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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Sep 27. 2021

강남이 그립지 않은 이유


강남으로 이사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식 교육' 때문에 강남 입성을 꿈꾼다고 말한다. 오래전 '강남 키즈'로 자란 내 입장에서는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 이야기다. 내가 청소년기를 지낸 80년대 강남과 지금 강남은 물론 다르겠지만 아직도 그곳에 살고 있는 지인이나 친구들을 보면 큰 틀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10여 년을 강남 청소년으로 보낸 입장에서 그곳에 대한 기억은 편안하거나 따듯하지 않다. 강남이 한국 사회 주류가 터 잡고 사는 동네라지만 그 안에서도 또 더 주류가 있어서 그렇지 않을 경우 어릴 때부터 소외감을 느껴야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는 명문 사립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홀든이 교장 선생님에게 환멸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교장은 부자 부모에게는 알랑거리면서 자녀가 장학생으로 들어온 없는 집 부모는 철저히 무시한다. 내가 강남 학교에서 경험한 보이지 않는 차별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지금보다 덜 성숙한 사회다 보니 비단 강남 학교에서만 있던 일은 아니었겠지만 평범한 교사 집안 자녀인 내가 부유층 자녀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는 건 쉽지 않았다. 보통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차별과는 체급이 달랐다고나 할까.


학교 선생님들조차 국회의원이나 아나운서, 기타 유명인 자녀를 만나면 반 애들이 멀뚱멀뚱 보고 있는데도 "아버님이 00 방송국의 000 아나운서님이시라며?"라고 연신 친근하게 말을 걸며 무명인을 부모로 둔 아이들을 주눅 들게 했다. 학생회는 아무래도 있는 집 아이들 차지였는데 한 번은 학교 어디에선가 요리하는 냄새가 진동해서(당시만 해도 급식도 안 하는 시절이었는데) 뭔가 했더니 학생회 아이들만 모아놓고 요리사들이 와서, 지금으로 치면 케이터링 서비스로 학교 행사를 가장한 파티를 하는 거였다. 문틈으로 음식 냄새가 솔솔 흘러나오고 웃고 떠드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는데 우린 먼발치에서 음식이 들락거리는 걸 침 삼키며 구경만 했다.


고교 시절 우리 반 1등 하는 친구는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었는데 30년도 더 전에 이미 과목별 고액과외를 했고 과목당 과외료가 100만 원 언저리라고 은근히 자랑했다. 교사였던 아버지 월급이 80만 원 정도였다는 걸 떠올려 보면 혹시 그 애가 부풀려 말한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높은 액수다. 한 과목만 한 것도 아니고 여러 과목 과외를 받는 친구였으니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액수였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상대적 박탈감을 일상에서 수시로 느껴야 하는 청소년에겐 일찍부터 쓸데없는 그늘이 드리워진다. 다른 지역에서 살았다면 그렇게 커다랗게 자리 잡지 않았을 그늘이.


출처 unsplash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야 한다"는 아버지 고집에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강남 아파트로 이사한 거지만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좋은 친구는커녕 그냥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들만의 세상'에 끼지 못하면 주변인으로 존재감 없이 지내야 했다. 초등학교 때 어쩌다 반 임원을 하게 되어 내심 너무 기뻤는데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해서 '임원 부모는 육성회비로 5만 원씩 학기별로 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전화해서 무슨 얘기를 하길래 엄마 안색이 저리 변하나, 안절부절못하던 나를 노려보던 엄마. 전화를 끊고 기어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임원 선거 같은 건 뭐하려 나갔냐고 화를 내셨다.


강남 아파트 분양가가 3-4천만 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5만 원은 지금으로 치면 50만 원쯤 됐을까? 그보다는 적었을까? 그때 이후로 몇 년간 임원 선거는 절대 나가지 않았다. 무채색의 사람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 크게 상처 받지 않고 크게 좌절도 않고 그나마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너무 일찍 깨달았다. 물론 좀 더 아량이 넓은 엄마를 만났다면 그 일이 상처로 안 남을 수도 있었겠지만 엄마 또한 자기 상처도 처리하기 바빴던 걸로 기억한다. 동네에 이사오자마자 엄마가 제일 놀란 건 남편들이 출근했는데도 주차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급 승용차들이었다.


