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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Sep 30. 2021

청약 운을 치킨 당첨에 써버렸나 봐!

집을 두고 남편과 신경전을 벌이다 이제 기댈 것은 청약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신도시에 전세로 오면서 구도시에 전세 놓고 온 우리 집 매매가가 좀 오르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팔 집'과 '살 집'간 벌어진 가격 차이를 메울 여력이 없었다. 주택담보대출이 제한된 지역이라 한없이 대출을 받을 수도 없었고 과도한 대출은 겁이 나기도 했다. 계속 이 동네에 살고는 싶은데 몇 억씩 오른 집을 쫓아다니긴 어려우니 아직 신상이면서 값도 저렴한 분양 주택을 노리기로 했다.


주변에는 "빚도 자산"이라며 모든 대출을 끌어서라도 집을 사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부동산 시장이 활황일 때는 빚도 자산일지 모르지만 시장이 차갑게 식어 갑자기 '하우스 푸어'가 되어 생활고에 시달린 사람들을 10여 년 전, 바로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집값이란 게 영원히 오르는 것도, 영원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했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이란 나에게 도박이었다.

얼마전 청약에 당첨된 동생네처럼 야무지게 무주택 기간을 늘리지도 못 했고 다자녀나 기타 유리한 조건도 갖춘 게 없지만 정말로 운 좋으면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가뭄에 콩 나듯 부동산 카페엔 그런 사람들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곤 했다. 우리도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모든 기와 운을 모아서 청약에 당첨되어야 한다.




강변을 따라 산책할 때마다 늘어선 아파트 불빛을 보면 초조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저렇게 집이 많은데 왜 우리 집은 없을까? 저 사람들은 세입자일까, 아니면 집주인일까? 거실 불빛이 형광등 불빛이 아니라 매립등처럼 은은하거나 샹들리에처럼 화려하면 인테리어 공사를 했으니 세입자는 아니겠구나 추측하며 더 부러워했다. 부러워하기 위해 기를 쓰는 사람처럼 굳이 그런 걸 따지고 있었다.


우연히 만난 이웃에게 자신은 신도시 초기에 분양권을 쉽게 얻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종일 생각했다. 그때 나는 뭘 하고 있었는지. 나에게 신도시 분양권을 추천해 준 부동산 사장님도 있었는데 '신도시는 불편해서 못 산다더라'며 흘려들었다. 그분이 투자를 많이 해 본 분은 아니었다. 즉흥적으로 건넨 조언일 수도 있는데 선견지명이 있는 분을 몰라보고 그 이야기를 가볍게 넘겼다니 사람 보는 내 안목도 믿을 수가 없다고 또 반성했다. 그때 누군가 눈에 비친 나는 새로운 부동산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후회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빙판 위 스케이트처럼 누군가 슬쩍 건드리기만 자책의 바다로 쭉쭉 미끄러져 들어갔다


하긴 지나고 보면 기회는 얼마나 많았는가. <응답하라 1988>에서 판교로 이사 가는 라미란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혹시 알아?개발될지?"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로 짐작건대 아마 라미란은 엄청난 시세 차익으로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저기 아파트가 올라가는 동안 전국 곳곳에 기회는 많았지만 정작 그 기회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는 부동산 시장을 두고 회의적인 이야기가 더 많이 쏟아지는 시점이었다. 자책을 하다 지치면 이제라도 주택을 분양받아 남들이 얻는 과실을 나도 얻고 싶은 욕심이 요동쳤다. 금전적인 이득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동네에서 살 방법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집을 사지 못해 살던 동네로 돌아간다는 건 어쩐지 패잔병 같은 기분이 드는 일이었다. 떠밀리듯 돌아가서, 이사를 말리던 동네 사람들을 길거리에서 만나는 상황은 상상만으로 민망했다.


그렇게 될 수는 없다는 신념 하에 부지런히 모델 하우스를 드나들고 상담 직원들하고 상담도 이어갔다. 분양가, 용적률, 주차대수, 인근 시설과 학교, 교통, 녹지나 공원과의 거리 등도 꼼꼼히 알아봤다. 알아볼수록 더 탐나고 갖고 싶어졌다. 이런 집이 내 집이고, 여기에서 이사 걱정 없이 아침에 눈을 뜰 수만 있으면 좋은 삶이 저절로 이어질 것 같았다.


