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빠져나올 것이다.

삶의 리듬 - 앨리스 메이넬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운율이 있다. 생각의 궤도를 따라가 보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주기성이 사고 과정을 지배한다. 생각은 거리도 간격도 측정할 수 없고 속도를 확인할 수도 횟수를 알 수도 없다. 하지만 반복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지난주 혹은 작년에 힘들어했던 일이 지금 다시 힘들게 한다. 행복은 사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일정한 파도에 달려있다. 병에도 운율이 있다. 더 짧은 간격을 두고 죽음을 향해 점점 가까워지고, 더 긴 간격으로 회복으로부터 멀어진다. 어떤 이유로 찾아온 슬픔은 어제 참을 수 없었고, 내일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은 조금 견딜 만 하지만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 해결되지 않은 근심도 잠시 동안은 마음의 평화를 허락할 것이다. 후회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물론 금방 다시 돌아오지만. 즐거움은 놀라움 속에 우리 마음을 찾아온다. 즐거움이 찾아올 때마다 주의 깊게 기록을 해두었다면, 갑자기 발견하지 않고 예상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도 그런 관찰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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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리듬 - 앨리스 메이넬>

이유 없이 괴로운 나날들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잔뜩 날이 서있었고 세상 모든 것을 원망했었다. 이유 없이 괴로웠던 것처럼 이유 없이 괜찮아졌다. 매주 받았던 상담 덕이었을 수도 있고, 항우울제의 효과였을 수도 있고, 좋아하는 일러스트를 배워서였을 수도 있다.

어떤 일도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아 괴로웠다. 이대로 인생이 곤두박질쳐서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앨리스 메이넬의 말처럼, 삶에는 리듬이 있다.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다. 꽃이 피었다 지고, 열매가 맺혔다 떨어지고, 해가 떴다 지고, 달이 떴다 지고, 밀물이 들어왔다 썰물이 되어 빠져나가고. 때가 되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제 상승곡선에 올라탔다는 것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 어둠도, 괴로움도, 우울도 결국은 끝이 난다는 것을. 언제든 다시 찾아올지 모르지만 나는 다시 빠져나올 것이고, 내 곁엔 언제나 나를 도와주는 사람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누군가 나에게 "지금 행복하세요?"라고 물어본다면 선뜻 "그렇다." 대답하진 못할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행복하지 않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이런 게 행복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뾰족하게 깎은 잠자리 4B연필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종이를 스칠 때, 새하얀 캔버스에 첫 스케치를 할 때, 지는 해를 바라볼 때, 마치 원래부터 내 옷이었던 것처럼 착 붙는 옷을 살 때, 나를 향해 힘차게 꼬리를 흔드는 푸딩이를 쓰다듬을 때, 모든 순간이 지금을 위해 준비되어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울 때 그렇다. 별거 아닌, 별일 없는 하루를 보냈지만 어쩌면 나는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이 순간을 위해 그토록 견디고 참아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울할 때, 생각이 많을 때 일기를 썼다. 우울한 감정을 한참 동안 거르고 단어를 골라 토해내면 감정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양 새삼스러워진다. 나는 내 것이 아니게 돼버린 내 감정, 내 일기, 내 글을 좋아하지만, 어느 날은 일기가 내 대신 품고 있는 슬픔에 잠겨버릴 때도 있다. 그래서, 앨리스 메이넬의 말처럼 즐거움이 찾아올 때도 주의 깊게 기록해두기로 했다. 그럼 즐거움을 갑자기 발견하지 않고 예상을 할 수도 있을 테니, 즐거운 때가 왔을 때 조금 더 빠르게 즐거워질 수 있을 테니, 내 삶의 리듬을 조금 더 빠르게 반전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ipad illustration @neoyusm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