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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un 08. 2024

고백2

나는 약물 중독자다

2. 난 약물 중독자다.     

2020년. 26년간의 내 고유 직업을 버렸다. 더 이상 열정도, 애정도 모두 식어 버렸다. 언젠가부터 프로젝트 오더가 떨어지면 돈벌이보다 스트레스가 먼저 걱정됐다. 일에 대한 열정이 있을 때는 언제나 받는 일에 관한 스트레스 따위는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열정이 식으니 그 스트레스가 거의 공포 수준이 되었다. 먹고는 살아야 했고, 가장 오래 했고 가장 자신 있는 일이 영상제작이었고, 나이 때문에 퇴물취급받는 것도 견딜 수 있었지만 직업을 놓아버리기로 결정한 중요한 이유는 내 만성 중증 불면증 때문이었다. 프로덕션에 다닐 때에도 직장인이면 퇴근과 동시에 일을 놓아야 하는데 난 잠자리에 들어서도 일을 생각했다. 다음 날 촬영 때 생길 수도 있는 온갖 변수, 편집 때 생길 수 있는 변수, 없는 자료를 메울 방법 등 걱정도 가지가지였다. 영상제작이란 게 늘 의외의 변수가 일어나기 마련이라 그 변수 발생 때 상황대처 하느라 진땀을 뺀 기억이 하도 많아서인가 싶은데 그 바닥에서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늘 걱정했다. 영상바닥에선 초긍정이거나 낙천적이거나 일에 허술한 사람들이 큰 스트레스 없이 오래 일하는 걸 보면 어쩌면 난 애초 적성엔 맞으나 체질엔 맞지 않는 일을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건지 어쩐 건지 어쨌거나 늘 일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어쨌든 시작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밤샘을 밥 먹듯이 하다 보니 수면리듬이 깨져 제때 잠을 못 자는 불면이 시작된 것이다. 그럴 땐 술이 큰 위안이었다. 긴장도 풀어주고 내일 일 따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배짱도 만들어 줬다. 그러나 그렇게 술에 의지해 잠을 자는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몸이 망가졌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불면은 이제 만성이 되어 수면제 없이는 절대로 잠을 못 자는 중증 불면증 환자가 돼버렸다.      


이젠 잠 잘 자는 사람이 돈 많은 사람보다 부럽다. (솔직히 돈 많고 잘 자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누군가 코 골며 낮잠 자는 모습을 보면 짜증까지 난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이혼 전 아내는 잠을 참 잘 잤다. 잠을 자도 너무 잘 잤다. 거짓말 좀 보태 떨어지는 낙엽이 뒤통수에 닿아도 잠들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한 겨울 오밤중에 화장실 세면대 수도꼭지가 터지는 재난급 사고가 터졌었다. 밤 12시경, 학원을 마친 딸아이가 씻기 위해 샤워기를 틀었는데 낡은 수도꼭지가 뻥하고 날아가 버렸다. 딸아이의 비명에 놀라 화장실로 뛰어가 보니 수도꼭지에서 소방호스 분무처럼 물이 천정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천정이 타일이 아닌 플라스틱 판넬이라 다세대 건물 입주자들을 다 깨울 판이었다. 놀란 딸아이는 발가벗은 채로 솟구치는 수돗물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었다. 딸아이를 먼저 제방으로 보내고 일단 저 요란한 소리먼저 잠재워야겠다 싶어서 수건으로 막다가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떼고 말았다. 한겨울이라 온수 쪽으로 꼭지를 돌린 상태에서 터진 것이다. 이쯤 되자 입주자들이 깨건 말건 차근차근 순서대로 사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안방으로 가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예상대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비명을 질렀고 현재 집안에서 굉음이 진동을 하는데 어찌 저리 무신경하게 잘 수 있을까? 급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흔든다고 일어날 사람도 아니어서 등짝을 냅다 발로 찼다. 그제야 아내는 실눈을 뜨고 말했다.     


“아, 왜....?”

“야! 수도 터졌다. 일어나 봐.”

“...아이, 터졌으면 막으면 되지.”     