상담원한테 청약 당첨 가능성을 물어봤지만 그다지 희망적인 답은 나오지 않았다. 무주택 기간도 거의 없고 자녀도 많지 않으며 신혼도 아닌 우린 가점제는 어렵고 추첨제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야 했다. 요즘은 또 기준이 완화되고 새로운 조건도 생겨서 기회의 폭이 넓어진 것 같은데 내가 알아볼 때만 해도 유리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으면 비인기 타입, 비인기 평형을 선택해서 당첨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그나마 방법이었다.

추첨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기회 닿는 대로 LH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분양 공고가 나는 대로 정보를 모으고 청약 조건을 확인했다. 마음 한편에서 당첨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자꾸 목소리가 들리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수도권처럼 분양가 자체가 엄청나게 비싸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냐 싶은 마음이었다.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부동산 카페나 맘카페에 드나들며 '청약' '신축' '가점제' 등 부동산 용어를 수시로 검색했다. 가끔 나와 같은 처지 사람들 글이 나왔다. '그동안 뭐에 홀렸나 전원주택 짓는 책만 열심히 봤는데 어느새 다락같이 오른 집값 때문에 살던 동네에서 떠나야 할 처지가 되니 정신이 번쩍 들어요. 이제야 청약이니 뭐니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는데 00점으로는 정말 청약 당첨 가능성이 없는 걸까요?' 등 '회개'하는 글에는 가능성이 없으니 이제라도 구축을 사는 게 낫다거나 그래도 도전할 만하다는 둥 댓글이 달렸다. 가끔은 '저도 님처럼 관심 없었는데 2년 전부터 부동산 공부해서 내 집 장만했어요'라는 '간증' 비슷한 글이 올라오면 대댓글로 노하우를 묻는 질문이 줄줄이 달렸다.



청약 당일에는 신경이 곤두섰다. 조건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행여 실수할세라 문항 하나하나를 몇 번씩 읽고 청약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몸과 마음까지 정결히 해야 할 것 같았다. 청약 신청을 마친 후에 온 가족이 청약 당첨을 기원하며 주말을 맞았다. 식사 중이던 남편이 핸드폰 알람이 울리자 잠깐 들여다보더니 표정이 묘해진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나 지난번에 응모한 무슨 치킨 쿠폰 당첨됐대. 치킨 한 마리 공짜야."

"뭐?"

"너도 알잖아. 내가 이런 거 진짜 당첨 안 되거든....'뽑기 운'으로 뭐가 된 적이 한번도 없어. 하다 못해 해적 룰렛 게임 같은 것도 이긴 적이 없고 부루마불에서도 무인도 계속 걸리는 사람이잖아, 내가. "

"그러게, 이런 거 진짜 안 되던데 이번에 된 거야? 설마 우리 청약운이 여기 쓰인 거 아냐?"


농담처럼 주고받으려 한 말이었지만 마음속에선 진짜 그렇게 된 걸까 싶어 둘 다 웃음이 나질 않는다. 치킨 당첨 때문이었는지, 원래부터 승산이 없는 도전이었는지, 그 후에도 청약은 한 번도 당첨되지 않았다. 몇 번의 청약이 다 떨어졌다. 가까운 시일 내 더 이상 분양하는 인근 아파트는 없었고, 남은 분양은 남편 직장과 너무 멀어 살기 힘든 지역뿐이었다.


처음 전학 왔을 때는 낯설어서 아침마다 배가 아프다며 등교를 힘들어하던 둘째도 이제는 '5공주' 그룹에 들어가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원래 살던 동네보다 교육열은 조금 미지근할지 몰라도 비교적 순박하고 무던한 아이들 덕에 첫째도 밝은 얼굴로 등굣길에 나선 지가 꽤 됐다. 나도 제법 동네에서 새로운 인연도 생기고 독서모임이니 뭐니 취미와 뜻이 맞는 사람들도 찾아서 가까워지는 중이었는데 이 모든 적응기가 소용없게 될지 모르는 위기 앞에서 무엇으로 숨 고르기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사 와서 보니,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뭣도 모르고 신도시 건설 초기에 분양권을 샀다가 몇 억씩 프리미엄이 붙어서 계속 상급지로 이동하며 자산을 증식한 젊은 부부도 많았다. 모두가 신도시의 미래를 유령도시라 점칠 때 다른 대안이 없거나 자기 집을 갖고 싶은 마음에 저렴한 분양가를 찾아 이동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다. 내 인생에 그런 운이 안 찾아온 건 소심한 내 성격 탓이었을까, 당장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가야 할 상황에 내몰리지 않은 탓이었을까, 계속 탓할 거리를 내 안팎에서 찾다 지치면 '올해의 운', '사주팔자' 같은 사이트를 뒤지기에 이르렀다.




