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틱 Mar 09. 2022

바둑이와 나 마지막화

에필로그

인연인지 뭔지 모르지만, 나이를 한참 더 먹는 동안 키울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개가 자꾸 집에 들어왔다. 딸아이가 주워 온 유기견만도 수 마리에 동네 여기저기서 데려다 키워달라고 막무가내로 맡긴 강아지, 하다못해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물어뜯긴 새끼 강아지도 꼭 우리 집으로 숨어들었다. 그때마다 난 비장한 심정이 돼야 했다. 처제가 제 아이들 친구 삼으라고 사왔다가 감당을 못하고 우리에게 내던진 강아지도 두 마리였는데, 마지막 놈은 딸아이이 성화에 지쳐 식구로 삼았다가 지금까지도 원망을 듣고 있다. 먹이는 몰라도 최소한 목욕과 산책만큼은 책임을 다하기로 딸아이에게 다짐을 받고 식구로 받아들였만, 입시를 준비하는 딸에게도, 맞벌이인 나와 아내에게도 입 작을지언정 살아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운다는  자식 하나 더 키우는 것과 같았다. 옛날과 달리 돈없이 개를 키울 수 없었다. 밥마저 사먹여야 했고 조금만 이상 증세가 보여도 동물병원에 가야하니 경제적으로 가장 궁핍했던 때, 마이신 얘기를 꺼냈다간 그야말로 개 취급 당하는 문명사회였다.     


엉덩이가 펑퍼짐해서 ‘만두’라 이름 지어준 녀석은 식구가 된 후 몇달이 안돼 혼자 텅 빈 집안을 지키는 날이 늘어갔다. 직업상 밤샘이 일상인 내가 그 자리를 채우기도 역부족인데다, 일과 가사에 치인 아내 혼자 감당하기엔 우리는 시간도, 정서적 여유도 없었다. 결국 개 다운 행동에도 나도 아내도 녀석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야 우리가 있을 때 등교를 하고 하교를 하지만 나는 출근할 때면 문을 박박 긁으며 울다시피 짖는 만두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서느라 마음도 박박 긁혔다. 시시 때때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애들 말만 믿고 중대 결정을 쉽게 해버린 나를 자책했다. 출근길만 괴로운 게 아니었다. 퇴근길 멀리서부터 냄새를 맡은 만두가 짖어대는 소리에 마음이 급해져 주차 중에 남의 차를 긁은 일도 있을 만큼 마음이 늘 조급했다. 업무 회식 자리에서도 집에 누가 와있기를 바래야 했다. 급기야 딸아이가 학원을 등록 하고부터 녀석은 일주일 내내 텅 빈 집에 혼자 있었다. 녀석을 맞은 지 1년이 다 돼 갈 무렵, 주말조차 혼자 방구석에 쪼그리고 있는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다 아이들 몰래 입양을 시켜버렸다. 그날 이후 며칠간 우리집엔 살벌함과 적막만 남았다. 경우야 다르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내 아버지가 그랬듯 나 역시 아이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도발적 만행을 한 셈이다. 아이들의 분노한 눈빛에 대고 약속과 책임을 말하고 만두의 심정을 말해봤자 소용없었다. 그땐 아이들이 어려서 원망만 했다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소홀함에 대한 반성 없이 상처로만 기억하는 건 그래서 아쉽다.

      

설마 육식을 하는 내가 동물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가졌을 리 없다. 나는 동물에게 그저 애완이란 용어보다 반려라는 말이 적합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애완이란 말은 왠지 인간의 입맛에 맞추는 느낌이라서 그렇다. 적어도 반려동물이라 생각한다면 녀석들 입장에서 생각해야한다고 믿는다. 상대가 개면 개 수준으로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인간 맘대로 다루려는 태도를 경계한다. 데리고 살 형편도 안 되면서 귀엽다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데려와 놓고는 가두고 굶기고 때리는 인간들을 혐오한다. 자기보다 큰 짐승한테는 벌벌 떨면서 작고 약한 것들한테만 인간 유세 떠는 것들이 싫은 것이다. 길 고양이가 어슬렁대면 발로 냅다 걷어 찰 기세였다가 놈이 털을 세우고 눈을 밝히면 뒷걸음질 치는 인간들, 약하고 말 못한다고 제 맘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기 바랄 뿐이다. 혹성탈출처럼 녀석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쩌려구.       

      

이 글을 처음 쓰려고 했던 이유는, 늘 보던 공원의 산책 나온 개들이 갑자기 어느 날 팔자 좋게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내가 키웠던 개들이 불쌍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 쓰고 보니 그때 그놈들이 어쩌면 더 행복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야만의 시대에 재수없게 인간과 같이 살다보니 언제 밥상에 오를지 모를 운명이라 그렇지 사는 동안은 제 맘대로 짖고, 온 동네 싸돌아 다니고, 눈 맞으면 교미하고.. ㅋㅋ.. 

짜식들이야말로 개답게 살다 간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둑이와 나 10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