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기 싫은 마음을 꾸욱 누르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하고 아직 잠들어 있는 신랑이 깰까 살금살금 거실로 나왔다.
거실은 평소보다 어두웠다. 거실의 어두움으로 오늘의 날씨를 알 수 있었다. 거실 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밖을 내다봤다. 땅은 평소보다 짙은 색을 띠고 아파트 단지 내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알록달록 꼭지 달린 동그란 모자를 쓰고 있다. 잠시 비 내리는 장면을 감상하다, 베란다에 있는 수건을 걷으려 향했다.
언제부터 내렸는지 모를 비에 눅눅해졌을 수건을 상상하니 조금 아찔했다. 수건을 만져보니 생각한 만큼 눅눅하지 않아 반가웠다. 아찔한 마음은 잊은 채 수건을 걷고 있던 내 콧속으로 익숙한 냄새가 들어왔다.
어릴 적, 비가 내리면 우리 집 마당에서 시작하는 냄새. 학교 가는 아침에 신발을 신고 있으면 엄마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을 타고 들어오던 그때 그 냄새. 봄에만 허락하는 흔적. 어릴 적 봄비가 내리는 엄마의 정원에서 동생과 자주 느꼈던 냄새. 우리의 추억이 가득 담긴 냄새였다.
냄새는 그때의 흔적을 가득 안고 내 주위를 맴돌았다. 알아달라는 듯 내 곁은 떠나지 않는 냄새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나는 걷고 있던 수건을 내려놓고, 갈비뼈와 어깨를 한껏 들어 올려 코를 지나 목구멍까지 냄새가 도착하게 했다. 반가워라, 우리의 흔적이 가득한 냄새.
잠시 냄새에게 내주었던 시간을 다시 수건을 걷는 일에 쓴다. 걷은 수건을 가득 안고 냄새가 떠나기 전 더 느끼고 싶어 거실로 나와 급하게 소파에 내려놓는다. 생일 선물상자에 든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해 빨리 뜯어보고 싶은 마음처럼 설렘과 성급함이 내 콧속을 간지럽힌다.
내가 아는 냄새, 내가 좋아하는 흔적이 담긴 냄새를 더 깊이 느끼기 위해 거실 창 앞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내 몸보다 큰 창문을 열고 투명한 유리창 앞에 만들어 놓은 나의 정원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내가 좋아하는 기억으로 가득한 냄새가 나를 옛날의 그곳으로 데려다준다. 하나씩 그날의 흔적을 떠올리다 문득, 냄새를 함께 느꼈던 엄마와 동생이 같은 공간에 없다는 게 쓸쓸해진다.
거실 창 앞에 만들어 놓은 나의 정원에서 떠올리는 엄마의 정원. 부지런하고 다정했던 엄마의 정원에서 느꼈던 그 날의 비 냄새. 이 냄새를 오늘 엄마도 동생도 느끼고 있을지 궁금한 아침이다. 혹시 냄새를 못 느꼈으면 어쩌나 싶어 아쉬움이 머무는 아침.
오늘이 지나면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를 냄새를 보관하고 싶다. 귀여운 분홍색 체크무늬 상자에 민트색 리본을 예쁘게 묶어 두었다가 엄마와 동생을 만나는 날 선물해주고 싶어 많은 순간을 그려본다.
냄새를 상자에 담고 있는 미래의 나, 내가 포장한 선물상자의 리본을 풀어보는 엄마와 동생의 얼굴이 행복으로 물드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