집에서 맨날 인터넷만 뒤지며 한숨 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오랜만에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는 지인들 연락을 받고 교외로 나섰다.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나가는 도로는 멀리까지 시야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차창 너머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탄성도 한번 내지르고 기분 좋게 운전대를 잡았을 텐데 영 기분이 나지 않고 울적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면서도 감흥이 없었다. 라디오 DJ가 하하 호호 즐겁게 읽어주는 사연에도 웃음이 안 나고 비트 소리 흥겨운 음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DJ가 '이번에는 주택청약을 두고 한 분이 사연을 보내 주셨네요'라고 말하는 순간 눈으로 듣는 것도 아닌데 라디오 주파수 숫자에 눈길이 갔다.


"안녕하세요? 요즘 날씨가 참 좋은데 제 마음은 우울합니다. 얼마 전 친구한테 주택 청약 정보를 알려줬어요. 친구는 그런 데 별로 관심도 없고 내 집 장만에 적극적이지도 않아서 제 딴에는 정보를 나누려는 마음이었어요. 경쟁률이 너무 높길래 친구랑 이번엔 경험 삼아 해본 거라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데 세상에, 친구가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떡 당첨이 된 거예요. 저는 안 됐고요. 축하해 줘야 하는데 왜 이렇게 속상하고 서럽죠? 못나게도 축하한다는 말이 안 나와요. 당장 오르는 전셋값에 초조한 제가 비빌 언덕이라곤 청약밖에 없었건만 그간 열심히 알아보고 요건도 갖추려고 노력한 제게 운이 찾아오지 않은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재테크에 무심했던 나를 탓하는 걸로도 모자라 퀭한 눈으로 사주팔자 사이트를 뒤지며, 태어난 생시가 달랐어야 했나 바보 같은 생각까지 했던 게 떠올랐다. 사연을 보낸 사람이 곁에 있다면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이상했다. 내가 처한 상황을 곱씹으며 마음 아파하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내 이야기가 타인의 사연이 되어 낭랑한 DJ 목소리로 낭독되니 안타까우면서도 거기 너무 매몰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사연의 주인공도, 운을 꿰찬 주인공의 친구도, 그리고 나도 크게 잘못한 건 없어 보이고 보통의 인생에 행운과 불운이 교차되는 건 당연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인생에서 행운이라고 불리는 건 대부분 타인에겐 불운이 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내가 대학에 합격하려면 경쟁자가 고배를 마셔야 하고, 내가 입사하려면 최종면접에 같이 들어섰던 상대가 불합격해야 한다. 하다 못해 어릴 때 반장선거도 같이 후보에 오른 친구가 떨어져야 내가 된다.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청약도 내가 당첨되려면 간절하게 기다린 누군가는 떨어져야 한다.


양귀자 작가의 <모순>에서는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는 말이 나온다. 사연자나 내가 느낀 감정도 비슷했을 거다. 매사 완벽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비교적 성실하고 열심히 산 축에 속했던 것 같은데 가까이에 별 노력도 없이 큰 행운을 거머쥔 사람들을 보면 왜 저 운은 나를 피해서 옆 사람에게 갔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사연을 보낸 이처럼 몇 년간 준비한 사람은 박탈감이 더 클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사주팔자 사이트 같은 데서 나오긴 당연히 어려운데 첨단 과학 시대에 "운빨'은 이길 수 없다는 신념이 꽤나 퍼져나갔는지 서점에서는 '운'이나 '행운'과 관련된 책들이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나에게 행운이 안 찾아온다고 속상해했지만 거꾸로 내가 대학에 입학하거나 취업에 성공했을 때 '대체 어떻게 해서 나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온 걸까?'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 한 교실에서 입시를 치른 다른 수험생이나 같이 면접을 봤던 다른 취업 준비생이 나보다 덜 노력했을까? 이미 비슷한 관문까지 도달한 사람들은 아마 비슷하게 노력하고 수고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떨어지고 누구는 붙는다. 행운이 나를 피해 간 것을 두고 지나간 인생을 통째로 곱씹으며 후회하느라 내게 왔던 행운이나 내가 피한 불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한 걸까?


