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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필런 Feb 07. 2019

제발 그 입 다무시오

돈 주거나 해결해 줄 거 아니면


오래간만에 A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그가 자랑하기 위해 만나자고 하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가 얼마 전 외제차를 샀다는 것은 SNS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갑작스러운 약속을 잡은 나는 잠시 그와의 대학시절을 회상했다. 신입생 시절, 나는 선배들과 어울리는 게 싫었다. 물론 술값이 궁할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오지랖을 듣기는 정말 싫었다. 

‘전공수업은 반드시 OO 교수 수업을 들어라’ 

‘리포트는 이렇게 써야 한다’ 등등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선배들이 못마땅했다. 


시간이 지나 나도 누군가의 선배가 되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살가운 선배가 아니었다. 나의 신입생 시절 생각과 같은 이유로 후배들 역시 선배들과 어울리기 싫어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유독 A 후배는 그런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 시절 그는 자주 나에게 고민을 상담했고, 내가 답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그와의 인연은 10여 년째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항상 바쁜 우리는 점심시간을 활용해 급히 만났다. 자랑할 것이 뻔한 오늘의 불편할 만남은 서로의 행동과 표정으로 시작했다. 그는 만나자마자 매끈한 곡선 모양에 로고까지 크게 박힌 차키를 내 보였다. 나는 곧바로 그의 허세에 ‘어쩌라고?’의 표정으로 응수했고, 그는 곧이어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뜨는 퍼포먼스로 내 표정에 답하였다. 나의 오해였다. 그가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는 자랑이 아닌, 고민 상담이었다. 



형, 나 어떡하지?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 

그리고는 봇물 터지듯 그의 입에서 그가 외제차를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된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현재 상황은 외제차와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심지어 그는 생애 첫 차로 경차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 내 누군가의 한마디가 화근이었다. 


“야, 나라면 이왕 모닝 살 거면 그냥 아반떼 산다.”


그가 차를 사려한다는 소식은 공기처럼 같은 층에 퍼졌다. 그의 소식은 건조한 사무실에 소소한 단비가 되었다. 비슷한 또래의 남자 직원들은 그에게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아반떼에서 조금만 더 보태면 소나타 살걸?”

“어차피 결혼하고 아기 낳고 그러면 큰 차가 어쩔 수 없이 필요해”


그리고도 그는 높은 단계의 ‘고수 오지라퍼’들을 만나야 했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손에는 낯설지만 매끈한 지금의 차키가 올려져 있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떠올리다 


직장에 갓 들어간 A후배는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형 우리 회사는 일을 하는 것보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중요한 곳 같아"


사실 이때부터 불안했다. 그의 직장생활과 그 안에서의 일이 분명 녹록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한 곳이라면 그 사무실의 분위기는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먼저 그들은 일을 빨리 해내지 않을 것이다. 오래 앉아있을 구실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리고 그런 분위기의 사무실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공백의 시간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시간을 때워야 하기에 무엇이로든 채워야 하는 이 공백의 시간. 아주 적절하고도 손쉬운 무언가, 그리고 아주 적절한 것, ‘오지랖’이다. 


고등학교 시절 정치․경제 과목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배웠었다. 나는 이 법칙이 매우 맘에 들었다. 모든 세상의 이치를 말하는 듯했다. 공급은 적지만 수요가 많으면 그 값어치는 당연스레 올라가고, 반대의 상황으로 수요는 없는데 공급만 많아버리면 이는 아무 쓸모 짝에도 없는 쓰레기가 되어 버리는 사회. 하지만 굳건하게 믿어온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곳이 있었고, 그곳은 직장이었다. 


특히나 오지랖이 그러했다. 직장에서의 오지랖은 주로 상급자가 공급한다. 하지만 이를 원하는 실수요자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공급자들은 너무나도 공고한 ‘갑’의 위치에 있다. 때문에 필요치도 않은 공급을 ‘을’들이 비자발적 실수요자가 되어 받아들인다. 원래는 아무 쓸모 짝에도 없는 쓰레기 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 이후로도 공급자는 계속해서 오지랖을 찍어낸다. 



담백하게.. 좀 더 담백하게


점심시간에 다 끝내지 못한 그의 고민상담은 퇴근 후 해물탕 집에서 계속 이어졌다. 해물탕에 있는 새우를 골라 발리는 후배에게 나는 못마땅하다는 듯 한마디 했다. 


"새우는 머리랑 같이 먹어야 맛있는 거야, 새우 먹을 줄 모르네"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진동했다. 그는 갑작스레 대학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 내가 왜 그때 형 말을 잘 따랐는지 알아? 형은 적어도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안 해서야, 다른 선배들의 말에는 각자 정답이 있었는데, 형은 늘 나에게 답은 주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형한테 늘 물어봤던 거야. 형과의 대화는 뭐랄까……. 늘 담백했거든.."


다소 싱겁지만 그나마 산뜻했던 나도 사횟물을 많이 먹었나 보다. 

이런저런 것들이 섞이면서 느끼해지고 맛이 탁해진 듯하다. 

해물이 너무나도 많이 섞여 정작 뭐가 들어갔는지 잘 모르겠는.. 


내 앞에 놓여진 해물탕 국물 맛이 마치 나를 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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