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주째, 임신 7개월을 지나고 있는 나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이 매우 행복하다.
그렇지 않아도 소심한 나는 주부 잡지에 굵은 활자로 등장하는 ‘불임’이나, 상담 코너에서도 빠지지 않는 ‘난임’등의 이야기에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있었기에, 테스트기의 두 줄을 발견한 그날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요즘 같은 무기력함이 그리 흔하진 않았다. 무기력함은 2~3일 전부터 시작된 것 같다.
방학만 하면 좀 살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아주 틀리진 않았다. 뛰어다니는 아이들 틈에서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복도를 지날 일도 없고, 분필 가루가 날릴까 봐 겁이 나 교실 앞문을 닫지 못하고 벌벌 떨어야 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주는 달과 6펜스를, 오늘부터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시 읽고 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은 흥행이 보증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그런 목록은 언제고 다시 읽어도 두 배, 세 배의 감동을 준다. 하지만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워보겠다는 당찬 태교의 포부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책에 집중하는, 전과 다르지 않은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굽어지지 않는 손가락을 보거나, 깎을 수 없는 발톱을 망망히 내려다보다 남편에게 슬며시 내미는 것은 임신이 내게 주는 아주 작은, 즐거운 추억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임신 전부터 목 디스크니, 허리 디스크니 하는 것들은 이미 약간의 기미가 있었기에 머리를 감을 때마다 저려오는 어깨와 허리 통증은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요즘 문득문득 돌아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인간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나의 몸 상태는 가끔 나를 이런 가벼운 우울로 이끈다. 예쁜 아기가 들어있는, 곧 터질 것 같지만 앞으로도 더 커질 무시무시한 나의 배와 임신으로 인해 물들이지 못한 한 뭉텅이의 흰 새치들을 볼 때. 나는 예전보다 우울에게 조금 지는 기분이 든다.
‘다들 그렇게 지나가니 예민하게 굴 필요가 없다’든지,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축복인 줄 알게 될 것’이라는, 내가 기도문만큼이나 신봉하는 말들도 이럴 때는 약발이 떨어진다.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할 때’라던데 그 말도 이제는 위로가 아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예언 같은 것이 되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 되기가 이렇게 어려웠나, 싶고 엄살 피우는 듯 한 이런 이야기들을 태교 일기로 남길 수도 없어 일기장도 한참 동안 덮어두고 말았다.
다만, 가끔 느껴지는 아이의 작은 발차기 혹은 꿍얼거리는 움직임이 다시 나를 정신 차리게 만든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육아 잡지를 뒤져가며 애초에 계획했던, 나의 완벽한 태교는 이미 물 건너갔다. 아이가 완벽하길 바라며 노심초사하기 전에, 나나 잘하자. 내 마음이나 잘 다스리며 요 작은 녀석을 안아주자. 감기 같은 이런 우울감, 코 팽팽 풀며, 콜록거려가며 이겨내면서, 그렇게 잘 지나가길 기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