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맹샘 Oct 30. 2022

기린 모자를 쓴 부끄러움이 없는 선생님

아이가 가장 중요해

  폭풍 같은 1년 차 교사생활이 지나고 2년 차에 선생님이 근무하는 학교에서 선생님의 선생님을 만났어.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었지. 선생님은 당연히 훌쩍 커버린 날 알아보지 못했고, 나중에 말씀을 드리니 그제야 알고 너무도 반가워해주셨단다. 남자분이시고 무뚝뚝하셔서 내색은 안 하시지만 반가워하시던 웃음이 아직도 생각나.


   2년 차에 6학년을 맡았고, 1년 차에 폭풍 같은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해서 정말 힘들 때였어. 1년 차에 정말 힘든 아이를 만났었거든. 그런데 6학년 담임이라니. 학교에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했단다. 겨울방학에 엄청나게 연수도 듣고, 책도 읽으면서 6학년을 잘 이끌어가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했어. 그래서 학급경영도, 수업 운영도 어느 정도 걱정은 많이 줄일 수 있었지. 그런데 체험학습이 복병이었어. 체험학습에서 내가 아이들을 안전하게 이끌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지. 어떤 책과 연수에서도 1년에 1-2번 있는 체험학습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거든. 당연한 일이지. 학급경영과 수업 운영만 해도 해야 할 이야기, 배워야 할 이야기가 차고 넘쳤으니까.


  바로 그때, 선생님의 선생님이 생각나서 바로 찾아가 조언을 구했지. 사실 옆반 선생님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쉽지 않은 일 이긴 해.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거니까. 사실 매일 우등생으로 칭찬만 받고, 아이들 사이에서도 질문을 받는 입장이었지 질문을 하는 입장은 잘 되어보지 않는 사람들이 교대를 가니까 말이야. 나 역시도 그랬지. 물어보면서도 괜히 짜증을 내시면 어떻게 하나, 그것도 모르면 어떻게 하냐고 면박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 조마조마했단다. 그런데 선생님은 방긋 웃으시며 너무 반가워하시는 거야. 무언가 이야기해주고 싶어도 혹시나 부담될까 싶어 말씀을 못하고 계셨다면서.


  체험학습을 말씀드리니 선생님이 기린 모자를 쓴 할머니 선생님 이야기를 해주셨어. 할머니 선생님도 그 선생님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씀이셨지. 저학년 아이들을 체험학습 장소에서 인솔하기 위해 기꺼이 우스꽝스러운 기린 모자를 쓴 선생님을.


  기린 모자를 쓴 할머니 선생님은 퇴직이 얼마 남지 않으신 선생님이셨데. 그런데도 체험학습을 갈 때면 어김없이 기린 모자를 쓰신다는 거야. 기린 모자가 불편하고 우습지만 그 모자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이 체험학습에서 선생님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지. 체험학습을 나가게 되면 아이들은 한껏 들뜬단다. 잠을 자지 못하고 등교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가 어렸을 때의 그 콩닥거리는 마음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 교직경력이 어느 정도 있는 교사라면 체험학습 때 한 아이가 없어진 경험은 누구나 있어. 특히 실외에 나가게 되면 그런 경우가 많지.


  나도 1년 차에 민속촌에 가서 모일 시간이 다되었는데 오지 않는 아이를 찾아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며 민속촌 놀이기구들을 헤맨 적이 있었어. 말이 1년 차이지 그때가 5월이었으니까 선생님이 된 지 2달째였지. 아이는 아주 해맑게 놀이기구를 타고 나오더라. 아이를 보고 화도 났지만 너무도 행복한 그 표정에 어이없는 웃음까지 나왔어. 어떤 선생님은 산에서 내려왔는데 아이가 없어져 2시간을 산을 헤맸다고 해.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는 혼자 미리 내려와 있었고, 기다리다 혼자 낙오되었나 생각하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혼자 간 것이었데.


  아마 그런 경험이 할머니 선생님이 기린 모자를 쓰게 만들었을 거야. 그 높은 기린을 보며 아이들은 선생님이 어디 있는지 한 번에 찾을 수 있겠지. 체험학습을 나가면 아이들은 아기새가 되지.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자신의 호기심을 찾으러 신나서 가. 그러다 배고프면 선생님에게 돌아오지. 배가 고프지 않은 아기새는 여전히 세상을 탐험하며 날아다니고 말이야. 그런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은 기꺼이 기린 모자를 쓰셨데.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선생님은 자신도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간다고 했어. 약간 장군이 전장에 나가는 느낌으로 말이야. 얼마나 세심한 마음이니? 내가 예쁜 옷이 아니라 아이들이 날 볼 수 있는 옷이라니. 그동안 날씬해 보이려고 검은색만 사는 내 옷장을 떠올리니 살짝 부끄럽기까지 했단다. 선생님은 그런 거래. 나를 내려놓고 아이들이 날 쳐다보고 따르게 하는 것. 


  그래서 그날 퇴근길에 바로 화려한 잠바를 샀지. 그리고 그 다음번에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는 아주 화려한 가방도 샀단다. 기린 모자까지는 쓰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나를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말이야. 


 선생님이 된다는 건 누군가 앞에 서서 멋진 모습으로 존재하는 일은 아니야. 가장 낮은 자세로 때로는 아주 웃기게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더라. 엉뚱한 성대모사를 하며 역사의 인물이 되기도 하고, 율동도 큰 동작으로 자신 있게 해야 하고, 체육시간 아이들이 따라 하기 부끄러운 동작도 자신감 있게 해내야 해. 그래야 아이들이 나를 보고 함께 당당해질 수 있거든. 선생님의 말이 아니라 선생님의 행동으로 아이들은 배우고 자라난단다. 

이전 01화 선생님이 된 나의 제자에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