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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가 장애인이 되었을 때 생기는 일

by 꿈을꾸는아이

중증장애인, 신용불량자.

모두 사연 하나쯤 품고 있을 법한 키워드다.

어쩌다 보니,

엄마는 인생에서 이 두 가지를 모두 겪게 되었다.


장애인이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마비가 오고, 몸이 불편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

모기가 와도 쫓을 수 없다.

모기는 원하는 만큼 채혈을 하고 나서야

엄마에게 자유를 선언한다.

그다음은 콧물이다.

콧물은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스스로 닦을 수 없다.

보호자가 보지 못할 때면,

콧물은 입술까지 흘러내려

엄마 얼굴 위로 하얗게 번진 추상화가 된다.


보호자로서 가장 불쾌했던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과도한 시선이다.

엄마는 시선을 강탈할 만한 장치들을 달고 있다.

마른 몸, 목 한가운데 뚫린 구멍,

코에 연결된 긴 줄,

남들과 다른 멍한 시선,

그리고 휠체어.

사람들은 어찌나 관심이 많은지,

지나가는 이들의 눈총이 달갑지 않았다.

악한 의도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딱하게 보는 시선이든, 단순한 호기심이든.

지금은 어느 정도 면역이 생겨 개의치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좋게 여기진 않는다.

혹시 이런 분이 있다면,

감히 충고하고 싶다.

제발,

눈길 좀 주지 말고 가던 길 가라.


장애인이 되면 나라에서 장애인연금을 준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욕창매트 같은 일부 의료용품을 지원한다.

책 읽으라고 일 년에 14만 원짜리 문화지원비도 준다.

가끔 쌀도 주고 쓰레기봉투도 주는데

이러한 혜택은 두 발 멀쩡하고 시간이 있어야 된다.


장애인은 기본적으로 많은 의사결정을

대리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현대의 재정적 행위들은

대부분 온라인, 모바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엄마의 휴대폰이 필수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우리 엄마는 신용불량자다.

휴대폰이 없다.

이건 아주 큰 문제다.

당장 가장 급한 것은

실손보험 청구였다.

첫 달 병원비만 900만 원.

(산정특례라는 제도 덕분에 이 정도다.)

이후에도 500만 원, 600만 원씩 병원비가 쌓였다.

하지만 휴대폰이 없으면 청구를 할 수 없다.

결국, 그 모든 비용을 내 돈으로 막아야 했다.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큰 혜택 중 하나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이용권이다.

휠체어를 써야 하는 엄마에게는

적절한 주차공간이 필수였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는 장애인을 또 한 번 울린다.

차량은 장애인 본인 또는 동거인 명의여야 한다.

엄마는 압류대상자다.

차량을 등록할 수도,

내가 동거인으로 등록할 수도 없다.

차량을 등록하면

차량이 압류될 위험이 있다.

주민등록을 우리 집으로 옮기면

우리 집에 채권자가 찾아올 수도 있다.


과거,

엄마가 살던 전셋집을 정리하고

마찬가지 이유로 주민등록을 우리 집으로 옮기지 않은 적이 있다.

몇 달 뒤, 복지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주민등록 말소로 장애인연금 수령이 불가능합니다.”

그때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주거등록이 없으면,

국민으로서의 기본권도 상실된다.


파산 신청도 고민했다.

하지만 성년후견인인 나조차

바로 파산신청을 할 수는 없었다.

무려! 파산신청을 위한 권한신청 절차다.

이를 위해 제출할 자료가

채무 내역 확인서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통합채무조회를 신청했지만,

거기에 나오지 않는 채무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XX보험 같은 곳에서 빌린 약관대출은

아예 조회조차 되지 않았다.

빚이 얼마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

결국 파산 준비는 포기했다.


장애인이 신용불량자가 되면,

불편한 게 정말 많았다.

제도의 한계는 분명했지만,

앞으로 나아질 기미는 없어 보인다.

이건 소수이고, 그중에서도 최약자들이기 때문이다.

늘 그래왔지만 최약체들의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래서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나 같은 경우를 겪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비슷한 길을 걷게 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 전진하길 바란다.

나도 조언은 못하겠다.

그저 계속 넘어지면서 걷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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