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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피 Jun 29. 2023




 내 기억 속 처음의 ‘밤’은 돌아오지 않을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 밤이었다. 다섯 살. 엄마 없는 첫 밤을 나는 할머니 품에 안겨 울었다. 창호지 문 하나를 활짝 열어두고 동그랗게 익은 달에 의지하며 나도 할머니도 가슴속 응어리 하나를 심어놓은 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밤은 그런 밤이었다.     




 섬에서의 낮과 밤은 너무나도 확연하고 명확하다. 환한 해가 사람 머리 위를 비추는 시간에는 학교 운동장이 떠들썩하고 마을엔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제법 가득했다. 해가 지고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 오면 간간이 간격을 두고 서 있는 노란 가로등만이 외로이 자리를 지켰다. 집 안에서는 티브이며 책으로 본 귀신과 괴담 이야기가 밤이 되면 찾아왔다. 파란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 빨간 마스크까지. 어린 내게 밤은 온통 귀신과 괴담들로 가득해서 이불을 발부터 머리끝까지 덮지 않으면 그 공포를 이겨내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랬기에 늘 잠들기 전 동생과 함께 화장실을 같이 가자고 졸랐다. 집 밖에 있는 화장실 한 칸까지 가는 그 길이 왜 그렇게 무섭던지 도착하고서 그 어둠 안에 들어가 볼일을 볼 때도 밖에서 동생이 기다리는 게 맞는지 혹여 날 두고 가진 않았을까 몇 번이고 확인하던 밤이 떠오른다.     




 그렇게 무섭던 밤이, 별자리를 배운 날 별자리를 찾겠다고 올려다본 그 까만 하늘 위가 조금은 달리 보이게 된 건 언제였는지. 그날 별자리를 찾기 위해 올려다본 내 눈이 조금은 어둠과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카시오페이아, 오리온, 북두칠성. 매일 밤, 그 하늘 위로 세 개의 별자리를 찾곤 했다. 그 별자리를 찾으며 어둠을 이겨내는 시간이 온 만큼 나도 어느새 아이에서 소녀가 되어갔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섬을 벗어났다. 섬을 벗어난 미숙한 소녀는 대학 생활에 푹 빠졌다. 더 이상 밤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스무 살의 밤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붉은 홍조를 그리며 이성에 눈 뜨게 하고 사랑을 하게 한다. 반짝이는 눈으로 새로운 밤을 기대한다. 어른들만 알던 세계로 발을 들이는 순간 목구멍으로 쓰고 맛없는 소주가 넘어간다. 그런 밤은 모두가 솔직해졌고 나는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술이 깨고 나면 그 모든 밤이 꿈처럼 여겨지며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지만.      




 나는 스무 살이 되고 섬을 벗어난 직후부터 줄곧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말마다 하는 아르바이트의 시급은 최저보다 조금 위에 있었지만 그랬기에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름 냄새를 뒤덮어야 했다. 화려한 밤을 수놓듯 간판은 꺼질 줄 몰랐고 골목은 왁자지껄 내 또래의 사람들이 젊음을 등에 업고 놀기 바빴다. 같은 공간 속에서 누군가의 밤은 여전히 생존을 위해 존재했지만 누군가의 밤은 쾌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돌아가는 새벽의 밤공기는 차가웠고 더웠고 습했다. 일순간의 고요는 돌아가는 발걸음에 허무함을 낳기도 했지만 밤은 눈을 감는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했다. 사회생활은 어려웠고 여전히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어른 흉내를 내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고 나 자신을 이해받기는 더 어렵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의 밤은 무척이나 고달팠다.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다. 쉽게 잠들기 아쉬운 날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밤에도 낮부터 이어진 업무가 연장되기도 했다. 그때의 밤은 무엇이든 다 이뤄내야만 한다고, 남들과 달리 뒤처져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나를 괴롭히던 밤이었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무언가를 갈망하며 그 무엇을 얻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지 모르겠다.     




 이십 대의 밤을 지나고 서른의 밤이 왔다. 서른의 밤은 혼자였던 나를 둘에서 셋으로 가정을 이루게 했다. 직장에서 이뤄나가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던 날, 내 뱃속의 아가보다 내가 더 소중하고 애달파서 그때의 밤은 참 많이도 울었다. 행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끔은 행복일까 의심하면서. 한 아이를 품에 안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퇴근한 남편과 밤을 걸을 때 이제껏 내가 알던 세상이, 내가 누렸던 밤들이 모두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리라는 걸 직감조차 못했다. 아이가 세상으로부터 빛을 보던 순간 남편과 나는 낮보다 더 치열한 밤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낮처럼 치열하게 밤을 보낸다. 탄생은 또다시 밤을 다른 의미로 두렵게 만들기도 하고 기대하게 하고 설레게 하고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고 행복하게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밤이 지속되는 한 나의 밤도, 당신의 밤도 어김없이 온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형태로 올지 몰라도 우리는 늘 그렇듯 내일의 밤을 맞이한다. 오늘이 힘든 밤이었다면 내일은 조금 덜 힘든 밤이 되길. 오늘이 행복한 밤이었다면 내일의 밤이 그 기운으로 버텨 나갈 밤이 되길. 모든 밤을 가진 이들이 오늘 밤, 잘 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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