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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

마른 남자의 간병기

by 꿈을꾸는아이

179(요즘은 178 같지만 건강검진에는 179)㎝에 59kg인 나는 전형적인 마른 남자다.

헬스도 꾸준히 하고, 식이요법도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늘 실패였다.

“나도 너처럼 말랐었어. 많이 먹으면 돼.”

이런 말은 수백 번 들었다.

근데 그거 아는가?

사람 몸은 다 다르다는 거.

소화효소도 다르고, 위산의 농도도 다르고, 장내 유산균 생태계도 다르다.

소화기의 길이, 장의 주름 수까지 사람마다 다 다른데

“그냥 많이 먹어”라는 말로 넘기기엔, 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실 무식한 소리 좀 그만하라고 면전에 말해주고 싶은 순간이 아주 가끔 있다.)

열심히 운동해서 63kg까지 찌워본 적도 있다.

하지만 멈추는 순간 빠르게 돌아간다.

항상성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63kg이 내게는 인위적인 수치일지도 모른다.

59kg이라는 내 몸을 온전히 받아들인 건 아니지만, 포기하지도 않았다.

달리기도 하고, 수십만 원짜리 영양제도 먹어보고, 한약도 먹어봤다.

여전히 녹록지 않다.


마른 남자가 환자를 보호하는 데 어려움은 많다.

첫째는 절대적인 체력이다.

간병을 하려면 수면 시간을 줄여야 한다.

글리코겐 저장량이 적은 마른 남자에겐 더 큰 부담이다.

무엇보다 근력이 부족하다.

체위 변경, 기저귀 갈기, 옷 갈아입히기…

말은 간단하지만 해보면 알게 된다.

특히 의식 없는 환자의 옷을 갈아입히는 건 정말 어렵다.

재활치료를 위해 휠체어에 태우고 침대에 다시 옮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면서도 어떻게든 안아서 올려야 한다.

다행히 병실의 많은 분들이 도와줬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엄마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환자는 정기적으로 다른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

우리 엄마는 키 162에 65kg 정도 된다.

절대 과체중은 아니지만, 마른 남자가 감당하기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엄마를,

내 힘만으로 끌어내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차에 실린 엄마는 반쯤 기절해 있다.

깨운다고 일어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나는 엄마의 상체를 조심스럽게 껴안고, 팔 아래로 손을 넣어 들어 올린다.

문제는 차다.

소나타 같은 세단은 차체가 낮고 문도 활짝 열리지 않는다.

내 몸을 세우기도 힘들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허리를 굽히고, 무거운 엄마를 끌어내야 한다.

이렇게 꺼낸 엄마를 몇 센티미터 옆에 있는 휠체어에 앉히기만 하면 된다.

근데 이게 쉽지가 않다. 몸을 돌리고, 중심을 맞추고

천천히 앉히는 모든 과정이 내 몸 하나에 달려 있다.

한 번은 휘청거리며 함께 넘어질 뻔했다.

자칫하면

엄마는 콘크리트 바닥을 침대 삼아 눕고, 그 위에 내가 누웠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땐 정말 하나님이 지켜주신 거라고 믿고 있다.


액션 영화에선 괴성을 지르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장면이 있다.

나도 그랬다.

진짜 힘이 나서 괴성을 지른 건지, 괴성을 질러야 힘이 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도 그랬었다.


예전엔 마른 몸에 큰 불만이 없었다.

요즘처럼 앉아서 컴퓨터로 타이핑만 하며 일하는 시대엔

강한 근육이 꼭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아프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엄마가 언제까지 아플진 모르겠지만, 꼭 엄마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언젠가 또 필요할 누군가를 위해

힘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강한 남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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