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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사망선고

쉽게 사랑한다고 하지 말자

by 꿈을꾸는아이

뇌병변, 사지마비 등의 병은
말 그대로 사회적 사망선고를 시원하게 때린다.

‘잠깐만요, 정리할 시간을 주세요’

이딴 건 없다.

시간의 비가역성은 무자비하다.


몸이 움직이지 않고,

점차 근육이 사라져서

체중은 곧 기아 수준으로 치닫게 된다.


처음에는 모든 상황이 정신없다.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렵다.

환자도 보호자도


조금씩 곱씹는다

그리고 모든 걸 품에 안는다.

이쯤 되면 잠들어있던 메슬로우의 애정욕구가 고개를 쳐든다.

그제야 알게 된다.

사회적 단절…

아무도 엄마를 찾지 않았다.


아프기 전의 엄마는 홍길동이었다.

그리고 프로참석러였다.

넉넉한 웃음과 잔잔한 성격

모두가 호감을 가질만한 사람이었다.

XX모임, YY모임 등 정기적인 모임도 있었고

친지들과의 잦은 만남도 꽤 그럴싸해 보였다.

엄마가 아픈 지 몇 년 되었는 데,

찾아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됐을까?


3명

엄마를 한 번이라도 찾아본 친구 숫자

3명

엄마를 찾은 친척 숫자(아빠, 동생)

더 있을까?

생각이 나질 않는다.

더 있다 해도 나에게 유의미한 숫자는 아닐 거다.


아들로서 지인들에게 큰걸 바라진 않았다.

돈이 필요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그냥 한번 정도는 찾아와서 위로해 주길 바랐다.

대부분 그러질 않았다.

내가 위로받길 바란 게 아니다.

그저 엄마가 좋아했던 사람들이기에

한번쯤 와서 엄마에게 따뜻했던 추억도 얘기해 주고

그들의 온기를 나눠줬으면 싶었다.



사랑제일교회, 사랑 XX교회, XX사랑교회

많은 교회들은 사랑이란 단어를 푯대에 내세운다.

교회를 가도

“사랑하는 XX” 님 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교회의 핵심 교리를 정리하면 이렇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엄마가 다녔던 교회도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많이 그랬을 거다. 아주 많이

특히 마지막으로 빠지게 된 신천지는 사랑과 돈독함 유명하다.

이들은 엄마를 기억하지 않는다.

혹 기억할지 모른다.

하지만 엄마를 찾지는 않는다.

단 한 명도


사랑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을 게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엄마는 대뇌뇌출혈 진단과 동시에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이 생각을 하면,

역겹다.

인생사가 역한 건지,

인간관계가 역겨운 건지

아니면 내 생각이 역한 건지 분간이 안된다.

그저 나는 괴롭다.

그리고 누구보다 괴로워할 엄마 생각에

또 한 번…

괴롭다.


과거의 회생으로, 지금은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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