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승무원 일기
나는 꽤 많은 유동인구가 지나는 곳 -나름 핫플 동네라는 자부심도 있다- 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출근길에 유니폼을 가려주는 겉옷은, 더운 여름에도 필수로 챙겨다닌지 오래다.
그래도 잔머리 한 올 없이 올려 묶은 머리가 눈에 띄는지 시선을 느끼며 출근하는 날이 많다.
2018년 우리 회사는 승무원의 복장 규제가 완화되었다.
따라서 기내 근무 시에만 신을 수 있었던 3cm 굽의 기내화를 항공기 밖에서도 착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승무원들이 발 아픈 램프화(기내 밖에서 신는 5~7cm의 높은 하이힐) 대신 낮은 기내화를 신고 출퇴근을 했다.
기내에 들어가서 기내화를 갈아 신는 불편함도 사라지니 여러모로 편리했다.
짐이 하나 덜고, 캐리어 공간도 차지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 기내화를 신고 출근을 해보고 다시 램프화를 챙겨 들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그리고 공항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별로였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말이지 예쁘게 봐줄 수 없는 그 다리 비율은 그야말로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높은 굽으로 길어진 다리 길이가 실제 내 비율로 착각했었다..)
7cm의 굽을 신고 매일 출퇴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부종도 생기고 발목 건강도 나빠졌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그나마 봐 줄만 하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늘 가방 속에 램프화를 챙겨 다녔다.
면접 때마다 마음속으로 외치던, '뽑아만 주신다면 10cm도, 11cm도 신고 뛰어다니겠습니다!'라는 말을 실제로도 실천한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나는 높은 굽에도 여전히 작은 승무원이었다는 점이다.
가끔은 승무원을 준비하는 분들을 길에서 알아보곤 한다.
그들만의 분위기랄까? 뭔가 다른 분야에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과는 다른 단정한 느낌이 든다.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승준생 레이더)
하루는 지하철을 타고 퇴근을 하고 있었을 때 한 분이 슬금슬금 내 곁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두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몰래 나와의 키를 비교해보는 모습을 보니, 아마도 작은 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승무원 준비생분이셨을 거라 짐작이 갔다.
나도 취업을 준비하던 때엔 이렇게 작은 현직 승무원을 보면 큰 희망을 얻곤 했으니.
어떻게 보면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점이기에 그 분도 조심히 다가왔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크게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피곤한 퇴근길에 조금이나마 힘이 났던 것 같다.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길 바라면서.
- 2019. 09.14 (토) 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