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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필런 Feb 21. 2019

'옷 무덤'과 '이유식 그릇'

육아 시절을 회상하다.

몇 살 때인지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아들은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참 좋아했었다. 특히 ‘울려 퍼진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이후에 나오는 ‘오예’라는 대목을 가장 좋아했다. 노래 앞부분을 내가 부르고 자기가 그 작은 입으로 ‘오예’라고 하는 것을 좋아했다. ‘오예’라는 발음이 되지 않아 ‘어에’ 정도로만 발음했던 아이였다. 얼마 전 아들과 누워서 "너 언제더라... 그때 기억나? 그 노래 좋아했던 거?"라고 말하면서 그때와 같이 내가 앞부분을 불렀다. 아들은 곧장 후렴 부분을 불렀다. ‘오우~예~~~!’ 이제 초딩 2학년이 되는 아들의 오예는.. 느끼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와이프가 정확하게 기억해낸다. "그때? 28개월 때잖아. 그때 어떤 집에서 뭐 입고 있었는데, 뭘 먹다가 쏟아서 당신이 화내고.....어쩌구 저쩌구..." 와이프는 잘도 기억해 낸다.



육아의 추억


와이프는 4년 정도, 꽤 오랜 기간 육아휴직을 했다. 다행히도 장기간의 휴직이 가능한 직장이었다. 인생에 한 번밖에 없을 육아기간을 아이와 가능한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다는 의견에 나 역시 동의했다. 10여 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며 커리어우먼으로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던 그녀. 커리어의 단절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텐데 쉽지 않은 결정을 한 것이다. 고마웠다. 그새 또 잊고 지냈다. 참 고맙고 대견하다. 


육아는 전쟁통이었다. 라고 나는 회상한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우리의 멘탈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책과 인터넷에선 늘 좋은 모습과 예쁜 장면이었기에 우리도 그 삶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가는 듯했다. 공주처럼 왕자처럼 육아는 불가능했다. 아이는 인형처럼 예뻤지만 그렇다고 인형처럼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밤에 잠이 들지 않는 아이 덕분에 둘은 늘 푸석해 있었다. 불규칙한 생활에 머리도 빠진다며 어느 날 밤 와이프는 울상을 지으며 머리를 가리키기도 했다. 잔디인형처럼 삐쭉삐쭉한 그녀의 머리카락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불규칙한 식사와 스트레스는 우리의 살도 찌웠다. 음소거를 해두었기에 그저 화면만 보는 TV와 함께 먹는 야식은 그나마 우리의 유일한 해방구였다. 


나도 나름 도우려고 이것저것 집안일을 했다. 하지만 와이프는 짧은 시간이나마 자신의 조잘거림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자신이 아가씨일 때는 굳이 마트에 어린애들 데리고 나와 고생하는 엄마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하는 그나마의 외출이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주말에는 가능한 한 끼 정도는 아이가 칭얼거리더라도 외식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라도 바깥바람을 쐬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내가 그 정도는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밖에서 먹는 식사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지만. 


그럼에도 와이프는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예전처럼 밤에 조잘조잘 이야기를 잘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책과 인터넷을 뒤져 밤새 이유식을 정성스럽게 만들던 이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냥 쌀밥에 어제 내가 먹던 된장국을 찍어서 아이의 밥을 먹이는 듯했다. 지쳐가고 있었다. 뭔가 해주고 싶었다. 장모님께 SOS를 요청했다. 와이프와 오랜만에 단둘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 봤자 나 퇴근하고 두어 시간 저녁 먹는 게 전부 겠지만. 


와이프에게 전화를 했다. 장모님께 내가 이미 부탁해놨으니 이따 저녁에 우리 회사 앞으로 오라고 말했다. 와이프는 잠시 고민하더니 손사래를 치는 듯 싫다고 했다. 귀찮기도 하고, 분명 애도 칭얼거릴 거고, 장모님도 힘들 거라고. 괜한 짓 하지 말고 집에 올 때 마트나 들렀다 오란다. 그래도 나는 계속 나오라고 했다. 분명히 그렇게 해주면 와이프의 기분이 조금이나마 풀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와이프는 이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완강하게 거절했지만 나 역시 완강했다. 결국 퇴근시간에 맞춰 와이프가 회사 앞으로 나오기로 했다. 

