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지다 사라지는 삶
드르륵, 철제 슬라이딩 도어를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정선이든곡성이든, 평창이든 창녕이든 시골을 여행할 때면 읍내에서 가장 허름한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식당부터 찾아 들어간다, 일종의 의식이랄까.
참새가방앗간을 어찌 그냥 지나치랴. 백반과 함께 막걸리를 시킨다. 시키긴했으나 마시는 것이 내 몫이 듯 내오는 것 또한 내 몫이다. 누런 사발에 한가득 채워 시원하게 들이킨다. 낮술 없는 여행은 사랑 없는 삶이여라.
알딸딸해질즈음 주인아지매가 양은 쟁반을 들고 온다. 분홍색 꽃들이 새겨진 쟁반 위에 형형색색의 반찬들과 꽉꽉눌러 담은 조금은 질은 밥, 그리고 족히 수백명은 잡쉈을 낡은 뚝배기에 담겨 ‘이기 건강이다’ 라고외치는 듯한 시래깃국이 한상 가득 차려져 있다. 참으로 완벽한 한상이고, 한결 같은 한상이다.
어쩜이리 한결 같을까
라는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시골 읍내 식당들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을 법한 노포들은서로를 빼닮았다. 이 정도면 ‘전국 전통시장 노포 연합회(전노연)’라는 이름 아래 ‘천 번은 흔들려야 노포가 된다’라든가 ‘빈곤했던 노포가 지나고’ 혹은 ‘40년생이 온다’와 같은 컨텐츠를 주인아지매들끼리 서로 공유해가며 집단지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과 함께 트림이 나온다, 꺼어억.
그러고보니 그네들은 모두 할망이다. 식당에서 동네 아저씨들의 실없는 농담을 들어주는 이들도, 오일장에서 헤아릴 수 없는 나물들을 사고 파는 이들도, 정류장에서시장 바구니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도 모두 할망이다.
그네들이떠나면 시골은 또 오일장은 어디로 갈까. 누군가는 그곳에 남아 떠나가는 이들을, 작아져가는 시장을 조금은 슬픈 눈으로 바라보겠지. 그래서 시골에가면 가장 낡은 식당을 찾는다, 조금씩 떠나보내고 있는 그네들을 만나러.
그리고그곳 어딘가에 새로운 공간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서방 어느 나라에서 공수해온 물건들이 가득한 잡화점이라든지, 까페라든지. 하지만 그 수만큼 오래된 것들이 하나 둘 사라져간다, 정각을 알리는 뻐꾸기 시계가 있는 금은방이라든지, 참기름집이라든지. 누구도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없고, 무엇도 시대가 변하는것을 막을 순 없다.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반쯤남은 술잔을 마저 비우고 천천히 일어난다. 미리 뽑아 놓은 만원짜리를 건네자 주인아지매는 주머니 속에꼬깃꼬깃 넣어둔 천원짜리를 거슬러준다. 지폐 한 켠에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이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드르륵, 철제 슬라이딩 도어를 열고 나가자 정겨운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부른배만큼 마음도 불러온다. 따사로운 햇살 때문인지 아니면 취기 때문인지 나른함이 몰려와 잠시 그 자리에멈춰선다.
한끼 잘 먹었습니다, 또 올게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