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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n 05. 2024

나는 왜 사랑이란걸 못해봤을까?

나이 오십줄에 첫사랑을 하다

난 왜 사랑이란 걸 해보지 못했을까?

과거를 아무리 되짚어 봐도 난 사랑을 한 적이 없다.      

중학교 입학 전에 부잣집 하얀 여자아이를 사랑한 적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그저 가난한 동네의 가난한 까만 놈의 부잣집 하얀 아이에 대한 동경이었다. 말 한 번 못 붙여본 그 아이를 사랑했다고? 짝사랑도 사랑이라면 할 말 없지만 내 기준에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동경이고 선망이다. 중학교 시절 어떤 여자아이에게서 좋아한다는 편지를 받은 기억이 있지만 난 그 아이가 누군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어서 요즘말로 썸 한번 타지 못하고 싱겁게 끝나버렸다.      


10대 때 내 가슴에 그린 사랑이란 순수, 헌신이었다. 그런 사랑을 하고 싶었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 무렵 본격적으로 이성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고 가슴앓이가 시작됐다. 그 대상도 참 다양했다. 동네 친구, 친누나 여자친구, 교회 성가대 친구, 친구 여동생.. 아무튼 줄기차게 대쉬 하고 연달아 딱지 맞고, 그래도 또 대쉬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언제나, 100% 빗나갔다. 하필 압구정동에 설립된 중학교에 청담동 배밭골 원주민이 섞여 들어갔으니 내가 좋아했던 여자들은 유유상종이라고, 같은 부류의 부잣집 애들과만 어울렸고 이미 좋아하는 남자가 있거나, 교회오빠를 쫓아다녔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내가 어렵게 꼬셔놓은 여자들 대부분은 내 친구들이 채 갔다. 처참하지만 사실이었다. 한 여자애는 나와 좋아 지내다가 친구 놈이 일부러 얼굴을 면도칼로 (살짝) 긋고 집안 문제로 반항하기 시작했다며 술병을 깨자 놈에게로 갔다. 참 알 수 없는 여자들 심리였다. 학교 모범생이라 불리기도 하고 인기투표 1, 2위인 부잣집 여자애들은 열이면 여덟 불량 써클 애들과 어울렸다.      

20대 때 내 가슴에 그려진 사랑은 위악과 위선이었다. 하레이 데이비슨까지 아니어도 mx-125정도의 오토바이나 하다못해 가스 배달하는 오토바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도 아니면 당구 500은 쳐줘야 했다. 모범생이라도 뭔가 끼가 넘치거나, 반항적이면서 수틀리면 여자 따귀도 서슴없이 갈기는 남자를 여자들은 좋아했다.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이태원 뒷골목에서 합숙 셋방을 살던 놈은 외국 여자만 사귀었다. 영어를 못해서 여친이 욕을 해도 멀뚱한 표정만 짓던 놈이지만 그러다가도 ‘야, 타!’로 여자하나 태우고 남산 구불 길을 누워 달리면 여자가 사족을 못 썼다. 또 내가 좋아했던 대학생 누나는 동네 당구장 형 애인이 돼서 공을 닦았다. 이상했다. 왜 여자들은 착하게 본인을 순수하게 좋아하는 남자보다 ‘껌 씹는 남자’를 좋아할까? 순수하게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는 호구로 알고 날라리거나 껄렁하거나 ‘데리고 놀려는 남자’를 좋아할까?      


