 가계를 책임지기 위해 가정주부이면서도 노동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부터 스트레스가 심했다. 특히 동생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마음의 병이 깊어졌던 것 같다. 그 시기에 신천지에 빠지고 동시에 그와 관련된 바지사장 역할을 하면서 욕받이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종종 엄마는 ‘다 그만두고 떠나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이때 좀 더 내가 보살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이야기가 희극으로 남기를

‘가족만을 위해 살고, 말년에는 가족과의 스트레스로 쓰러지다.’

현재까지의 상황을 글로 쓰자면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기도한다. 가끔은 “이대로 끝나버리면 편할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엄마가 조금씩이라도 움직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매주 엄마를 위해 반찬을 만든다. 시금치, 취나물, 간장제육볶음을 조리하고, 먹기 쉽게 잘게 다져 놓는다. 과일까지 손질해서 준비하면 금상첨화다.

매주 손주를 데리고 엄마를 찾아간다. 손주를 볼 때면, 엄마가 유일하게 웃는 순간이 된다.

매달 엄마를 위해 병원비와 각종 부대 비용을 처리한다. 200만 원가량의 병원비와 25만 원의 월세비, 각종 필요 물품과 먹을 것들을 준비한다. 다음 외래진료를 확인하고 미리 회사 동료에게 휴가 또는 반차 쓴다는 얘기를 공유해 놓는다. 추가로 엄마를 혼자 데리고 가기 힘들 기 때문에 아빠 또는 동생을 손을 빌리는 구인활동도 해야 한다.


훗날 나는 이 이야기가 그저 회상하기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그리고 엄마에게 진 빚을 병원비가 아닌 여행과 외식으로 갚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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