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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r 19. 2024

"엄마, 우리 다시 한국 가면 안 돼?"

아이와 단둘이 미국 정착기

교육청 테스트를 마친 목요일 아침, 시간이 많이 남아서 어디 관광지라도 들를까, 아니면 맛집에서 밥을 먹고 갈까 했더니 아이가 모두 싫단다. 그래, 너도 피곤하겠지. 오늘은 푹 쉬자.


"엄마!!!"

뒹굴거리며 놀던 아이가 아이가 큰 소리로 불렀다. 방향을 가늠하니 안방 화장실 쪽이다. 목소리가 다급한 게 뭔가 심상치 않은데...


얼른 가 보니 역시나 변기가 막혔단다. 변기 위 흰 뚜껑을 들어 올리고 싶지는 않지만 ㅠㅠ 상태 확인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슬쩍 쳐들었다가 우웩~~~ 비위가 약한 나는 엄마일(?)의 가장 3D적 요소로 가끔씩 아이의 DUNG을 볼 일이 있다는 것을 꼽는다. 기저귀 차던 시절에는 수시로 겪던 일이었다만 아들아, 낼모레 사춘기에 접어드는 나이에도 너의 배변활동에 관여하게 될 줄은 몰랐구나.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미국 화장실은 대체로 수압이 약한 것 같다. 도착해서 처음으로 묵었던 친구 집에서도 변기의 수압이 약한 것을 발견하고는 아들에게 휴지를 막 풀어넣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터였다. 온갖 물자가 풍부하고 온갖 기술이 발달한 미국인데 왜 변기 수압은 이 모양일까? 하긴... 매년 허리케인이 오는 데도 그렇게 판자로 집을 지어대는 것을 보면 이것도 뭔가 이유가 있기는 있겠지. 아니면 물이 콸콸 쏟아지고 비데로 엉덩이까지 데워주는 한국 화장실이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막힌 변기를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긴다.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서 사람 손을 타기만 하면 거액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지. 결국 내 손으로 변기를 뚫어야 하나... 어우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일단은 이 상황에서 감사할 것을 찾기로 했다. '아이가 변비에 걸리지 않고 배변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온갖 약을 다 챙겨 오면서도 변비와 설사약은 깜빡했다.


그다음 안방 화장실을 폐쇄하고 계속 방법을 궁리해 보다가 잘 시간이 되었는데, 아이는 막힌 변기를 생각하면 너무 더럽다고, 안방에서 못 자겠다고, 이 집에서 나가자고 난리다. 변기 막은 게 누군데 그래 이것아... 아이의 반응이 좀 과하다 싶으면서도 일단 당면과제를 처리하는데 골몰한다.


그러다 갑자기 미국의 아파트는 리싱 오피스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해 준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밑져야 본전이지 하고 메일을 보내봤더니 당장 처리해 준다고 한다! 실제로 그 다음날 바로 깨끗이 뚫어주고 갔다. 그동안 나는 미국생활하면 떠오르는, 미드에서 많이 보던 싱글하우스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결국 아파트를 구하게 된 사실을 좀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그 아쉬움이 싹 날아갔다. ㅎㅎ 아이와 둘이 단기로 오면 아파트가 답입니다, 여러분!


그다음 날인 금요일, 남은 정착업무들은 아이가 학교 간 뒤에 처리하기로 하고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마지막 평일에 뭘 할지 즐거운 고민을 하며 이것저것 제안했는데, 아이는 모두 싫다며 집에 있겠다고 했다. 또? 어제도 아침 일찍 교육청만 갔다가 종일 집에 있었는데? 그 전날에도 종일 밖에는 한 번도 안 나갔는데? 아이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미국은 총기사고가 많이 나서 무섭단다. 엄마, 길 가다가 총 맞으면 어떻게 해?


나는 처음에 아이가 농담을 하는 줄 알고 웃어넘겼는데, 아이의 표정을 살펴보니 진짜 두려움이 묻어났다. 새삼 아이와 나의 기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바로 옆에서 실제로 사고가 터진다 해도 그것이 나를 덮치지는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사람인 반면, 아이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도 자신의 일처럼 두려워하면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사람이다. 미국이라는 낯선 땅은, 비록 정착과정이 험난하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모험과 도전인 반면 아이에게는 검증되지 않은 위험이 도사리는 두려운 환경이었구나. 그래, 오늘도 집에서 쉬자. 어차피 다음 주부터 학교를 가야 하고, 너는 또 적응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겠지. 원하는 대로 충분히 쉬렴.


자기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깜짝 놀라 물으니 자기 방 벽장 안에 커다란 노래기가 있단다. 꺄악!!!!!! 나도 같이 비명을 질렀다. 벌레는 나도 너무 무섭다;;; 둘이 한참 껴안고 비명을 질러대다가 아이가 '당장 이 집을 버리고 나가자'고 하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벌레를 잡아서 치우지 않으면 아이는 이 집에서 계속 불안한 상태로 있을 것이다.


혹시 이것도 리싱 오피스에서 해결해 주려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결국 이 문제도 내가 해결해야 하는구나. 뭔가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다가 종이박스를 뜯어 손에 말아 쥐고 심호흡을 하며 벽장문을 열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자 분명히 봤단다. 혹시라도 갑자기 벌레가 튀어나올까 조심하면서 여기저기 들쳐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아들아, 생각해 보니 노래기는 한국 벌레 아니니?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혹시 아이가 스트레스가 심해 헛것을 본 게 아닐까 싶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날 밤 자려고 불을 끄고 아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미국이 왜 싫은지, 왜 위험한지 한참 얘기하다가 말했다. "엄마, 우리 다시 한국 가면 안 돼?"


