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눅 들어 사는 편도 아니다.
하고 싶은 말 적절하게 화자에 맞추어하는 것 - 그게 바로 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병원만 가면 그렇게 나는 위축되고 낮아진다.
누구를 만나기 전, 병원 입구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왠지 기운이 빠지고 마음이 겸손해진다.
길목에서도 양보를 더 잘하고(평소에도 물론 한다!)
그렇잖아도 좁은 어깨를 더욱 움츠리고 간다.
사회생활할 때의 자신감은 오롯이 사라지고 병원만 들어가면
나는 가장 낮은 자가 된다.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살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그토록 지켜본 적이 없는데
병원만 가면 나는 그저 성도(saint)다.
분명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어렴풋이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을 갖는 것 같다.
엄마가 의료거부를 받거나, 적절한 처치를 받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나도 내 마음을 완벽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류의 감정이다.
글로 적다 보니 좀 더 알 것 같다.
왜 드라마 보면 보호자들이 의사 바지 붙들고 애원하지 않는 가?
‘선생님 제발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이 감정이 나에게 낯설지 않다.
‘존경하는 선생님’이라는 자각 못하던 마음이 우러러 나온다. 넘쳐흐른다.
겸손은 내가 남보다 낮음을 인지할 때 나온다.
높고 낮음은 어디에 기반할까?
그건 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알고리즘이다.
보통은 나의 가장 잘난 부분으로 상대와 비교하며 약점을 파고든다.
아주 가끔 나의 못난 부분을 상대와 대조하며 인식할 때 겸손을 획득한다.
가장 건강한 겸손은 나도 존귀한 사람이고, 상대도 그러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기에 상대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겸손은 어떤 이득이 있을까?
첫째
타인을 나보다 낫게 여기기 때문에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비호감은 낮아지고, 관계도는 올라갈 것이다.
둘째
배울 가능성이 커진다.
겸손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초식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게 한다.
핏대 세울 일이 없어지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병원에서의 겸손은 평소 잊고 살던 나의 오만함을 일깨워준다.
그럭저럭 잘 사는 것 같은 나에게 여전히 낮은 자로 살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그래서 작위적인 것 같고, 일회적인 것 같지만 그래도 병원에서 느끼는 이 겸손이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