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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을 가꾸는 건축가 Nov 11. 2022

도서관에 사람이 없다.

도서관과 책 이야기

도서관에 가서 책장에 꽂힌 책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좋다. 오래된 도서관이면 더욱 볼거리가 많다. 아주 오래된 책들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냄새 그리고 오래된 종이의 질감과 오래된 책 속에 어떠한 옛날이야기들이 담겨 있는지 궁금해서 더 찾아보게 된다. 도서관에는 오래된 책들만 화석처럼 굳어서 그곳에 있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서 아주 가지런하게 꽂혀 있다. 그러나 한동안 보다 보면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가 많다. 서가에 꽂힌 책을 찾아보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동네 도서관에 가면 사람들이 있지만, 특히 대학도서관에 가면 유독 학생들을 발견할 수 없다. 오래된 대학의 도서관에 가면 그 대학이 개교했을 때부터 있던 오래된 책들이 책장에 가득한데 그 책을 봐줄 사람이 없다. 오래된 책들에 쌓인 소복한 먼지들이 부끄럽기까지 한다. 부모들이 어린 자식들에게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으라며 동화책이나 어린이용 전집을 사주는 반면 정작 책 읽으라고 사주는 어른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대학 때까지 책을 읽고 공부했던 사람들도 직장을 다니고 삶이 바빠진 이후로 책을 보지 않는다고 한다.    

언젠가 내가 쓴 책이 있어 고마운 분들께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첫마디가 “요즘 책을 보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는데, 네가 썼다니 오랜만에 읽어볼게”라고 했다. 매우 의문스러우면서도 놀랄 발언이지만, 책을 전혀 보지 않는 성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또, SNS에 "요즘은 책을 읽는 사람보다 글을 쓰고 책을 출판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언뜻 그런 것 같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말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들어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 할수도 있겠다.     

2000년대 초반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종이 신문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이후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이제 진짜 대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스마트폰의 보급이 신문의 기세는 거의 꺾은 듯하다. 지하철에 그 많던 무가지 신문들은 아예 사라졌고, 가판에서 팔던 신문을 언제 사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새벽마다 동네를 돌던 신문배달의 아르바이트는 이제 너무 옛날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종이책의 종말을 넘어 전자책조차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이 책의 종말을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아직 종이책이 건재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때가 온 것 같다. 이제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서 모든 정보를 얻기 시작한 세대가 20대에 들어가면서 이제 진짜 종이책의 종말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이들은 더 나아가 영상으로 정보를 얻는 세대이다. 시간이 흘러서 그렇게 된 때문인지 대학도서관에 가면 진짜 학생들이 없다. 1학년이 끝나도록 도서관에 가본 적이 없는 학생이 거의 대부분이고, 가본 것을 떠나서 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책을 한번이라도 빌려본 사람도 없다고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대학도서관의 또 다른 변화된 모습은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이다. 도서관에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이 많은데, 이 공간도 모두 비어있다. 요즘 어떤 대학생이 이런 답답한 닭장 같은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나 싶다. 옛날이야기다. 대학도서관의 답답한 열람실은 이제 카페 같은 밝고 쾌적한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갑자기 어릴 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열람실이 생각난다. 어릴 때 동네 도서관에 공부하러 가면 열람실에 사람이 가득 차 있었다. 자리를 잡으려면 새벽부터 가서 줄을 서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무도 없다. 그때는 학생들은 많은데, 사회 공공시설이 매우 부족한 시절이었다. 도서관에 공부하는 자리조차도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도서관 열람실에서 나는 땀내, 쾌쾌한 냄새가 기억에 남는다.     

동네의 공공도서관은 점점 전자책으로 바꾸고 있다. 책이 있는 공간을 없애고 전자책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바꾸거나 책을 책등만 보이게 꽂아주던 시대는 지나고 책 전면이 보이게 장식으로 책장에 놓는 시대로 가고 있다. 책이 점점 장식이 되어갈 뿐 진짜 책은 전자책으로 보는 시대이다. 코엑스 가운데 책의 전당 장식장이 만들어지고 많은 북카페들이 북(book)이 장식이 될 뿐 진짜 책은 아니다. 그런데, 진짜 책의 공간도 있다. 청담동에 있는 소전서림으로 이곳은 진짜 책을 읽고 쓰기 위한 공간이다. 그곳에 책을 쓰는 작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작가의 작업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진짜 보기 힘든 책들이 많이 가져다 놓았다. 얼마 전에는 돈키호테와 관련된 오래된 고서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어쩌면 이제부터의 책은 희귀한 책, 보기 힘든 책, 두꺼운 책, 책 자체의 가치가 있는 책 등이 있는 서점, 도서관, 책방이 인기가 있는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닌가. 많은 영화들이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지 않고, 넷플릭스등에서 먼저 방영을 시작하는 것도 같은 이치인 것 같다. 또한 최근의 독립출판을 위한 축제인 퍼블리셔스테이블이나 언리미티드에디션이 있는데,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야 할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축제의 호황은 책이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책을 바라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박경리의 토지 전집을 보았다. 16권으로 구성된 아주 두껍고 다 읽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대하소설이다. 그때는 이러한 소설이 대단하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독립출판 축제에서 보는 책들은 책이 오래된 독서를 요구하기보다는 새롭고 신선한 소재로 제작된 책들이 많다. 몇십 편으로 구성된 시즌제 드라마도 유튜브에서 요약된 짤로만 보는 시대에 무엇인가 길고 오래되고 엉덩이의 힘이 매우 필요한 책의 시대는 지난 것 같다.     

또한 지식을 얻는 지점이 도서관에 꽂혀 있는 오래된 책들 속에서가 아니라, 전자책이나 인터넷, 유튜브, 온라인 강의 등 무형의 지식들이 세상에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된 책들이 가득한 도서관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200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책들 속에서도 아주 좋은 지식들이 많은데, 이 지식들은 인터넷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이러한 것들은 전자화되어 있지 않은 자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들이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래된 책들은 많이 가지고 있는 대학도서관들은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책을 버릴 수도 가지고 있을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일 것 같다. 동네의 공공도서관들은 대부분 오래된 책들은 정리했다. 가보면 책의 숫자가 매우 적고, 대부분 최근의 책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옛날 도서관의 시대는 지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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