초보 운전 시절, 사거리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뛰어든 오토바이와 정면으로 부딪힐 뻔했으나 1초 차이로 사고를 모면했었고 돌잔치 때 아이가 높은 상 위에서 떨어져 머릿속이 새까매진 아찔한 순간도 있었는데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중요한 시험을 치면서 문항 수를 착각해 앞면만 풀고 시험지를 제출하려다가 무심코 뒷면을 펼쳤는데 문제가 더 있어서 허겁지겁 풀고 좋은 점수를 받은 적도 있다. 불 위에 올려놓은 유리 냄비 뚜껑이 폭파해 크게 다칠 뻔했으나 경미한 외상만 입고 넘어간 적도 있다.


따지고 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위험한 고비를 알게 모르게 많이 넘겨 왔다. 불운을 어지간히 피해 왔는데도 행운이 찾아와 주지 않으면 이 생이 유지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쏟아지는 비를 막아줄 보금자리가 없거나 당장 끼니가 마땅치 않은 극단적인 상황을 겪은 적도 없건만 영화 <아비정전>의 '다리 없는 새'처럼 날지 못하는 순간, 발 딛지 못하고 죽을 거란 심정으로 쫓기듯 살았다. 벼랑 끝 삶에 대한 경험치가 딱히 있었던 것도 아닌데 차가운 밑바닥 가난을 헤쳐 나온 사람처럼 도로 가난해질까 봐 걱정했다. 겪어보지 않은 과거를 기억하며 애써 불운한 미래를 설정해 나를 괴롭힌 이유는 뭐였을까.


청약이 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이사 가는 광경은 나에게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사건이 아니라 세상살이에서 패자가 되고 머지않아 빈곤해진다는 불길한 그림이었던 것이다. 청약에 당첨되고 싶었던 이유가 집이나 보금자리 자체였는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승자가 되었다는 만족감이었는지, 미래를 두고 커지는 불안을 잠재울 행운의 부적이었던 건지, 모두 다였는지 선뜻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행운은 찾으러 다니면 불행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이미 조바심과 두려움에 휩싸인 상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초조한 마음에 '대박'을 바라고 무리한 일을 도모하거나 사기꾼의 꼬임에 넘어가기 쉬운 상태가 되어 버린다. 교외 브런치 카페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데 당시 부동산 투자 열기를 반영하듯 이쪽저쪽 테이블에서 청약과 분양권, 신축 아파트와 세금 등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이 많았다. 분양권을 편법 혹은 불법적으로 누가 어떻게 거래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귀를 쫑긋 세우고 어깨너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생시가 달랐으면 청약에 당첨되었을까 상상하고 있던 나도 위험한 수준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청약은 계속 시도할 거예요?"

생각에 잠겨 있는데 지인이 물었다.

"글쎄, 남은 분양 아파트는 아무래도 실거주가 힘든 곳 같아서요. 애들 아빠 직장도 그렇고."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


뭐라 한 마디로 대꾸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글쎄요, 일단 마음속에 자꾸 커지는 불안하고 무서운 그림들을 좀 지운 다음 찬찬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잘 몰랐는데 지금 제가 이성적으로 뭔가를 판단하기 힘든 상태였어요. 오랜만에 교외에 나오니 그간 컴퓨터 화면만 붙잡고 끙끙댄 내가 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계절이 술렁거리며 옷을 갈아입은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맑은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도 못하고 지냈어요


이렇게 맑은 날씨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는 법인데 내 인생은 1년 365일 화창하길 바랐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돼요. 이미 쥐고 있거나 혹은 내게 찾아왔던 행운은 자각하지 못하고 불운만 고집스럽게 기억하고 있었나 봐요. 집? 청약? 조급해하지 말아야겠어요. 집값이 오르내릴 때마다 인생을 돌이켜 반성할 것까진 없잖아요?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인간형이었다고 갑자기 머릿속에 집과 돈만 둥둥 떠다니면서 판단히 흐려진 건 아닌지 싶어요. 집도 인연이라 생각하고 조금 숨 고르며 기다리는 여유가 제게 필요할 것 같아요.

입에서 맴도는 말들을 가만히 삼키고 카페 통유리에 가득 비치는 햇살을 바라봤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볕이 손등에 따사롭게 내려앉을 것 같았다.



지난해에 쓴 브런치북 <이사하다 이혼할 뻔>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이어지는 에피소드들 몇 개를 써놓고 묵히고 있었는데 다듬어서 다시 올려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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