나왔다,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 연수를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되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이가 미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자고 하는 일. 아이를 위해 선택한 일이 아이에게 오히려 해가 되는 일.


'엄마가 너를 여기에 데리고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관문을 통과하고,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썼는지 알아?'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참는다. 아이에게 배수의 진을 치고 현실에 적응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아이는 성공과 실패, 그 결과에서 자유로워야 맘껏 도전할 수 있다. 그래서 말했다. "소망아, 네가 원하면 언제든 한국에 돌아갈 수 있어. 하지만 우리는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여기에 대해 잘 모르잖아. 좀 더 지내보다가 정 힘들면 그때 돌아가자." 아이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잠이 들었다.


토요일, 이제는 냉장고에 먹을 것도 다 떨어졌다. 잠깐 마트만 갔다 오자고 해도 아이는 여전히 거부한다. 고민하다가 바로 앞집에 사는 한국인 가족(이 인연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한다)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만 장을 보러 나왔다. 아아, 나오니까 살 것 같구나. 이 얼마 만에 맛보는 자유의 공기냐! 눈뜨면 집 밖을 나와 잘 때나 기어들어오는 나 같은 외향형 인간에게 집에 갇힌 지난 며칠이 얼마나 답답했던지.


신나서 생수랑 고기, 과일 등 필요한 것들을 잔뜩 담고, 눈앞에 보이는 쿠키도 한 봉지 집어 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차에 오자마자 쿠키 봉지를 뜯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으음... 너무 맛있다. 이게 쿠키의 맛인지 자유의 맛인지 모르겠다. 물도 커피도 없이 앉은자리에서 쿠키 반 봉지를 순삭했다.

개인 취향으로는 월넛이 들어간 것이 맛있다


드디어 월요일 아침. 8시에 초등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가서 담당자의 안내를 받으니, 아이의 이름을 확인하고 스쿨버스 승하차 시간을 알려주더니 이제 우리가 데려갈 테니 나보고 가란다. 학교 준비물(SCHOOL SUPPLY)로 가득 차서 무거워진 가방을 아이에게 매어 주고, 낯선 서양인들을 따라 복도로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잔뜩 긴장한 듯한 모습이 측은해 보였지만 아들아, 이제부터는 너의 영역이야. 스스로 헤쳐나가야 해.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


아이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치기를, 이따가 스쿨버스 정류장에서 무사히 만나기를 기도하면서 학교 밖을 나왔다. 아이가 걱정되는 것과는 별개로 스멀스멀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나는 자유다! 아이 씐나! 뭘 하면 좋을까? 아직 처리 못한 정착업무들이 머릿속에 잔뜩 떠올랐지만 에라 모르겠다. 지난 며칠 나도 아이와 함께 긴장상태였다구. 오늘은 나도 푹 쉬자. 다시 한번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떡볶이는 언제부터 나의 소울 푸드가 되었나!) 간식거리를 챙긴 뒤 그 사이에 깔아놓은 VPN을 통해 쿠팡플레이로 '밤에 피는 꽃'을 감상하면서 뒹굴거렸다.



하교 시간에 맞추어 스쿨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아이가 올 시간이 되자 슬슬 긴장되기 시작한다. 오늘 하루는 어땠을까? 제발 괜찮았기를. 즐겁지는 않았어도, 한국에 다시 가고 싶어질 만큼 나쁜 하루는 아니었기를.


버스에서 내린 아이의 가방을 받아 들며 물었다. 오늘 어땠어? 답이 나오는 그 잠깐의 시간이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아이는 들뜬 하이톤으로 대답했다. "엄마, 미국 학교 완전 좋아! 공부 하나도 안 해! 놀기만 해! 나 이제 한국 학교 안 간다고 학교에 전화해 줘."


그 한 마디에 나를 둘러싼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제 되었다. 너만 잘 적응하면 나머지는 다 괜찮다. 마음에 평화가 밀려들어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음 날 아침, 등교시간에 맞추어 스쿨버스 정류장으로 함께 나갔다. 아직 혼자 가는 것은 무섭지만 남들에게 엄마가 데려다주는 것을 들키기 싫은 사춘기 초입 아들은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길목에서 나에게 "이제 안 데려다줘도 돼. 엄마는 들어가."라고 말했다.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그냥 들어갈 수는 없지. 아이가 제대로 스쿨버스를 타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몰래 수풀 뒤에 숨어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서 있다가 몇몇 친구들에게 '하이'하고 인사를 한다. 아이의 인사에 친구들도 화답하는 모습을 보니 더 걱정할 것이 없겠구나. 알아서 잘하겠지.


집으로 가려고 뒤를 돌았는데 한 귀여운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내게 인사하며 물었다. "Are you Ryan's mother?" (Ryan은 아이가 학교에서 쓰는 영어 이름). 맞다고 대답했더니 자기와 한 반이라며 웃는다. 같은 반 친구가 나에게 먼저 인사할 정도면 진짜 걱정할 것이 없겠구나. 다행이다.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 저도 모르게 외국인 며느리를 맞이하는 상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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