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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프고 나는 늘 불법을 자행한다.

by 꿈을꾸는아이

의료법 제27조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매일 불법의료행위를 한다.

"하실 수 있겠죠?, 어렵지 않으니 해보시고 안되면 한번 더 보여드릴게요"

의료진은 능숙하게 시범을 보이고 나에게 불법 행위를 종용한다.

이 모든 게 불법이라는 것도 먼 훗날 알게 된다.


엄마는 피딩이라는 것을 한다.

위장에 연결된 긴 고무관이 코로 나와 있다.

삼킴 장애가 있는 환자들은 이 방법으로 식사를 한다.

캔 음료처럼 생긴 용기에 식사가 담겨 나오는데, 한 캔 따서 콧줄로 흘려 넣으면 된다.


네뷸라이저도 해야 한다.

와상환자는 자가 호흡이 어려울 때가 많다.

기관지를 넓혀주는 약을 희석해 하루 두 번, 엄마의 코에 연기를 넣는다.

이걸 안 하면 엄마는 숨쉬기가 더 힘들어지니까.


마지막으로, 넬라톤.

이건 정말 하기 싫었다.

요도에 고무관을 넣어 소변을 빼는 일.

남자인 내가, 엄마에게.


이쯤 되면 충분하다.

불법, 불법, 불법.

규정대로라면 이 모든 행위는 5년 이하의 징역감이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내가 범죄자가 되는 일상이었다.


형법 제239조(사인 등의 위조, 부정사용)

“행사할 목적으로 타인의 서명이나 인장을 위조하거나 부정 사용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장애인이 되면 각종 지원을 받기 위해 주민센터를 찾게 된다. 공무원은 말한다.

“환자 본인이 직접 서명하셔야 합니다.”

환자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데 어떻게 데려오나. 영상통화로 엄마의 얼굴을 보여주며 간신히 “본인의 의사가 있음을 확인했다”는 명목으로 넘어간다. 공무원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내게 비언어적으로 대리 서명을 종용했다.


이제부터는 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모두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다.

• 보험금을 받기 위해 서명을 위조한다.

• 건강보험공단에서 본인부담금초과에 대한 환급금을 받으려면 서명이 필요하다. 또 위조

• 엄마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부동산을 처분할 때도 인감증명서가 필요하다. 역시나 위조

이게 현실이다. 보호자는 환자 옆에서 불법을 자행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나도 그러려 했는데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성년후견인 절차를 밟았다.

귀찮고 복잡하지만, 불법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지만

법을 만드는 사람, 해석하는 사람, 이용하는 사람은 사회적 강자들이다.

그래서 약자에 대한 배려는 늘 부족하다.


이 부족함을 메우는 게 시민단체의 몫이라고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본 시민단체들도 대개는 힘이 없는 약자들이었다.

지금도 수많은 보호자들이 불법을 자행하고 있을 것이고, 오픈카톡에 보호자들이 노하우?를 공유하는 따뜻한 모습들을 오늘도 목도한다.


누군가는 용기를 내어 변화를 외쳐야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그러지 않는다.

하루하루, 불법으로 얼룩진 일상 속에서 또 하루를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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