"여기 여자들은 자기 차 있는 사람들이 많은가 봐. 주차장에 차 봐봐."라고 놀란 듯 말하던 엄마를 떠올릴 때면 아직도 '넌 없는 집 아이다'라고 누군가 속삭이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 우리 집은 '없는 집'이라는 힌트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남들은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상대적 빈곤감도 느끼고 우리 집이 별로 잘 살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는데 난 거꾸로 대학교에 입학한 후 우리 집이 빈민층은 아니었다는 걸 알고서 놀랐다. 약간 안심하기도 했다.


'없는 집' 아이로 '있는 집' 아이들과 어울리는 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다 같이 유명 학원에 가는데 혼자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피자집에 놀러 가자고 하는데 돈이 없어서 뭐라고 핑계를 대며 빠져야 하나 전전긍긍했다. 선생님이 무용 공연을 보고 오라는 과제를 내줬는데 관람료가 5000원이나 했다.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무슨 숙제를 하는데 그렇게 비싼 공연을 보냐고 화내서 '꼭 해야 하는 숙제는 아니다'며 얼버무리고 아이들이 모여서 공연장에 가는데 혼자 슬그머니 빠졌다. 결국 숙제를 못했다고 혼나고 점수가 깎였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영위하는 일상이 나에겐 매 순간 초조하고 힘든 일이었다. 그걸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도합 12년을 했다.


더 궁핍하고 힘들게 사는 아이들이 더한 모욕을 겪는 이야기도 많은데 그런 일화를 신문 기사나 자선 단체 배너를 통해 볼 때마다 다 내 얘기 같다. 어린 시절에는 돈 없어서 소외된 빈도나 수치심을 느낀 강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크든 작든 소외감으로, 모멸감으로 각인되고 어른들 시선에서 사소한 사건이라고 해서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러운 건 아니다.


강남에 섞일 만한 충분한 재력과 지위가 있다면 다를 수도 있긴 하다. 그런데 강남에는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다며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던데 '교육 인프라'는 결국 사교육 인프라다. 다양한 사교육 시설과 능력이 출중한 사교육 선생님들이 계신 걸 큰 장점으로 꼽는데 그 말은 강남 아이들은 하교 후에 학원 뺑뺑이를 돌아야 한다는 뜻이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나온 것처럼. 그게 누군가에게는 축복일 수도 있다. 문제는 부모의 목표와 아이의 꿈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조차 막강한 사교육 인프라가 갖춘 강남 거주의 혜택을 보려고 아이 뜻과는 무관하게 사교육 현장으로 아이를 내모는 부모들도 많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강남에는 유명 학원과 더불어 소아정신과도 같이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그 이유를 두고 한편에서는 강남 부모들은 ADHD를 비롯한 각종 소아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데 아낌없이 돈을 쓰는 등, 고소득자가 많아 소아정신과 접근이 용이해 병원이 성황을 이루는 것일 뿐 강남 아이들이 특별히 더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는 아니라고 하는데 강남구 대치동이나 대구 수성구 등 교육 1번지에서 청소년 자살률이 유독 높았던 걸 보면 그런 해석이 전적으로 타당한 건 아닌 듯하다. 내가 기억하는 일부 친구들 또한 부모에게서 심한 압박을 받으며 원치 않는데도 과외나 학원 일정이 끊이지 않았다. 없는 집 아이였던 내 입장에선 부러운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공부에 뜻이 없는 친구는 혜택이라고 느끼기보다는 굴레나 족쇄로 느끼고 갑갑해했다.




엊그제 작은아이가 "나는 참 좋은 부모를 둔 것 같다"고 말해서 왜 그렇게 느끼냐고 물었더니 잠깐 생각한 아이가 장소에 비유해 대답했다.


"내 친구들 중에는 정말 한 발자국도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든 작은 닭장에 사는 친구들도 있어. 부모님이 정해준 학원과 과외를 절대 빠질 수 없고 심지어 시험이 끝난 날에도, 졸업식 날에도 1년 365일 빠질 수 없어서 너무 힘들어하는 애들이지. '스승의 날'에 다 같이 작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선생님이 떡볶이를 사준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도 같이 못 갔어. 엄마가 학원 빠지면 절대 안 된다고 했다며 울먹이면서 가더라고.