아내는 저 말을 희미하게 중얼거리고는 순식간에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딸아이가 플라스틱 대야로 물줄기를 분산시키고 난 1층 마당 상수도 꼭지를 찾아 헤맸다. 깜깜한 겨울밤 겨우 찾은 상수도 꼭지는 꽝꽝 얼어 꼼짝을 안 했고 결국 상수도 사업소 긴급반에 출동 요청을 하고 그들이 출동해 사태를 해결한 시간이 새벽 세시.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말했다.     


“어? 수도꼭지가 바뀌었네?”     


불면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불면의 고통을 모른다. 

반신욕, 따뜻한 우유, 가벼운 운동, 수면 배게 등 각자만 알고 있는 비법(?)을 전수해주기도 한다. 중증 불면증 환자가 그딴 거 안 해봤겠나? 그래서 누군가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훈수를 둘 때면 “그래요? 아하~그런 방법이..”하고 맞장구 쳐주고 만다. 또 그들은 말한다. ‘잠이 안 오면 안 자면 되지.’ 그러면 속으로 그런다 ‘니가 사오일 정도 못 자봐라.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실제로 사오일 잠을 못 자면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게 되고 구름 위를 걷는 건지 물 위를 걷는 건지 걸음이 출렁이고 술 취한 사람마냥 휘청거린다. 말도 버벅 거린다. 극도로 예민해져서 매사 짜증이 난다. 하는 수 없이 수면제를 복용한 지 벌써 이십여 년이다. 이제 만성이 돼버려 수면제 없이는 못 자는 중증 불면증 환자가 돼버렸다. 그나마 생활 리듬이 정상이고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상이라면 하루 정량만 먹고도 다음날 생활에 지장 없을 만큼 잔다. 그러나 스트레스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스트레스 처리에 미숙하며 매사 긴장도가 높고 고도의 집중력만큼의 크기에 맞는 예민한 성격에 매사 완벽주의자. 이렇듯 불면에 최적화된 나는 평소보다 큰 스트레스 상황이나 큰 걱정거리가 생기면 본격적이고 치명적인 문제가 시작된다. 어떤 거냐면,  

      

정량을 먹으면 먹은 것 같지도 않고 두 알 먹으면 살짝 잠이 들지만 많이 자야 두 시간. 그럼 하루는 두 시간만 자고 다음날 더 자면 좋겠지만 하루 만에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내게 있어 그건 스트레스도 아니고 하루 만에 걱정거리를 해결할 수 있으면 그건 걱정거리도 아니다. 내가 한번 스트레스에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해서 스스로 ‘스트레스의 늪’에 빠졌다고 자조하는데 내 경우에 한번 스트레스의 늪에 빠지면 최소 사오일은 약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러다 몸이 삼사일 이상 못 버텨주면 하루 정량 이상을 먹게 되고 그러면 나중에 약이 모자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수면제는 한 달에 28일 치가 최대이다. 사정을 해도 절대 더 안 준다. 그러니 약을 탄 뒤쪽 날수에 가서 약이 없으면 술을 먹고 잘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껏 절주를 한 생활이 깨지면서 결과적으로 약과 술을 다 먹은 결과가 된다. 그러나 의사들은 약과 술을 절대 혼, 복용하지 말라고 강조만 할 뿐 나처럼 약을 먹고도 삼사일 씩 잠을 못 자거나 약이 모자라 술을 먹어야 하는 중증 환자들에 대한 처방이나 대안적 치료는 없다. (아니다. 딱 하나 있다. 생업을 포기하고 입원을 하면 병원 내에서 추가 처방을 해준다.) 