스무 살, 입대를 연기하고 가게를 할 때, 정말이지 열렬히 짝사랑한 여자가 있었다. 옆집 ‘에스크라’라는 레스토랑의 사장형 여동생이었는데, 정말이지 길가에 나서면 여자들도 힐긋거릴 만큼 엄청난 미인이었다. 키가 167이었고 가는 목에 잘록한 허리, 무엇보다 늘씬한 다리가 서구적 비율로 떡하니 상체를 받치고 있었다. 게다가 세상에! 그 작은 얼굴에 눈, 코, 입이 오목조목 최상의 자리에 최적의 거리를 두고 붙어있었다. 다만, 이름이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순이’였다. (그녀의 부모님은 순이 씨가 커서 저런 모습이 되리란 걸 예상치 못해서였을까? 세상 누가 저렇게 세련된 우리 순이씨 이름이 순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가게가 붙어 있고 에스크라 형과 술이나 안주를 급히 교환하는 관계라 나와 자주 볼 수밖에 없는 사이임에도 그녀는 내게 일말의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애절한 관심을 표해도 시큰둥했다. 아니, 귀찮아하기까지 하는 듯 했다.      

내 친구 중 학동이란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영화 매드 맥스의 멜 깁슨 흉내를 낸다고 한 여름에도 가죽 잠바에 리바이스 청바지,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다녔다. 생긴 건, 음..., 친구들 사이에서 뒤집지 않은 호떡이라 불릴 만큼 앞으로 툭 부어 나온 큰 얼굴에 눈, 코, 입이 자유분방하게 분포돼 있었다. 또 멜 깁슨 파마로 그 얼굴을 가려 놔서 동네 깡패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아우라(?)가 있었다. 게다가 녀석은 자아가 있나 싶을 정도로 넉살이 좋아서 아무여자에게나 들이대고 뺨을 맞아도 입맛만 다시는 놈이었다. 그런 녀석의 주파수에 순이씨가 잡혔다. 이후 녀석은 허구한 날 에스크라를 드나들었다. 그리고 한번 들르면 노가다를 뛰어 번 일당을 동전 한 닢 안남기고 술값으로 썼다. 녀석과 순이씨, 그리고 에스크라 형과 두어 번 같이 합석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순이 씨에게 노골적이고 집착적으로 구애를 했다. 그녀가 서빙을 하면 벌떡 일어나 쟁반을 뺐어들고 언제쯤 만날 수 있을지 졸졸 쫓아다니며 집요하게 캐묻고 쌀쌀맞은 거절을 당해도 허허 웃고 말았다. 그러고도 다음날 또 나타나 순이씨가 비질이라도 하면 녀석은 대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으며 비질을 하는 순이씨를 졸졸 쫓아다니며 만남 약속을 요구했다. 그 넉살이 어찌나 좋은지 누가 제 여동생에게 합석하자고만 해도 눈을 부라리며 덤비는 에스크라 형도 킥킥 웃고 말았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여동생을 말이 레스토랑이지 술파는 업소에 서빙을 시키는 그 형도 이해가 안됐다. 어쨌거나 순이 씨는 역시나 녀석에게도, 아니 누구에게도 고운 눈길 한 번 안 주는 도도한 여자였다. 물론 녀석은 진정 순이씨를 좋아한 게 아니었다. 녀석은 아무도 넘보지 못한 그녀를 꺾어 주위에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봐 온 녀석은 늘 그런 식이었다. 무엇을 해도 보이기 위함이었고 자랑하기 위함이었다. 알파벳도 다 못 외우면서 짧은 몇 마디에도 영어를 섞어 말했다. 비싼 헬스장을 다니는 것도 멜 깁슨처럼 건장하게 보이기 위함이었고 여자에게 들이대는 것도 그녀가 좋아서가 아니라 승부욕 따위이거나 친구들에게 우월감을 표시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난 녀석의 진심을 본적이 없었다.      


