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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존재 Nov 06. 2020

멍한 기분을 뜯어먹을 때


멍한 기분, 무기력한 하루는 늘 이것과 함께한다. 먹구름을 마신 듯 뿌연 감각만이 가득한 날, 어쩔 수 없이 일기 비스름한 것을 적어야만 하는 날이다. 



귀도 눈도 정신도 어딘가에 붙들려있다. 감정은 부러져 조각이 되었다. 주워 담아야 하니 일어선다. 그러나 오금에 힘이 없어 곧 드러눕는다. 



타고남은 나무 덩이처럼 고이 쓰러져있다. 숨을 쉰다. 재가 후욱 솟아오르다 하늘하늘 떨어진다. 몸뚱이의 남은 가루들마저 바람에 흩날릴까 두려워 집 밖에 나가지도 않는다. 



도화선이 연소되는 음성이 마음에 주입된다. 끊어질 듯 위태로이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치이익 하는 소음. 이런 날이면 선명히 듣게 된다. 다만 그것이 폭발의 전조인지 폭죽의 전희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둘은 터지기 전까지 똑같은 목소리를 낼 뿐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불 속에 움츠린다. 혹시나 파편들에 찔릴까 봐.



조웅은 말한다. "뭐 어떤 관계들이 끝나고 하는 것을 노래로 불러봤는데, 그게 되게 힘든 일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경험하고 있겠지만, 그걸 응원하는 노래를 만든 거예요. 그니까, 헤어져도 된다. 헤어져도 괜찮다. 너무 힘들어할 필요 없어. 무지개가 저기 있어"



늘 서글픈 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치덕해진 잿빛을 딛고 나아가려 하지만 이내 먹혀버린다. 현대의 사랑은 감정과 마찬가지로 해체되어간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빛깔의 사랑이 사람들 사이를 헤엄치고, 처연한 눈 맞춤들은 늘어만 가고. 그런 것도 사랑이라 해야 할까, 아니라면 무얼 사랑이라 일컬을 수 있는 걸까. 오히려 그것만이 사랑인 건 아닐까, 누구라도 알 수 없겠지. 



도화선이 타는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우리에게서도 한때는 오르골 소리가 흘러나왔었는데, 하나 둘 녹슬었다. 서글픈 마음에 그것을 듣게 되는 게 아니라, 그걸 들으면 서글픈 마음이 드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늘 삶에게 종속된다. 삶을 이기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랑은 삶을 위하며 삶 안에 존재한다. 삶은 서글프다. 그러니 사랑도 서글픈 게 당연하다. 사랑은 삶을 온몸으로 받아내므로 삶의 색을 피할 수 없이 입는다. 우리를 덧칠하는 질척한 잿빛, 그건 사랑에도 옮겨지던 중이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무지개를 들었다. 어떤 음악은 귀에 스며든다. 먹먹해져 얼마간 아가미로 숨을 쉬는 듯 습기만이 가득한 정신을 향유한다. 몇 시간이던 며칠이던, 음악은 고유한 정신을 인간에게 잉태하며 그곳에 기거한다. 무지개는 지금 내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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