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이 Apr 27. 2024

잠 잘 자는 사람

필요했던 건 그저 충분한 잠이었는지도


나의 남자친구는 잠을 잘 자는 사람이다.


우선 저녁 10시-11시쯤 일찍 잠자리에 들어간다.

또 잘 때 전화해서 깨우거나 해도 다시 1-2분 이내로 잠든다.


그래서 그가 자고 있을 거라 추측되는 시간에도 비교적 편하게 전화해서 굿나잇 인사를 한다. 주말에는 충분히 자는 편이고 낮잠도 잘 자는 편인 것 같다.


반면 나는 당최 만성 수면 부족이다.

12시나 되어야 아 자야겠다 하면서 잔다. 그리고는 아침에 일어나서 아 어제 일찍 잘걸 한다. 킬킬.


피곤해하면서도 늦게 자면서 늘 아침 다섯 시 여섯 시면 일어난다. 그냥 습관 같은 거다. 아무리 늦게 자도 아침 일찍 일어난다.


낮잠도 거의 자지 않는다. 피곤해도 거의 깨어 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예전에 잠자는 시간이 아까운 거라고 강하게 생각했던 게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아닌 걸 알지만 말이다. 어쨌든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면 피곤함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커피를 수혈하는 편이다. 상쾌하게 일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일찍 자는 거다.


아무튼 남자친구는 잠을 잘 잔다. 그의 그러한 점이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하나 재미있는 건, 함께 하는 사람의 좋은 점을 나도 조금씩 배우고 있다는 점이다.



평소 저녁 10시 반쯤.

"나 먼저 자러 갈게~"라는 인사를 받는다.

그러면 나도 '그래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 서둘러 잘 채비를 한다. 일찍 자려면 미적거리지 않는 게 포인트다.


씻고 이불로 들어간다는 간단한 과정만이 필요할 뿐이다.


오늘 토요일 오후.


어제저녁 약속으로 늦게 집에 와 늦게 잠든 나는 피곤해도 기어코 깨어 있었다. 산책을 다녀왔고 바닥에 누워서 책을 보고 있었다.


"나 낮잠 자고 일어나서 카페 갈게~"라는 카톡을 받는다. 귀여운 곰돌이가 잠자는 이모티콘과 함께. 카톡을 보고선 '흠 나도 좀 자 볼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는 옆에 준비해 둔 안대를 눈에 덮는다.


당최 낮잠도 잘 안(못) 자는 나지만 낮잠에 든 걸 보면 잠이 필요했나 보다.



30여분을 자고 일어났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가뿐해졌다고나 할까. 머리와 몸을 이고 있는 게 무거웠는데 말이다.

비관적인 생각도 덜 들었다. 피곤할 때는 나도 모르게 우울한 기분이 들었는데 말이다.


카톡이 와 있다. 밖에 날씨가 정말 시원해서 내가 나갔다 와야 한다는 거였다. 창밖을 보니 초저녁이라 아직 해가 있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있었다.


잠을 자고 상쾌해진 나는 움직일 기운이 있었다.

그래서 얼른 메론색 바지를 입고 짧은 산책을 다녀왔다.



짧은 낮잠으로 이렇게 상쾌해질 수 있다니. 그리고 희망적인 기분이 들다니.


복잡했던 머릿속과 자꾸만 비관적인 방향으로 들었던 사고 회로의 존재감이 미미해져 있었다.

몸도 머릿속도 '꽤 괜찮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내게 필요했던 것은 더 많은 외부 정보나 심각한 고민이 아니라, 그저 충분한 잠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기본적인 것.

희망적인 삶을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몸과 마음에 잘 공급해야겠다.

그리고 이런 점을 함께 해 준 남자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절대 하지 않는 인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