내 경우 약이 없어서 술을 먹게 될 상황이라도 웬만큼 먹지 않으면 수면에 효과가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먹고 떨어져야 할 만큼 마셔야 하니 다음날 일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름 요령을 피운답시고 하는 방법이 약이 부족하겠다 싶으면 수면제 반 알과 술을 함께 마신다. 그렇게 반 알씩 모아 모자란 약을 채우는 식이다. 수면제와 술을 함께 먹었다고 하면 다들 미친놈이라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약과 술을 같이 먹으면 진짜 미친놈 된다. 그러나 향정신성 의약품이랍시고 헤롱 대고 싶어서 무슨 마약 먹는 것처럼 먹는 것도 아니고 극도의 스트레스나 불안증에 며칠씩 잠을 못 잤으니 그렇게라도 쓰러져 눕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치명적 사건들은 이때 발생한다. 술의 폐해에 수면제의 부작용이 복합적 효과를 낸다. 예컨대 약 효과가 오르면 기억이 끊기니 방금 먹은 걸 잊고 또 먹는 경우도 있고 ‘한 병만’ 하고 시작하지만 일단 뇌에 알콜이 돌면 두 병, 세 병 늘어나는 속성과 수면제를 먼저 먹을 경우 긴장이 이완되는 속성이 시너지를 일으켜 결국 잠을 자기 위해 시작한 처절한 몸부림이 폭탄제 (난 수면제와 술을 섞어 마시는 걸 폭탄제라 명명했다.)를 잔뜩 먹은 결과가 된다. 그런데 수면제가 포함된 폭탄제를 마시면 진짜 폭탄주를 잔뜩 마신 것보다 몇 배의 효과가 있어 픽픽 자빠지는 건 일쑤고 다음날 숙취와 수면제의 몽롱함이 사람을 거의 좀비로 만든다. 고백건대 그런 식으로 119에 실려 간 적이 몇 번 있다. 


이런 기억조차 하기 싫은 경험을 몇 번하고 나니 내가 혐오스럽고 앞으로도 언제든 일어날 일이라 수면제를 끊기로 결심했다. 중증의 불면증 환자인 내가 스스로 수면제를 끊을 방법은 없어서 내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강남, 서초, 송파 3개 구의 소위 ‘잘한다’는 정신과를 다 찾아다녔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다양한 프로그램을 적용한 결과 수면제를 끊는 데 성공한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의 가장 신뢰하던 원장은 아예 평생 수면제를 복용하라고 했다. 난 기질과 체질, 성격상 수면제를 끊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기질이나 체질이란 말보다 성격이란 말이 층격이었다. 잠을 자지 못하는 성격이란 어떤 것일까? 남들과 다른 괴상한 성격을 지닌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그 원장에게 저 말을 듣게 된 건 수면제 끊기 프로그램이 끝나던 시점이었다.

      

3개월 프로그램이었는데, 초기에는 중독성이 적은 약으로 서서히 대체하고 상담치료를 병행했다. 그리고 수면제의 양을 아주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인데 그중 상담의 효과를 많이 봤다.  이혼 문제 등 복잡한 가정사를 누군가 진지하게 들어준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많이 안정됐었다. 프로그램 막바지 즈음엔 진짜 수면제 없이도 잘 수 있을 것만 같은 심리 상태가 됐다. 그리고 대망의 프로그램 마지막 날, 원장은 오늘부터 수면제를 먹지 말고 자보라고 했다. 만약 잠에 들지 못하면 그냥 자지 말라고 했다. 자야겠다는 강박이 오히려 입면을 방해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날부터 그 처방을 충실히 따랐다. 자려고 누웠다가 30분 이상 입면이 안 되면 다시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둘째 날도 잠을 안 잤다. 잠이 안 오니까. 셋째 날이 되자 드디어 몸이 붕 뜬 기분이 됐다. 말도 어눌해져 아내와 아이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넷째 날 밤이 되자 가족들이 피하기 시작했다. 신경이 있는 대로 날카로워져 말 붙이기가 무서웠다고 했다. 그렇게 누웠다 일어났다 반복한 지 5일째 되던 날 책상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다 깜빡 졸았나 보았다. 컴퓨터 본체에 눈을 박고 말았다. 무척 아팠지만 그래도 졸기라도 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아마도 오늘만큼은 지쳐 떨어져 세상모르고 잘 것 같았다. 하지만 웬걸.. 침대에만 누우면 다시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것이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몸은 파김치에 정신은 솜사탕인데 눕기만 하면 다시 각성 상태가 되니 벽에다 머리를 박아버리고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화딱지가 나서 바람이라도 쐬고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3층 계단에서부터 1층 계단까지 눈을 몸으로 꼼꼼히 쓸며 굴렀다. 5일을 못 자니 시야가 뿌옇고 거리감이 없어져 발을 헛디딘 것이다. 걸어 올라가다가는 다시 제자리로 올 것 같아서 네발 달린 짐승처럼 엉금엉금 기어서 겨우 내방을 찾아 들어왔다. 파김치와 솜사탕인 상태에 뒹굴기까지 했으니 설마 자겠지 하고 누웠다. 그러나 결국 또 못 잤다. 결국 6일째 되던 날 의사를 만나기 위해 샤워를 하면서 거울을 보니 몸은 얼룩말인데 눈두덩이는 팬더인 전설의 동물이 서 있었다. 한겨울에 선글라스를 쓰고 병원을 찾았다. 만 5일간의 에피소드(?)를 얘기했더니 원장이 저 말을 한 것이다. 본인 어머니도 평생 드시니 약에 대한 부담을 버리고 그냥 드시라고..    