그다음에는 조금은 더 큰 앞마당 정도에 사는 애들이 있어. 닭장에 사는 친구들보다는 자유가 있지만 여전히 답답해해. 그리고 펜스가 높이 쳐져 있어서 바깥에 뭐가 있나 궁금해하고 뛰어넘고 싶어 해.


그에 비해서 난 넓은 들판에 사는 아이 같아. 저 멀리 펜스가 쳐 있긴 한데 지금도 충분히 넓어서 굳이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 펜스도 낮아서 내가 넘고 싶으면 넘을 수도 있어. 그런데 펜스 밖은 위험하거나 해로운 곳이고, 여기서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굳이 펜스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 그래도 펜스가 낮아서 좋아. 왜냐하면 누가 못 가게 하는 게 아니고 나 스스로 안 가는 거니까 기분이 좋다고 할까.


이 들판 안에서 난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실컷 하고 하기 싫은 건 좀 안 하고 게으름도 피우고 그래. 하지만 엄마 아빠가 둘러준 펜스 안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엄마 아빠가 나를 믿는 만큼 나도 엄마 아빠를 믿거든."


아이를 자유롭게 키웠다고 해서 막 엇나가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초등학교에서는 전교회장을 할 만큼 리더십이 있었고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담임 선생님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친구들에게 두루 신망을 얻고 선생님들 귀여움도 한 몸에 받게 키우냐"고 물어볼 만큼 성실하게 모범적으로 지낸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니 지금 아이 모습이 영원히 계속될지 알 수 없고, 먼 훗날 대학 입시에서는 강남 아이들보다 불리한 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중요한 말을 했다. 자기가 이제 겨우 10여 년 살았지만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고. 초등학교 때 가끔 친구들하고 싸우고 힘들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조차 애틋한 추억이어서 웃음이 난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따스하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이 있다면 '행복한 어른'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어떤가 생각했다.


한 번도 청소년 시기를 그리워한 적이 없다. 전교 1등부터 100등까지, 과목 점수까지 칸칸이 표에 넣어서 프린트로 나눠주는 삭막한 경쟁이 가득한 교실에서, 철저히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정 붙인 대상은 교실 뒤편에 그늘을 드리워주던 플라타너스 나무뿐이었다. 그나마 그 나무의 사르락 거리는 소리를 떠올리면 그리움 비슷한 감정이 올라올까, 선생님이나 친구들을 향한 애틋한 감정이 거의 없다는 게 새삼스레 서글펐다. 대학에 가서야 사람하고 마음을 나누고 흉허물을 터놓는 진솔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신세계를 경험했다.


이 글을 읽고 강남에 백만 년 전에 살아놓고 무슨 아는 척을 하냐고 비웃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대학 입시도 정시가 확대되고 아무리 학교 내신이 중요하다 해도 수능 최저를 맞추는 게 중요한 변수인 만큼 학원 인프라 좋은 강남에 가야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데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은 강남 학교나 학부모라고 이렇게 얄팍하거나 천박하게 굴지 않는데 고릿적 소리를 길게도 한다고 댓글을 쓰고 싶은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분들은 내 글은 무시하고 계속 강남에 만족하며 사시거나 강남 입성을 목표로 하시면 된다.


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분들은 따로 있다. 전 국민이 서울대를 갈 수도 없고 갈 필요도 없는 것처럼, 전 국민이 강남을 동경하고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도 강남에 가야 내 자식이 잘 크는 건 아닌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분들이다.


가정이 처한 현실도, 아이들 성향도 다른 만큼 강남 입성을 위해 모두가 에너지나 감정을 소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장소가 부여되지 않는 인간이란 없다. 인간은 허공에 붕 떠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느냐에 따라 유년의 기억은 달라진다.

돌이켜보면 가장 뜨겁게 응원과 격려를 받아야 할 학창 시절에 내가 모르는 어른들 일 때문에 대열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소외되거나 내 의지와 상관 없이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던 일이 잦았다. 정 붙일 사람이 없어 나무랑 말하며 지냈다. 부모 욕심에 나처럼 청소년 시절이 조금도 그립지 않은, 상처 입은 어린 영혼이 또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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