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은 누구 꺼?
엄마에게는 작은 전셋집이 있었다. 2천만 원가량의 보증금과 LH공사에서 8천만을 빌려줘 마련된 1억짜리의 투룸 빌라였다. 이게 또 전세 만기가 되어간다. 병원에 있는 엄마는 언제 퇴원할지 기약이 없다. 고민을 좀 했지만 나는 엄마의 집을 정리하기로 결정한다.
우선 엄마의 돈을 내가 임의로 건드릴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까 탐색하는 단계가 되겠다. 검색결과 다행히도 위임장을 작성하면 이러한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엄마가 손을 움직이기 불편하여 상당히 애를 먹었다.
살다 보면 법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유기적 생물인 사회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다 보니 현실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 이로 인해 피해받고 고통받는 케이스가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헌법 아래 법이 있고 규칙, 령 등으로 보완하지만 현실은 아득히 멀리 있을 때가 많다. 이러한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엄마가 없는 엄마의 집은 참 쓸쓸했다. 가구들을 볼 때마다 엄마와의 추억들이 기억나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이 공간에 있는 게 더욱 힘들었다. 그리고 집안의 물건들은 참 초라했다. 가진 것도 없이 힘들 게 살아온 엄마. 내가 지금까지 잘 못해줬던 게 생각이 났다. 좀 더 잘해줄걸… 여행도 데려가고 진작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회생을 하며 주말마다 엄마의 집에서 정리를 했다.
정리하는 데 그 비좁은 집에 책은 어찌나 많은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뇌 사용 설명서, 부의추월 차선, 스티브 잡스 일대기, 목민심서’ 등등, 엄마의 삶에 대한 진심을 느낄 수 있는 흔적이었다. 엄마는 늘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지금의 결과는 이거다. 엄마가 아프고 느끼게 된 건 ‘카르페 디엠’이다. 인생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중간의 모든 과정이 희생되어야 한다면 과연 그게 옳을까? 아니면 옳더라도 과정에서 절단되는 만족과 행복을 내가 용인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은 필요한 데 돈도 잘 쓰고, 행복을 좀 더 뒤로 미루기보다 지금 찾는 편이다. 항상 뒤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 즐기려 한다.
‘믿음’, ‘이기는 자’, 요한 계시록’ 이젠 키워드들도 잘 기억 안 난다. 엄마는 가장 힘든 시절 신천지에 빠졌다. 집안 곳곳 엄마가 공부했던 각종 수첩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결과가 이거다. 나도 교회를 다니지만 신천지와 내가 다니는 교회의 신학적 차이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지도 못하고 설명도 못하겠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신천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게 만든다. 심지어 가족까지 버리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것을 속여서라도 뜻을 관철시키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있는 돈 없는 모아서 교회에 바치게 만든다.(사실 이건 교회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각자의 신념과 배경지식,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신천지가 매우 싫다. 사실 엄마를 이렇게 만든데 큰 영향을 준 신천지를 증오한다.
이사 당일, 도시가스도 끊고, 전기도 끊고 나름의 절차를 이행했다. 하지만 부동산에서 도시가스 완납 증명서와 전기 완납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해서 몇 시간을 더 허비했다. 그래도 마침내 전세금을 정리했고, 작지만 소중한 2천만 원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런데, 왜 나는 그 돈을 아빠 통장으로 입금했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이 결정은 결국 내 가슴을 후벼 파는 사건이 된다.
그로부터 1년 후… 엄마의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빠에게 2천만 원 달라했다.
“없다.”
“……뭐?”
황당했다. 이게 아빠 돈인가? 아빠 보고 쓰지 말라는 말도 안 했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써서는 안 되는 돈이었다. 새우깡 하나 사 먹을 돈도 아니기에 최소한 물어보고 써야 할 돈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어디에 썼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순간, 전화기를 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내 이성이 말했다.
'분노를 쏟아서 뭐 하겠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어차피 답도 없잖아.'
화가 치밀었고 한편으로는 허탈했다. 사실 우리 집에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너무 자주 겪어서 그런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초연해져 있었다.
정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나의 잘못이다.
여윳돈이 있었으면 엄마의 집을 다시 구했을까? 엄마가 금방 일상으로 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아마 이 당시에는 발병 2년 차였기에 나는 새로운 집을 구했을 거 같다. 현실보다 이상이 더 큰 시기였다.
4년이나 지난 지금 동일한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엄마의 집을 정리했을 거다. 엄마는 반드시 일어날 거다. 이 대전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매우 오래 걸릴 거라는 사실을 내 머리와 가슴 모두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