3개월쯤 지나 학동이가 사라졌다. 소식에 의하면 그간 노가다 뛴 돈을 악착같이 모아 미국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물론 멜 깁슨을 보기 위해서다. 그것은 녀석에게서 본 최초의 진심이었다. 녀석이 안보이자 순이 씨가 녀석을 찾았다. 더구나 그립다는 듯 연락할 방법을 내게 물었다. 나도 녀석의 소재를 모른다며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그날 난 가게 셔터를 내리고 술잔을 부르르 떨며 마셨다. 10대 때부터 언제나 배신감을 안기고 절망감을 느끼게 한, 많이 봐 온 여자들의 알 수 없는 심리였지만 이번 사건은 내 연애관, 이성관과 함께 대가리 통이 뒤집히는 층격이었다. 21살 되던 겨울밤. 난 가슴에 새겼다. 앞으로 여자에게 순정 따윈 주지 않으리라. 세상 여자는 순정 따윈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로지 제 호기심을 채워 줄 남자가 필요한 존재이다. 순정을 바치는 남자를 호구로 보며 오히려 여자를 하대하고 도구로 취급해야 오히려 좋아한다. 그리고 현관 한쪽에 칼로 새겼다. ‘내 청춘의 공간 문틈으로 비친 오후여. 이제 틈 없이 문을 굳게 닫고 어둠속으로 가겠다.’

그 후 보름여 만에 가게를 헐값에 넘기고 한 달 후 입대를 했다.     


군대 3년 동안 들은 여자 얘기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만 천 이 백번은 들었다. 고참부터 쫄따구까지 그들이 늘어놓은 연애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순수, 순정 따윈 역시 없고 여자를 꼬시는 스킬만 있었다. 그들이 얘기한 여자들은 하나같이 남자의 돈(선물)과, 배려를 가장한 매력에 맥없이 무너지는 허약한 속물들이었다. 한 고참은 제 스킬을 자랑하기 위해 다방에 날 데려다놓고 10분 안에 다방 레지를 데리고 나오는 고도의 ‘카사노바’ 기질을 시연했다. 설사 티켓(시간당 출장비)을 끊고 나왔다 하더라도 불고기 집에서 보이는 그녀의 말과 표정은 실제 1년은 사귄 듯 다정했다. 그 모습이 역겨워 고참의 앞니를 부러뜨리고 싶었지만 가슴속에 정체모를 씁쓸함이 꿈틀댔다. ‘그렇지. 세상에 사랑은 없지.’        


아이러니하게도 제대 후 내가 사귄 여자는 부모님이 좋아하실 여자였다. 연세가 많아 제대 후 직장생활 한지 얼마 안 돼 환갑잔치를 하게 됐는데 부모님이 딱 찍은 여자였다. 아무도 빨리 장남 노릇하라고 재촉한 것도 아닌데 사내 커플로 지내다 2년 만에 결혼하고 4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해할 때까지만 서로 사생활 터치 없이 한 지붕 밑에서 살기로 합의하고 살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이혼했다.      

그 시절 어차피 사생활 터치가 없기로 합의 한 터라 닥치는 대로 여자를 만났다. 입대 전 ‘문틈’에서 다짐했듯 사랑이니 순정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어둠의 세계’로 들어서자 여자들이 ‘꼬였다.’ 바에서 술 마시다 눈 맞아서 사귄 적도 있고 입대 전 장사하던 동네 누님을 만나 사귀기도 했다. 일하다 거래처 여자를 만나기도 하고 여행 중 만난 여자와 사귀기도 했다. 사랑 따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인스턴트 식 연애를 추구하니 친구들이 여자와 어울리고 싶을 때 나를 찾을 만큼 내 주위엔 늘 여자가 있었다. 사귀기 위해 큰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으니 헤어질 때 상처를 입을 일도 없었다. 역시 세상에 사랑은 죽어있었다. 내 청춘의 아지트 ‘문틈으로 비친 오후’에서 사랑과 순정을 버리기로 다짐하길 잘했다는 자부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늘 뭔가 공허하고 허전했다.     


사랑에 권력 관계가 있을까?

