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나 9시 전에 갔더니 티나가 아직 근무 시작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물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약속이 취소되는 등 변수가 생길까 봐 불안해서 일찍 왔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짧은 영어로 설명할 재간이 없어 그냥 빙구처럼 웃기만 했다;;; ㅋㅋㅋ
아이는 테스트를 보러 가고 나는 티나와 마주 앉아 학교 등록에 관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먼저 티나는 내게 통역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미국은 아이와 관련된 일에는 참 친절하다 생각하면서 YES라고 대답했다. 아이 학교와 관련된 일인데 한 마디도 놓칠 수 없지.
티나는 전화로 통역해 주는 서비를 요청했고, 우리는 수화기 너머의 통역사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시작했는데, 이 통역이....... 하아.......... 통역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말이 끝나면 바로 통역이 되어야 하는데 한참 침묵이 이어졌고, '통역해 주세요' 하면 그제야 입을 떼었다. 아마도 통신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티나와 나는 답답해서 중간부터는 통역사를 배제하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 고로 내가 아는 정보는 매우 부정확할 수 있다 ㅋㅋㅋ).
더듬더듬 대화하는데 티나가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예방접종 두 개가 빠졌단다. 알고 보니 보건소에서 한국 기록을 옮겨 적을 때 빠트려서 적은 거였다. 하아....... 야 이 미국 놈들아, 서류에 쓰여 있는 거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하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해서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키니... 눈과 손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너네 이 따위로 일하고도 왜 강대국이냐. 응? 아주 땅따먹기 잘해서 자원이 넘쳐나는 곳에 살고 있으니 배가 불렀구나. 이 비닐봉지 한 번에 두 개씩 쓰면서 분리수거도 안 하는 놈들아!!
머릿속으로 온갖 욕설을 하느라 표정까지 굳어졌다. 미국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낮은 자세로 "땡큐, 쏘리"를 연발하며 굽신굽신 했지만 이번만큼은 웃는 낯이 안 나온다. 잠자는 공주 같던 통역사님을 깨워 한국어로 "예방접종 한국에서 전부 다 맞고 왔다고 말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나의 깊은 빡침을 눈치챈 것인지 티나는 서류를 다시 살펴보고, 웰컴센터에 있는 (아마도 간호사인 듯 한) 다른 직원분에게 '여기 적혀있는데 빠진 거 같다'고 말했다. 직원분은 서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고, 결국 무사통과.
아이가 테스트가 끝나고 오자 나는 아이를 4학년에 넣어달라고 말했다. 아이의 생일은 8월 말이어서 9월 1일을 기준으로 하는 미국에서는 5학년으로 가야 하지만, 내가 있는 헨리코 카운티는 초등학교가 5학년까지이고 가을학기인 6학년부터 중학교로 가는데, 중학교에 가면 공부도 훨씬 힘들어지고, 정해진 교실이 없이 우리나라 대학생들 강의 듣듯이 수업마다 교실을 찾아다녀야 해서 친구 사귀기 어렵다는 얘기를 미리 들은 터였다.
근데 여태 호의적이던 티나의 반응이 의외로 단호했다. 규칙해로 해야 한다며 왜 한 학년을 낮춰야 하는지 묻는다. '내 아들은 영어를 잘 못한다'고 대답하자 그건 문제가 안 된다고 대답했다. 아아... 어쩌지? 그냥 알았다고 해? 뭐 중학교를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고 포기하려는 찰나에 중학교 운동장에서 홀로 철봉에 매달려 있는 쓸쓸한 아이의 모습이 (본 적도 없는데)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 아들이 여기서 5학년에 다니면 한국과 한 학기가 차이 나서 한국에 돌아갔을 때 그만큼의 공백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내가 영어를 잘한 거 같지만, 실상은 미스.. 원 시메스터... 리턴... 이러면서 떠듬거렸지만.
그런데 그 말을 티나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아하 너네 다시 한국 가니? 그럼 해줄게."라고 말했다. 오오, 정말입니까? 알고 보니 티나는 우리가 미국에서 계속 살 줄 알고 원칙대로 한다고 말한 거였다. 왜 나는 우리가 여기 10개월밖에 안 있을 거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자기중심적인 나 좀 보소.
티나는 4학년으로 보내기로 결정하면서 내게 "영어 한 번 배우려고 참 긴 여행을 하는구나"라며 웃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등교시키라고 말했다. 얏호! 아이가 드디어 학교에 간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굽신굽신 자세로 돌아와 땡큐를 연발하며 교육청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한 나절 뒹굴면서 휴식을 취한 뒤 저녁에는 한국에서 미리 소개받은 리치몬드 한인교회 분이 집에 방문 오셨다. 한국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미지의 리치몬드 행을 준비하고 있을 때 이것저것 알려주시면서 도움을 주셔서 정신적으로 큰 의지가 되는 분이었는데 직접 뵈니 더욱 반가웠다.
그분은 내가 가구 조립을 위해 빌려달라고 부탁한 전동 드릴을 갖다 주러 오셨는데, 오시면서 갖가지 과일, 집에서 만든 불고기와 전!까지 챙겨주시고, 부피가 커서 옮기지 못하고 내내 차 안에 싣고 다니던;;; 식탁 상판까지 같이 옮겨주셨다. 이런 고마울 데가...
나와 아이는 저녁으로 불고기와 전을 폭풍 흡입하고 든든히 배를 채운 후 이제 무빙 받은 가구 조립에 들어갔다. 먼저 부피가 작은 안락의자부터 시작. 그런데 분명 살 때 시연을 본 바로는 쉬워 보였는데 낱낱이 분해된 부품들을 보니 아리송하다...? 게다가 '남자아이니까 가구 조립 같은 데 흥미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하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했던 아들놈은 옆에서 같이 아리송해하면서 잠깐 고민하다가 '쉬고 온다'면서 내뺐다....;;;
아들아, 네가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쪽이라는 것을 엄마가 간과했구나. 외롭게 혼자 이리저리 짜 맞춰보다가 안 되겠어서 결국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누군가 친절하게 설명을 올려준 것이 있어서 그것을 보고 따라 하면서 겨우 완성했다.
그다음은 식탁. 이것은 부피가 크긴 하지만 조립이 그닥 어렵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내뺀 아들놈을 다시 소환하여 식탁 상판을 같이 뒤집은 뒤 파인 홈에 다리를 끼워 맞추고 두드렸더니 잘 들어갔다.
조립한 가구들을 세워두고 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사람이 각자 가진 능력치가 다른데,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능력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뭐든지 만지기만 하면 멀쩡하던 것도 고장 내는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내가 이 두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 내다니. 오 주여, 정녕 이것이 제가 조립한 가구란 말입니까? 아이도 뭔가 뿌듯했는지 당장 아빠에게 가구 사진을 전송하고 곧바로 전화해서 '내가 만들고 엄마가 도왔다'며 허풍을 떨었다. ㅋㅋ
때마침 페어팩스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방금 이케아 가구 조립을 끝마쳤다'고 당당히 말했더니 친구가 '가구 조립할 줄 알면 미국인 1단계라는데 너도 이제 미국인이구나' 하며 웃었다. 2단계, 3단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집수리, 차수리 아닐까? 궁극의 단계는 '자기 병 자기가 고치기'일 테지. ㅎㅎ 뿌듯한 마음과 별개로 다음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미국 정착 꿀팁]
이케아 가구 조립방법을 모를 때에는 모델명을 확인해서 인터넷에 검색하면 조립방법이 나와 있는 영상들이 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