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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피 Apr 12. 2023

순간의 합

 집으로 가는 길 초입에 있는 아프면 자주 가던 하얀 건물의 보건소와 내가 주말마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주황색 지붕 교회와 회색빛깔 승합차를 눈으로 지나친다. 내 발 앞 세 갈래로 나뉜 길에서 고개를 높게 올려 본 파란 하늘은 선명하다. 세 갈래 길 중 직선으로 쭉 벋은 그 길을 걸으면 좌우로 넓게 펼쳐진 논과 밭이 있었다. 고개를 살짝 내려다보며 걷는 내 발아래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걷는 흙길은 알게 모르게 안정감을 줬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걷다 보면 이내 마주하게 되는 내 오른편의 짧은 코스모스의 행렬이 눈에 담긴다.     


 바람이 불면 흰색이고 분홍색이고 너 나 할 것 없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바람소리와 함께 합창을 하는 코스모스들이었다. 나는 코스모스가 피어난 짧은 그 길을 좋아했다. 그 길의 날씨는 내 기억 속 언제나 맑음이었다. 푸른 하늘과 코스모스, 저 멀리서도 내가 좋아하는 초록이 가득한 산과 나무들, 넓게 펼쳐진 논과 밭들의 꾸밈없는 모습. 아침에는 학교를 가기 위해,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니던 그 길은 혼자였지만 내 기억 속 한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다.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가 시원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억이라니.      


 혼자서 걷는 그 길에 나는 온갖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지금은 그게 어떤 생각이었는지 모르지만 걷는 길이 언제나 심심할 틈이 없었던 건 분명하다. 그렇게 아직은 어린 몸, 덜 자란 발이 학교와 집을 오고 가게 만든 날이 6년이나 되었다. 6년 동안의 나는 여름과 가을 그 사이에 피는 코스모스와 함께 걸었다. 그리고 6년 치의 합이 지금의 기억을 간직하며 꺼내볼 수 있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 기억을 감정으로 부르자면 행복이다. 행복은 초와 분 따위로는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찰나처럼 지나간다. 행복은 붙잡는다고 붙잡히지 않는다. 내가 조금 더 행복하고 싶다고 곁에 두고 싶은 만큼 둘 수 없다. 행복은 그저 자연스레 흘러갔다 또 어느새 찾아오고 또다시 흘러간다.    

  

‘내가 방금 몇 분 동안 행복했지?’


‘보통 몇 분 동안 행복하세요?’     


우리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지도 다른 이에게 묻지도 않는다.      


보통 우리는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이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리고 우리는 생각한다. 행복한 순간의 조각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날의 어느 날을. 내가 파란 하늘, 코스모스가 핀 흙길을 자박자박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그날을 떠올리며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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