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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피 Apr 06. 2023

Kill  美


 아름다운 것은 땅과 가장 가까이 있기를 원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호기심으로 하늘과 좀 더 가까워지길 기대했다. 그리하여 땅 속으로는 단단한 뿌리를 내어 흙을 움켜쥐고 흙 위로 차츰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호기심이 가져온 상자를 열고 보니 땅 밑과 비교할 것 없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것도 또 다른 아름다운 것에 매료가 되었다. 그렇게 가장 단단한 마음을 숨기고 위로는 가녀린 몸을 아름다운 것이 세상 위로 드러냈다.


 땅 위의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해와 바람, 물은 시시각각 변하며 아름다운 것들을 목을 마르게 했다가도 목을 축이게도 했다. 하품이 일 때쯤이면 새와 벌과 온갖 벌레들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싣고 자신에게 재잘거리며 얘기를 들려주었다.      


 밤이 되면 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달이 대신했고 구름은 이따금 찾아와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은 매일의 시간을 셀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제 자리를 잃어버리고 새로운 자리로 하나의 손에 의해 옮겨졌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자신의 자리를 잃었지만 누구 하나 말이 없었다.   

  

 새소리도, 벌의 날갯짓도, 이따금 자신을 찾아오던 벌레들의 발소리는 아니었다. 그 소리는 다양했고 흙의 움직임은 여느 날과 달랐다. 하지만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들에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쳐댔을 뿐 긴장감이 감도는 그 공간은 오로지 저들의 것이었다.  

   

 아름다운 것들은 그렇게 짓이겨졌다.      


 아름다운 것들은 세상 가장 밑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뿌리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같이 슬픔을 이겨내려 애썼다. 제 옆의 아름다운 것의 죽음을 애도해야 할 시간은 짧아졌고 눈물을 닦아줄 손수건은 때로 모자라기도 했다.     


 허나 아름다운 것들은 지지 않았다. 세상 가장 밑, 어두운 곳에서부터 태어난 존재이지 않은가. 어둠을 어깨에 이고 세상 위로 올라온 가녀린 아름다운 것들은 세상을 포용하며 살아가야 하는 법을 이미 깨달은 지 오래되었다. 저들의 피고 지는 삶은 세간 속 당연한 이치였기에.     


 아름다운 것들은 세상 가장 밑에서부터 피어났다. 우리는 세상 가장 밑으로부터 피어난 것들을 쪼그려 앉아 보기도 하고, 시선을 따라 마주 보기도 했으며, 때로는 고개를 들어 하늘과 맞닿은 것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그러다 제 곁에 더 두려고 아름다운 것을 탐해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 손에, 발에 피를 묻혔다. 어두워진 눈에 보이지 않는 피를 묻힌 이들은 두 귀도 멀어 더 이상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법도 듣는 법도 잊어버렸다.


 죄의 값어치는 늘어났으나 아름다운 것을 쫓느라 발이 바빠진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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