난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흔히 얘기하는 ‘밀당’의 본질은 덜 손해 보겠다는 심리다. 상대가 날 더 사랑해야지 내가 더 사랑하면 연애 중에나 헤어질 때 심리적 손해가 클 테니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숨기고 ‘스킬’로 상대를 끌어당기거나 적정거리로 밀어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밀당의 승자는 ‘권력자’가 된다. 승자는 선택에 우선권이 있고 패자는 마음에 안 들어도 따르게 된다. 물론 그 관계가 오래 갈 리 없지만 말이다.      

밀당의 다음 단계로, 어쨌든 사랑하는 단계가 되어도 누가 더 사랑할지 말지 2차 밀당이 시작된다. 누가 더 사랑하느냐 싸움이라면 아름답기나 하지, 누가 더 날 사랑하게 할지의 다툼이라 추잡하다. 사랑이라 믿는 허상 속에 권력관계가 내재 돼 있는지 조차 모르고 마음 가는 만큼 사랑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마음 고생하게 돼있다. 예컨대, 사랑하는 상대가 연락이 뜸하면 별의별 생각에 노심초사한다. 상대의 관심이 뜸해지면 다른 사람이 생겼는지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의심을 하며 노심초사하는 자신을 자각하면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또 마음가는대로 상대를 너무 위해주면 상대는 받는 게 권리인줄 착각하고 공주나 왕자 행세를 한다. 서로 순수하게 마음 가는대로 표현하며 곱게 사랑을 키워가다가도 오해가 생기면 대화를 통해 관계를 더 돈독히 하면 좋으련만, 각자 상처 받은 감정에 집중하느라 합리적 대화가 힘들다. 그래서 열렬히 사랑해도 모자를 시간에 질투하고 오해하고 다투다 시간 다 보낸다. 그래서 내가 쿨(?)한 만남만 가졌으며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밀당을 하려는 상대는 시작도 전에 거절했다. 이 더러운 세상에 사랑은 죽었으니까.      


십대 때 내 가슴에 새긴 사랑의 개념은 순수였고 이십대 때 내가 새긴 사랑의 개념은 위악이나 위선이었다. 그러니까 머리통이 커진 후로 난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믿지 않고 살아 왔다. 서로의 필요나 욕구충족에 합의를 한 거면서 사랑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다.  그렇게 조금은 공허하고 허전하지만 가성비 좋은 연애지향주의자인 내게 재작년부터 문제가 생겼다. 진짜 사랑하는 여자가 생겨버린 것이다. 수 십 년 동안 사랑 따위 믿질 않고 살았기 때문에 이 여자를 만났을 때도 의심의 여지없이 잠시 만나다 헤어질 인연으로 생각했다. 내가 사는 세상에 사랑은 죽었으므로. 그런데... 

이번은 뭔가 아니었다. 뭔지 모르지만, 하여튼 아니었다. 순수했던 10대 때 사랑의 열병을 앓듯 자나 깨나 그녀 생각만 났다. 그녀가 웃는데 왜 내가 기분이 좋은지 알 수 없었고, 초롱한 눈으로 날 보며 재잘거릴 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도 믿지 않았다. 오래된 습관처럼 사랑을 안 믿었고 여자를 안 믿었다. 아니, 안 믿으려 노력했다. 자꾸 마음이 휘저어질 때면 그저 지금까지 만난 여자들과 달리 뭔가 좀 특별한 부분이 있는 여자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자꾸 마음이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말이 되나?) 눈 내린 겨울 어느 날 내 가게에 들렀다 배웅을 받고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난생 처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한참동안 아렸다. 자꾸만 한숨이 나오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가게 일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맑게 웃으며 뒤돌아선 그녀의 모습이 왜 그리 쓸쓸해보였을까. 세상이란 둥지에서 그녀와 나 단둘이만 떨어져 나와 거리에서 뒹굴듯 쓸쓸한 위태로움과 함께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운명처럼 이 세상에서 그녀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뭘까? 이 감정은. 내가 왜 이런 기분일까. 몇 시간동안 멍하니 생각한 끝에 내린 그 감정의 정체는... 젠장. 내가 순수한 십대 때 그렇게 갈망했었던 ‘사랑’이란 것이었다. 희한도 하지. 왜? 이제 나이 오십이 넘어서? 넘사시럽긴 해도  어쨌거나 그날부로 그녀는 오십 줄에 만난 내 첫사랑이 되었다. 내 감정의 정체가 밝혀지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도 죽기 전에 사랑이란 걸 해 보고 죽는 구나 싶으니 하얀 눈이 내 심장의 붉은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

