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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pper Sep 13. 2023

적당한 정신과 어디없나요?  

정신과 병원 순례기  


인생 처음으로 정신과 병원을 찾다. 


불안함, 우울, 불면증, 쏟아지는 잠과 피로, 그리고 집중력 저하...내 생애 정신과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정신과 병원을 찾으려고 보니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일단, 정신과는 과 특성상 후기가 많지 않고, 실제로 지역카페의 검색을 통해 찾으려고 해도 각자 자기에게 맞다는 병원을 찾아보라는 식의 글이 많았다. 


정신과를 찾을 때 놀라는 사실 두 가지 


그래서 가까운 병원부터 찾으려고 보니, 일단 두가지에서 놀랐다. 


첫째, 내 주변에, 특히 주요 지하철역 주변에 정신과가 이렇게 많다니. 

두번째, 그 병원들마다 예약이 한달씩 밀려 있을 줄이야


이쯤되면 내가 정신과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가 나를 허락해줘야 하는 구나. 나는 시급히 가장 빨리 예약이 되는 병원으로 접수했다. 기다리다 보면, 진료를 보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지하철역 바로 앞 3층의 허름한 건물에 위치한 이 병원은 나름 지역 카페에도 알려진 유명한 병원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정신과에 들어섰다. 


3시간을 기다렸던 첫번째 정신과  



미친놈이 대기실에 있으면 어쩌지? 아니, 아는 엄마가 있다면? 

그러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휴가기간 직후 소아과를 방불케하는 대기 인원과 그 상황이 그저 익숙하고 무료한 환자들, 환자의 이름을 실명으로 불러제끼는 (나는 정신과이니 만큼 번호로 불러줄 것을 기대했다)  무신경한 직원들로 나는 곧 정신과 대기실 풍경에 익숙해졌다. 


대기시간은 2시간 20분이었고, 드디어 60대 초반의 의사와 마주했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진료실 근처에 앉아서 대기하느라 몇시간 상담한듯 이미 지쳐버린 나는 대충 집중력도 없고 중요한 것도 빠트리고 사람의 말도 오해한다고 이야기했다. 


한참을 적으며 듣던 의사는 한마디로 이야기했다. "우울증이네요" 그리고, 자낙스 처방. 

이 병원에서 우울증이 아닌 사람이 있는 것일까?  허무했지만, 그래도 난생처음 정신과 약을 처방받았으니 얼떨떨한 마음으로 귀가했다. 


약의 효과가 있는듯 없는듯, 나는 제대로 상담한 것이 맞을까 했는데 두번째 내원에도 3시간 남짓 기다리자 나는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이곳은 예약을 받지 않는 곳이다. 이렇게 얌전히 기다리는 환자들이 정신과 환자가 맞나? 아니면, 내가 그저 참을성이 없는 것일까? 


무엇인가 불편한 두번째 정신과 


나는 집 근처 병원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정신과야말로 직장이나 집근처의 가까운 곳이 좋다고 한 말이 와닿았다. 약을 정기적으로 처방받고 장기적으로 다녀야하는 정신과는 자신의 동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좋다. 


두번째 병원은 무엇인가 불편했다. 일단 위치가 내가 여러 이유로 안좋은 기억이 있는 싫어하는 건물이다. 학원가 한가운데 있었던 병원, 영어학원과 한 층에 있던 병원은 역시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내 나이대나 청년들이 많았다. 게다가 대기실이 뻥 뚫려 있어 눈에 띄기 쉬웠다. 진료 예약을 하러 접수했으나,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어딘지 어색하게 친절한 직원의 응대가 불편했다. 


그 병원이 좋은 병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예민해져버린 내가 싫어하는 건물에 들어서며 굳이 불편한 진료를 해야하는가 하는 생각에 예약을 취소해버렸다. 



등잔밑이 어둡구나, 세번째 정신과 


누가 그랬다. 정신과는 젊은 의사가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고. 우리 나라의 정신과 트렌드가 최근 몇년 사이 굉장히 바뀌어서 최근 트렌드를 잘 이해하고, 젊은 사람들의 심리를 잘 공감하는 의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정신과는, 일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다. 더 찾을 것도 없다. 같은 빌딩에 얼마전 입주한 병원이다. 새 건물이라 사람이 별로 없겠지? 막상 들어가니, 진짜 사람이 별로 없고 당일 내원이 가능했다. 빨리 상담을 하고 처방을 받아야지 하고 들어서는 순간, 70에 가까운, 그리고 도인에 가까운 분위기를 풍기는 의사선생님이 앉아있었다. 


"아 망했다" 

그리고, 이전에 처방받은 약 리스트를 주고, 처방을 원한다고 했더니 한 눈에 내 증세를 알아보셨다. 

나는 우울증이 아니었다. 




좋은 정신과 병원을 찾으려면, 


1. 자기 동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좋다. 그러면서도, 편하게 들를 수 있는 분위기의 병원을 찾는다 

2. 한번의 내원으로는 자신에게 맞는 병원을 찾을 수 없다. 적극적으로 다른 병원을 알아보자. 

3.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되는 환경의 병원을 찾는다. 

4. 정신과는 원내 조제가 가능하다. 약국 방문이 불편하다면, 원내 조제가 되는지 물어보자. 

5. 동네 특성을 생각하자. 노년층이 많은 동네는 우울증, 치매 처방에 강하고 학생들이 많은 동네는 ADHD, 불안장애 처방에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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