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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욘 May 05. 2022

페르난도 보테로처럼

5월의 다섯째 날이다. 아침 일찍 오래된 스마트폰에서 요란하게 알람이 울려댔다. 또 출근인가 싶어서 화가 났다가 오늘이 어린이날이란 걸 깨닫고 기분이 좋아졌다. 알람을 끄다가 카톡 몇 개가 와 있는 걸 봤다. 다시 잠들었다. 9시쯤 일어나 확인해보니 오전 5시 50분에 도이 언니한테서 온 카톡이었다. 등산 가지 않겠냐고. 언니는 콜롬비아로 출장을 갔다가 오늘 새벽 한국으로 돌아왔다. 24시간 비행하고 돌아오자마자 등산 가는 사람이 있다? 체력이 대단한 여성이다. 휴일이지만 마땅히 할 일도 없는 나는 언니를 따라 등산을 갔다. 우리는 이전에도 몇 번 같이 등산을 한 적이 있다. 오늘은 집에서 멀지 않은, 난이도가 높지 않은 아차산을 갔다. 우리는 출장 이야기, 커리어 이야기, 연애 이야기, 꿈 이야기를 하며 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며 이야기를 나누면 어쩐지 카페에 앉아 대화할 때 보다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언니는 콜롬비아의 유명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 이야기를 했다. 보테로의 그림 속 인물은 모두 볼륨감이 넘치고, 무표정이지만 어딘가 따뜻해 보이며 익살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누구든 보테로의 그림을 보면 보테로만의 스타일을 알아볼 수 있다. 언니는 내가 보테로처럼 나만의 스타일로 나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길 응원해 주었다.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벅찬 일이다. 나는 가끔, 아니 자주 나를 의심한다. 이게 맞을까, 잘하는 걸까, 할 수 있을까 고민만 하다 포기해버리곤 한다. 스스로를 응원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을 떠올리면 괜스레 부끄러워진다. 말하지 못했지만, 나 역시 언니가 언니만의 스타일로 언니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길 응원한다. 그러니까 우리 이제 의심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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