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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an 13. 2022

바둑이와 나 8화

투쟁농성

당시엔 내 기도가 통한 거라고 믿었지만,  가족의 정성이 먹힌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바둑이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부모님은 약초의 힘이네 시골국의 힘이네 우기며 다퉜다. 약 한 달 정도 지났을 땐 일어서려고 한참을 버둥댔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 모양이었다. 죽음을 이겨낸 바둑이가 이젠 서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슬펐다. 아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게 고통이었다. 바둑이가 차라리 말로라도 투정을 부렸으면 낫겠다고 생각했다. 말을 못한다는 사실이 억울할 만큼 슬프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난 안쓰러워서 고개를 돌렸다가도 혹시 일어섰을까 궁금해 곁눈질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버둥대다가 간혹 일어나기도 했는데 몇 초 못 버티고 다시 고꾸라지곤 했다. 그런 바둑이 모습을 본 부모님은 기력이 모자라 그렇다며 약초 달인 물과 사골 국을 들고 서서 또 다퉜다. 나는 약초와 사골 국 때문에 그만큼 회복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바둑이가 약인지 국인지 모를 밥에 질렸을까봐 형광색 쫀디기를 잘게 찢어 간식으로 먹였다.      

역시 쫀디기 덕분인지 바둑이는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났을 때, 걷는 건 물론이고 뛰기도 할 만큼 기력이 완전히 살아났다. 얼굴도 원래의 초롱한 눈빛과 잘생긴 원래 모습으로 바뀌었고 떨거지들한테 거드름 피우는 태도까지 똑같아 졌다. 그러나 몸이 변해 버렸다. 한쪽 앞 다리는 구부러진 채 펴지지 않았고 허리가 굽어서 뛰어다닐 땐 캥거루 같았다. 동네 친구들은 누구도 흉측하다고 하진 않았지만 그전처럼 껴안고 뒹굴지 않았다. 간혹 절름발이나 꼽추란 말을 꺼낸 놈들이 있었는데, 그땐 학교 형이고 나발이고 죽자 사자 달려드는 나와 덩달아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바둑이에게 질려 뒤도 안돌아보고 내뺐다. 어른들은 내가 그들 집에 들이닥쳐 개판치는 보복을 실행하지 않았음에도 무슨 일인지 대놓고 흉보지도 않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바둑이가 살아난 게 약초나 사골보다 내 기도의 효험이 더 컸다고 믿었던 나는 더 자주 교회를 나가다가 바둑이가 끝내 영원히 불구가 된 걸 인정한 후부터 하나님의 전지전능에 의심이 슬금슬금 들어서 교회도 슬금슬금 나갔다. 바둑이가 내 쫀디기에 환장하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먹을 것 주는 날에만 교회에 가는 예전의 나로 돌아간 것이다. 대략 그때부터 부모님의 약초와 사골 국도 거짓말같이 끊겨 버렸다. 처음엔 나처럼 더 이상의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인줄 알았는데, 부모님이 그것들을 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둑이가 기력을 완전히 회복했을 땐 동네 여자 개만 보면 쩔룩거리며 달려가 겁탈을 하려는, 전에 못 보던 매우 개스러운 면모를 보여서 약초의 부작용이냐 사골 국의 부작용이냐 또 싸움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내가 4학년이 되던 이듬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마당이 개판이 된 것은. 