처음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한 후 십수 년 후 딱 한번, 두 달간 수면제를 끊은 적이 있다. 급성 신장염으로 입원했다가 심장, 폐까지 무리가 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있었고 입원실에서 한 달을 보낸 후였다. 그때의 고통은 지금도 트라우마가 될 만큼 지독했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침대 엎드려 울기도 했다. 퇴원 후 인터넷을 하다 잤는데, 아침에 보니 전날 치 수면제 봉지가 컴퓨터 앞에 그대로 있었다. 이상해서 남은 약봉지를 세어 보니 안 먹고 잔 것이 분명했다. 글쎄. 병원에서 큰 고통을 겪고 삶에 대한 미련, 욕망, 집착 등을 다 놔버려서일까? 아무튼 십수 년 동안 먹었고 끊기 위해 그토록 노력해도 안 되던 일이 저절로 일어나니, 그 기쁨을 굳이 말로 표현한다면 환희? 하여간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가슴 벅차고 신기했다. 그 뒤 두 달여를 수면제 없이 잤다. 오랜만에 통화를 한 지인은 날 안 뒤 처음으로 뭔가 모르게 생기가 돈다고 했다. 아. 얼마나 약에 쩔어 살았으면 목소리만으로도 생기가 돈다는 걸알까? 새삼스러운 자괴감이 들었다. 십수 년 간 발목을 잡고 있던 족쇄가 풀려 해방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해방감과 정상인(?)이라는 자신감은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또 스트레스에 직면하게 되고 서서히 입면이 힘들어졌으며 수면의 질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자연 입면 불가는 2달 만에 시작됐다. 다시 병원을 찾았고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다시 약물에 의존하는 상태가 되자 절망감에 빠졌다. 정말이지 나는 깊은 산속 절에 들어가 살 팔자인가 싶었다.            

외상으로 입원하든 질병으로 입원하든 간에 난 병원 입원 결정전에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있다. “수면제 주실 건가요?” 지금 현재도 뜬금없는 외상으로 입원 중이다. 2주 전, 생각지도 않은 이유로 갑자기 중환자실에 들어올 때 의사에게 내가 제일 먼저 부탁한 것은 내 병을 빨리 낫게 잘 도와주시라는 게 아니었다. 신경정신과와 협진을 꼭, 빨리 이뤄서 제발 잠을 자게 해달라고 간곡히,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경험상 종합 병원에서 내가 바라는 것만큼 협진이 빨리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이곳도 협진이 이뤄진 것은 삼일 째였고 그것도 예상대로 내가 평소에 복용하는 수면제 양의 십 분의 일 수준의 용량이 나왔다. 중환자실 독방에서 3일째 잠을 못 자다가 다른 정신 질환이 생길 것 같아 간호사에게 간곡히 부탁해 A4 용지와 볼펜을 빌렸다. 이 글은 시계 초침은 가지만 시간은 절대 안 가는 그 적막함 속에서 중환자실에 있는 몸 상태로 잠을 못 자는 고통을 잊기 위해 사투하듯 휘갈겨 쓴 것이다. 입원실에 올라와 중환자실에서 쓴 용지를 정리하다 보니 그곳에서 불면의 고통을 잊기 위해 쓴 짧은 글이 아홉 편이나 됐다. 무작정 쓴 것들이라 건질 건 몇 개 없지만 어떤 용지에는 내가 이런 문구를 적어 놨더라.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 방법 없음, 스스로 불면을 치료할 방법 없음. 정상 수면리듬을 1년 이상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없음, 5일 이상 안 자고 버틸 방법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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