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봉희 May 10. 2020

괜찮아.

 중고등학교 시절, 오빠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오빠가 학교에 친구를 데리러 오고, 오빠가 용돈을 주고, 오빠에게 생일선물을 받는 친구가 정말 부러웠다. 첫째로 태어나 남동생 하나 있는 나는 오빠가 너무 갖고 싶었다. 그래서 한 명 있는 외사촌 오빠를 친구들 앞에서 내 오빠라고 불렀었다. 오빠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부를 수 있는 울 오빠. 울 오빠이기는 하지만 성이 다른 사촌오빠. 그렇게 나는 많은 순간 사촌오빠를 울 오빠라 부르고 정말 내 오빠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우리는 20대 후반이 되고, 30대 초반이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오빠와 나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과 다른 모양이었다. 어느 날은 마음 아픈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또 어느 날은 퇴근은 몇 시에 하냐는 말로 다듬으며 만들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나에게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말을 했다.


 “우리 봉희는 항상 괜찮다고만 하네.”


 오빠의 말을 듣고 머리가 띵 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조금 벅찬 시간을 보내며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던 문장. 괜찮다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사는 게 당연했고, 그래야만 했던 나에게 처음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준 사람. 내가 안 괜찮다는 말도 하며 살 수 있게 해 준 사람. 그날 오빠의 말로 모든 순간이 괜찮았던 내가 100번 중의 10번은 안 괜찮다는 말을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오빠는 나보다 더 많이 괜찮다고 말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100번의 순간을 모두 다 괜찮다고 말하며 살았던 내가 보여서 마음이 시큰시큰했다. 비도 내리고 하늘도 온통 회색빛 구름으로 덮인 날, 오빠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되니 내 마음속 가득 무거운 구름이 내려 듯했다. 나는 오빠 덕분에 안 괜찮다 말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정작 그의 모든 순간은 괜찮다는 말로 덮어져 가는 게 싫었다.


 나처럼 오빠도 안 괜찮다 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비록 많은 순간은 아닐지라도, 감정을 숨겨야 하는 날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른에게 상처 받는 날이 종종 찾아오더라도, 무거워진 마음이 내리는 비와 함께 쏟아져 내려 햇살을 마주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많은 날 울 오빠라 자랑하며 부르던 내 오빠의 삶이 조금이라도 가뿐해졌으면 한다.

이전 15화 보관하고 싶은 냄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