이것들이 툭하면 가출이나 외박을 일삼더니 어느 날은 동네 아줌마가 너희 집 씨라고 새끼 두어 마리를 가져오질 않나, 떨거지 중 어떤 것들은 배가 불룩해서 돌아다니질 않나, 아무튼 이것들이 발라당 까져가지고 개 날라리 짓들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 마당이 놈들이 싸질러 놓은 새끼들까지, 대략 십 수 마리가 똥 싸지르는 ‘개들의 왕국’이 돼 버렸다. 개판만이 문제가 아니라 놈들이 먹어 치우는 식량이 어마해서 솥을 아예 가마솥으로 바꿔야 할 지경이 됐다. 부모님이 무슨 개장사도 아니고, 집이 보신탕집도 아닌데 단지 마당이 넓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네, 아니 구에서 가장 많은 개와 개집을 보유한 개 부자가 돼서 난 좋았지만 부모님은 달랐다. 내가 이제 막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한 새끼들과 엉켜 개똥밭에서 구르고 있을 때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식량대란을 걱정하고 계셨다. 결국, 견구수를 줄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지자 젖 뗀 새끼들을 동네 이웃들께 나눠주려는 음모를 꾸미셨던 것이다. 아버지가 술김에 불어 버린 그 음모는 내겐 이길 수 없는 전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난 안하던 공부까지 하며 거의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그때 또 처음 안게 있다. 바로 단식 투쟁의 힘이다. 역시 자식이 굶는 건 볼 수 없으셨는지 아버지는 일단 새끼들이 좀 더 클 때까지 결정을 보류하겠다는 협상 카드를 내밀었고, 난 배가 너무 고팠으므로 협상테이블에 있는 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것으로 극적 타결을 봤다. 그래도 뭔가 미덥지 않아 학교를 마치면 한 달음에 달려가 마당에 풀어진 개들 머리수를 세는 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분명 떨거지들을 지휘하고 있어야 할 바둑이가 보이질 않았다. 불길한 예감에 동네를 다 헤맸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하도 가출과 외박이 잦았던 때라 곧 돌아오겠지 하고 스스로 안심시키면서도 뭔지 모를 이상한 예감은 버릴 수가 없었다. 그날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밥상을 두고 태연한 척 의혹을 넌지시 던졌다. 바둑이가 안 보인다고. 이놈이 또 가출 한 것 같다고. 그런데 막걸리를 들이키시던 아버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매우 천연덕스럽게 말하셨다.      


“그놈 개장수한테 팔았다. 크흠.” 

“...........??!!!!!”     


처음엔 그 사실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아버지가 놀라워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 다음으로 그 ‘사실’이 사실이라는데 또 놀라고 다른 놈도 아니고 바둑이란 사실에 연거푸 놀라 벌린 입에서 밥알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도 몰랐다.          


‘뭐시라? 누굴? 바둑이를? 그것도 팔았다고???!!!!’


원래 기가 막히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농담이겠거니, 괜한 장난이시겠거니 싶어 괜히 아버지에게 실실 웃어보였다. 그러나 외면하고 묵묵히 밥만 푸시는 아버지 표정은 사실을 말하고 있었으므로 비로소 사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씨. 이거 뭐냐.’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는데, 그때 치밀었던 분노는 거의 기절할 정도였고, 기분은 바둑이가 사고가 당했을 때와 동급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대책을 강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한 어떤 대책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뭔가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과 달리 난 밥상 앞에 앉아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내가 신성한 밥상머리에서 울고 있자 아버지는 밥상을 내리쳤다. 아버지가 하나도 안 무서웠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 내 심정은 진심 그러거나 말거나 였다. 그대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가출을 결심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영원히 집에 들어가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어찌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으로 한참을 동네를 서성이다 나도 모르게 한강으로 향했다.      


‘바둑이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이후의 세상이 상상이 안됐다. 그래서 찾긴 찾아야겠는데, 찾을 수만 있다면 전국을 돌아다녀서라도 찾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찾아야 할지, 전국을 돌아다닐 여비는 어떻게 마련할지 모든 게 막막했다. 멍했다가, 슬펐다가, 분노가 일었다가 다시 멍해지고 했다. 가까스로 살아났건만 개장수에게 끌려가 결국 개죽음을 맞고 개고기가 될 바둑이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불쌍한 바둑이를 강물에 던졌던 그 바위에 앉아 자책하며 우느라 아침이 밝은지도 몰랐다. 밤새 울고 나자 이상하게도 살 것 같은 기분이 됐다. 문득 아버지께 이유라도 묻고 싶어졌다. 왜 하필 바둑이었는지. 그리고 이건 분명 일방적으로 협상을 깬 도발이며 어이없는 폭거라고 대들기라도 하고 싶었다. 집으로 향했다. 불쌍한 바둑이를 위해서라도 따져야 했고 역시 또 배가 고팠다. 어린놈이 외박을 했으니 분명 처맞을 게 분명했지만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한두 번 맞나? 내가 가출이라도 했을까봐 밤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부모님을 생각하니 오히려 통쾌했다. 작은 복수를 한 것 같아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런데.. 