       

나날이 행복했고 나날이 기대됐다. 눈을 뜨는 게 행복했으며 저 멀리서 날 보러 가냘프게 뛰어오는 그녀를 보면, 미리 예감했듯 둘만 떨어져 있는 이 세상에서 한 마리 새가 내 품으로 위태롭게 날아드는 듯 했다. 그녀의 얼굴만 봐도 행복했으므로 내가 행복한 만큼 그녀를 더 행복하게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난 모든 면에서 더 강해져야 했다. 그런데 사랑에 익숙해지자 난 강해지기는커녕 나태해졌다. 그녀와의 달콤함에 빠져 내가 해야 할 일을 잊었다. 술에 취하면 땅이 올라오지 내가 땅으로 고꾸라진다는 걸 모르는 것과 같았다. 몇 번이나 휘청거리는 나를 그녀는 불안한 눈빛과 초조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때마다 난 그녀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재롱을 떨었다. 악순환이 시작됐다. 난 또 휘청거리고 그녀는 더욱 불안해하고 힘들어하고 난 또 만회 한답시고 자존심을 버리고 그녀를 위해 숫제 슬랩스틱 코미디를 했다. 그러는 사이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사랑한다면, 오히려 사랑한다면 그 나이되도록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 병과 치부를 솔직히 드러냈어야 했지만 그녀가 더 안전한 곳으로 날아갈까 봐 조마조마 숨겼다. 그리고 의지로 내 치명적, 태생적 치부를 다른 대체제로 가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가린다고 가려지는 게 아니었다. 덮는다고 포장되는 게 아니었다. 더구나 이미 서로에 대한 긴장이 풀어진 후라 내 치명적 단점이 드러나는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그녀는 어느새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고 난 자괴감에 빠져갔다. 이제 그녀도 내 치명적이고 공포스런 단점에 대해 다 안 이상 나에 대한 존중을 버린 듯 했다. 서로 계산 없이 순수하게 사랑했건만 내가 가장 혐오하는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말았다. 그녀는 나에 대한 존중을 잃었고 난 그녀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무표정하고 냉랭해도 난 느끼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믿고 싶었다. 아직 나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음을..   

   

그러나 어느덧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듯 했다. 내 모든 성격적 치부와 정신병까지 드러낸 이상 내게 남은 건 초라한 자존심만 남았다. 마치 10대와 20대 때 문틈으로 비친 오후의 빛을 아예 차단한 것처럼 피폐한 자아를 부여잡고 시커먼 자존심만 들쳐 메고 다시 어둠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진정 처음으로 사랑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사랑’이란 걸 했으니 이제 여한은 없다고 믿었는데.. 과거형이 되는 게 이토록 싫을줄 몰랐다. 내가 언제 사랑이란 걸 했다고, '문틈으로 비친 차단된 오후'로 가면 마음 고생없을 텐데. 사랑한 게 분명했고 사랑하면 밑바닥을 보이게 돼 있다. 닫히는 중환자실 문을 발로 막고 난 울부짖듯 애원했다. 그곳에 있어만 달라고. 그러면 새로운 모습으로 달려가겠다고..             

진짜 루비콘 강을 건넜든 아니든 우리의 사랑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모르겠다. 내가 내 병을 고치고 새롭게 나타난들 우리가 과거의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을 할 수 있을지. 난 생애 첫사랑을 했지만, 아직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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