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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필런 Feb 28. 2019

아들과 나는 각자의 문제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뼈의 개수가 어른보다 많다고 한다

아들의 문제집 풀이를 봐주고 있었다.

와이프의 성화에 못 이겨 슬렁슬렁 채점이나 해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첫 문제부터 ‘1학년 문제집이 이렇게 어려워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문제집을 휙 빼앗아 표지를 보았다. ‘독해 영역’이라고 쓰여있다. 마치 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과 비슷한 것인 듯했다. 장문의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것이다. 지문은 문제집의 한 페이지나 차지하고 있다. 뒤이어 다음장에서야 지문을 이해했는지를 평가하는 문제들이 나온다.


그 글을 읽던 아들이 나에게 말한다.


“아빠, 이거 읽기 불편해. 앞장을 찢어서 읽으면서 문제 풀면 안 될까?”


아이에겐 당연한 일이다.

안 그래도 문제 풀기도 싫은데 페이지를 넘겨가며 글을 읽고 문제를 풀어야 하니 불편할 수밖에. 하지만 나는 그런 아들을 공감해 주지는 못할 망정 1학년짜리 꼬마한테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을 한다.


“안돼. 나중에 수능 풀 때는 이것보다 더 심해 글도 얼마나 긴지 알아? 한 번에 빨리 이해하면서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해”

“수능이 뭔데?” 아들이 바로 되묻는다.

“음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수능 공부를 무려 3년 넘게 해왔는데, 이런... 첫 질문에서 바로 막혀버렸다.



나의 공부는 꼼수였다


되돌이켜 보면 그동안 나의 공부와 노력은 모든 것이 꼼수였다.

수능을 준비하던 시절, 언어영역에는 수많은 고전과 시, 그리고 산문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문제에서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해 기계적으로 글을 잘라서 읽는 법만 익혔다. 수리영역도 마찬가지. 공식의 원리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문제에 공식을 대입했을 뿐. 왜?라는 질문을 해 본 적은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 역사시간인지 수학 시간인지 헷갈릴 정도로 연도만 외웠을 뿐. 과학은 또 어떠한가. 원소주기율표는 아직도 외울 수 있지만 ‘카카나마… K Ca Na Mg…’로 읽히는 그것들에 대해 나는 아직도 그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 않다.


비단 학생 때만이 아니다. 직장인이 되기 위해 치르는 토익시험도 공식으로 풀었다. 내가 다니던 토익학원에서는 출제 경향을 분석해 어떠한 공식에 따라 답을 찾는지를 중점적으로 가르쳐주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효과가 있었다. 면접 역시도 그러했다. 진정한 내가 아닌 가상의 인물을 면접장에 앉혀둔 나는 가상의 누군가로 빙의해 면접에 임했다. 역시 효과가 있었다. 꼼수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안타깝지만 지금도 마찬가지


나이가 들수록 진심이 없어진다. 그저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를 이리저리 비위 맞춰가며 살아가는 삶이다. 어제 회식자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부서 회식이었지만 중간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합석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L차장.

나는 몇 년 전 그와 함께 잠시 TF팀에 속해 일한 적이 있다. TF팀장이던 그는 모든 일들에 항상 부정적 의견만 달던 그는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일에도 불만이 많았다. 주제도 내용도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보고서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그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TF는 끝이 났다. 그리고 임원들에게 보고 된 우리의 결과물은 예상외로 엄청난 칭찬을 받게 되었다. TF 팀장이던 그는 그날부터 모든 성과와 아이디어가 자신의 작품이라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 심지어 말 안 듣는 팀원들 데리고 일하느라 힘들었다며 자신의 리더십까지 셀프 어필을 했더랬다. 그런 그는 내년에 부장 승진이 된다고 들었다.
몇 년간 그렇게 싫어했던 L차장이 우리 회식에 오다니. 나는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의 자리로 갔다. 그리고는 그에게 무릎 꿇고 술을 한잔 따랐다.



“아이고~~~ 차장님 잘 지내시지요? 그간 바빠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하하”


그리고 넙죽 술을 받아 마신 그는 부서원들에게 몇 마디 내 칭찬을 해 주었다. 그의 나에 대한 칭찬이 싫지만은 않았다. 꼼수가 너무 가득 차 이제는 배알이 자리할 곳도 없는 듯하다.



아이들의 뼈의 개수가 어른보다 많다고 한다


저녁식사를 하며 아들이 조잘조잘 이야기를 한다.


“아빠 아까 문제 풀 때 말이야 그 글 되게 신기하지 않았어?”

“어?? 뭐가??”

“어른보다 아이들이 뼈가 더 많다고 했잖아”

“아… 그랬어?”


아들 말로는 아까 읽었던 문제의 지문에 나와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뼈의 개수가 훨씬 많다고 쓰여 있었단다.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여러 개의 뼈들이 자연스럽게 붙으면서 하나로 합쳐지기에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어른보다 뼈의 개수가 더 많다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읽어본 것 같다. 기억이 난다. 다만 그저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적에만 집중하다 보니 문제집을 덮자마자 다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글을 읽고 싶었던, 그런 아이에게 나는 벌써부터 꼼수만 가르치려 했다니.


아이들의 뼈가 다른 뼈들과 붙으면서 점점 개수가 줄어 간다는 것.

세상과 타협하며 자존심을 하나씩 버려가는... 어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오늘도 내가 풀어야 할 문제는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시간은 너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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