벌써 장사 나갈 준비를 하시던 부모님은 나를 힐끔 보시더니 하시던 채비를 마저 하셨다. 

참 이상한 부모님이라고 생각했다.     

 

“밥 차려 놨으니 얼른 먹고 학교 가라.”     


집을 나서던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말씀이었다. 두 분 다 내가 금방 들어 올 걸 이미 알고 계셨음이 분명했다. 뭐랄까, 굉장히 자존심 상했다. 분노를 알아주길 바랐건만 이미 나를 훤히 꿰뚫고 계신 것 같아 억울했다. 따지는 건 저녁으로 미루더라도 그 전에 뭔가 보여줘야 했다. 처음엔 밥이고 학교고 간에 다 거부하고 싶었다. 그런데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밥을 안 먹을 것인가, 학교를 안 갈 것인가를 두고 갈등했다. 결국 밥을 먹고 학교를 땡땡이치기로 했다.

      

그날 저녁 밥상에서도 부모님의 태도는 여전했다. 바둑이를 팔아넘기고 어린 아들 놈이 가출 비스 무리한 걸 했음에도 참 무심했다. 일단 아버지가 호통이라도 치셔야 왜 팔았는지, 나 없을 때 어떻게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대들며 따질 텐데, 당최 아무 일 없다는 듯 아무 말 없으시니 대략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또 밥숟가락을 들지 않기로 했다. 부모님은 딴 건 몰라도 밥에 대한 ‘예의’만큼은 남다르셨다. 밥을 숭상했다고 할까? 우리 집에서 밥은 거의 종교와 동급이었다. 밥상에 팔을 괸다거나, 깨작거린다거나, 밥 먹으면서 딴 짓이라도 했다간 숟가락으로 머리통을 맞아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가 첫 숟가락을 뜨신 후에도 밥상 밑으로 두 손 내리고 있는 나를 본 아버지 눈빛이 번뜩이더니 숟가락이 날아들었다. 


‘흥!!’ 


평소라면 모를까 그날만큼은 숟가락이 아니라 몽둥이가 날아든다 한들 꼼짝할 내가 아니었다. 난 움츠러들기는커녕 목을 더 빳빳이 세우고 더 때리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더 이상 어떤 꾸지람이 없으셨다. 더 때리고 뭐라고 호통이 쳐야 대들고 바둑이 문제를 꺼낼 텐데, 또 난감해졌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서 끝나면 맞은 게 억울해질 테니.       


“바둑이 왜 팔았어요?”

“....”

“왜 팔았냐구요. 저와 약속하신 거 있잖아요, 왜 약속 안 지키셨어요?     


난 명백한 협정 위반임을 목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자 아버지는 꿈에도 상상 못할 기상천외한  답변을 밥알을 꼭꼭 씹으시며 말씀하셨다.      


“새끼 아니잖아. 너랑 약속한 건 새끼들이지.”         


난 또 벙어리가 됐다. 절실한 순간에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는 내 머리를 저주하다 아버지의 비상한 머리를 생각하니 난 어쩌면 이집 자식이 아닌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저 머리로 돈은 왜 못 벌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잠깐 들었다.      


그날 밤은 바둑이 집 앞에 앉아 밤을 새는 것으로 시위를 했다. 그런데 간헐적 단식과 철야 농성한지가 벌써 이틀째였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눈이 감겼다. 염치없는 배는 계속 꼬르륵 소리를 냈다. 지지리 나쁜 내 머리와 첫 단식 때 하루도 못 버티고 밥상에 달려들 만큼 거지가 들어앉은 내 배를 쥐어뜯으며 밤을 지새우며 생각했다. ‘왜 하필 바둑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딱 하나, 그저 바둑이가 밥을 제일 많이 먹는 죄로 찍혔다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새벽녘에 바둑이가 먹던 밥과 비슷한 국밥을 들고 오신 어머니가 말씀하신 이유는 내 상상과는 멀어도 한참 먼, 은하계 너머에서나 들을 수 있는 황당무계한 것이었다. 그게 이유가 되나 싶을 만큼 이해불가인데다, 이틀씩이나 단식을 하고 있는 자식을 두고 아무거나 갖다 붙인 무성의한 변명을 한 것 같아서 서러웠다. 그래서 기어이 어머니가 놓고 가신 밥도 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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