딱 2시간만 밥 먹고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엘리베이터


퇴근시간. 와이프는 회사 앞에 서 있었다. 

정말 오래간 만이었다. 신혼 때만 하더라도 서로의 직장 앞에 찾아가는 것은 자주 있던 일이다. 어두운 저녁길을 걸어 미리 예약해 둔 장소로 이동했다. 오래간만에 데이트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와이프의 기분? 곰곰이 되 돌이켜 보면 회사 앞에서부터 와이프는 뭔가 불편해 보였던 것 같다. 오늘 예약한 곳은 종각에 있는 유명한 스카이라운지이다. 이곳은 내가 프러포즈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때의 기분을 내 보고자 서프라이즈로 준비했다. 하지만 건물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와이프에게 등짝을 한 대 맞았다. 가기 싫단다. 분명 좋아했던 곳인데 말이다. 와이프는 짜증을 버럭 냈다. 누구한테 내는 짜증인지 헷갈렸다. 그래도 막상 멋진 라운지에서 바깥 야경을 보며 식사하면 기분이 좋아지겠지 라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꽤 오래 올라갔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는 나란히 서지 못하고 앞뒤로 서게 되었다. 와이프의 뒷모습을 본다. 그제야 보인다. 대충 뒤로 빗어 100원짜리 머리끈으로 질끈 묶은 머리.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 자기가 가장 아끼는 블링블링 귀걸이는 했다만 어째 귀걸이가 초라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펑퍼짐한 면바지와 재킷 안의 티셔츠는 어제도 보았던 목 늘어난 옷이다. 거칠한 니트에 아이 얼굴이 쓸리면 아플 거라며 늘 순면 티셔츠만 입어 후줄근해질 대로 후줄근해진 그 옷. 그런 와이프는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급하게 보내고 있다. 

‘엄마. 혹시 애기 울면 잘 달래줘, 빨리 들어갈게’ 

오래간만에 오붓하게 밥 먹으면서 도란도란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또 육아 이야기이다. 나는 그저 ‘어휴, 진짜?, 와~, 힘들겠다’라고 장단을 적절하게 잘 맞춰주었다. 그러다 와이프가 뜬금없이 한마디 한다. 


“아까 당신 퇴근할 때 보니까 당신 회사 여직원들 되게 예쁘더라...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몰라...”



옷 무덤과 이유식 그릇 


집에 도착한 엄마를 보자마자 아기가 활짝 웃는다.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어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의 표정에 주변까지 밝아지는 듯하다. 밥을 먹을 때도,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불편해 보였던 와이프의 표정도 밝아진다. 

와이프와 아이는 거실에서 한참이나 까꿍놀이를 하고 있다. 나는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거울 앞에는 도둑이 든 것 마냥 수북하게 와이프의 옷들이 쌓여있다. 미혼일 때, 출근할 때 입었던 하나같이 세련되고 좋아 보이는 옷들이다. 그 옆에는 숟가락이 얹혀 있는 이유식 그릇도 보인다. 바쁜 와중에 얼마나 많은 옷들을 거울에 비춰보았을지. 정작 집을 나설 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평소랑 다르지 않은 것을 마주했을 때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쳤을지... 미안한 마음에 나는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다. 



오늘 뭐했어?” “밥은 챙겨 먹었고?” 


육아와의 전쟁을 치르던 그 당시 와이프는 내가 건네는 저 말들이 참 좋다고 언젠가 말한적이 있다. 하루 종일 몸도 마음도 시달렸지만 현관을 들어서며 등을 토닥이며 건네는 별거 아닌 몇 마디 말이 참 좋다고 했다. 

나는 그때의 말을 잘도 기억해 냈다. 


오늘 아침에도 와이프는 눈썹을 그려가며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탄다. 여전히 그녀의 아침도 어지간히 정신없다. 어젯밤에도 출근하기 싫다고 징징 거리던 와이프에게 오늘 퇴근길에는 간만에 몇 마디 해 주려 한다.  


“오늘 바빴어?” 

“점심은 잘 챙겨 먹었고?” 

“당신네 부장 놈은 오늘 또 지랄 안 했어?” 

“오늘 저녁은 간만에 나가서 외식할까?”


사진출처 : tvN 드라마 '아는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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