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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미 Oct 28. 2019

난장판 레고 속에서 아들은.

- 엄! 나 이제 놀아도 되지?

- 아직 동생 밥 먹고 있으니깐 저쪽 가서 놀아.


밥 한 그릇 뚝딱 먹은 여섯 살 첫째가 일어났다. 놀이방에 들어가더니 레고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상자를 거실 바닥에 냅다 쏟아부었다. 순간 내 안에서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레고의 양이 엄청났기에 저걸 언제 다 치우나 싶었다.


- 느그 나증에 치우꺼지? (네가 나중에 치울 거지?)


이를 꽉 물고 말했다. 벌써 뭔가를 만들기 시작한 첫째는 대꾸도 안 한다.





나는 둘째 밥 먹이는 것에 집중했다. 초민감 위장을 가지고 있는 둘째는 조금이라도 많이 먹거나, 빨리 먹으면 즉시 분수토를 뿜어댄다. 항시 둘째의 상태를 세심히 살피며 밥을 먹여야 했다. 그런데 첫째가 자꾸 나를 부른다.


- 엄마! 이거랑 똑같이 생긴 건데, 파란색 어딨어?

- 거기 있겠지.

- 안 보여. 찾아줘.

- 지금 찾아줘야 해?

- 응! 지금!


나는 레고 더미를 뒤졌다. 다 그놈이 그놈이다. 내가 이걸 왜 사줘서 고생을 하고 있나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행히 구석에서 파란색 레고를 찾아냈다. 첫째에게 건네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의자에 앉자마자 또 나를 부른다.


- 엄마! 노란색도 없어!

- 잘 좀 찾아봐.

- 찾아봐도 안보이니깐 그렇지.


한숨을 쉬며 엉덩이를 뗐다. 이번에도 한참을 뒤적인 끝에 노란색 레고를 찾았다. 그때 둘째가 소리를 지른다. 아이고야, 국그릇을 바닥에 엎어놨다. 초록색 미역 조각이 넓게도 퍼져있다. 오늘은 토를 안 한다 했는데, 이렇게 사고를 치는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옷은 살아남았다. 나는 식탁 밑에 쪼그려 앉아 바닥을 닦았다. 그때 또 나를 찾는 첫째 목소리.


- 엄마! 엄마! 하얀색 찾아줘.

- 그 색으로 해야겠어? 거 다른 색도 많잖아!

- 다른 건 안된단 말이야.


머릿속에서 커다란 폭탄이 펑 하고 터져버렸다.



엄마 바쁜 거 안 보여?
여섯 살이면 혼자서 좀 해봐!



나는 괴물처럼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첫째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바닥을 닦고, 둘째를 마저 먹였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도 첫째는 조용히 레고 더미 안에 있었다. 혼자 레고를 뒤적거리는 등이 조그맣다. 그러나 해야 할 일들이 나만 기다리고 있기에 첫째의 마음을 살필 여유가 없다.


- 엄마!


첫째가 또 나를 부른다.


- 또 뭐!


날카롭게 대꾸했다. 뒤를 돌아보니 첫째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무언가를 들고 있다. 그건 바로 레고로 만든 하트.


- 엄마! 사랑해. 내 마음이야. 제일 예쁘게 만들어주고 싶었어.








정말 멋졌다. 화를 낸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눈물이 찔끔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에휴, 엎어진 국물이야 닦으면 되는 걸. 나는 왜 그거 하나 못 참아서 소리를 질러댄 걸까? 나의 약함을 다시 깨닫는다. 나는 첫째를 꼭 껴안아줬다.


- 엄마도 사랑해. 아까 화내서 미안.

-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이 어린애가 오히려 나를 다독거려준다.


- 엄마! 나도 선물.


둘째의 고사리 손에도 레고 몇 개가 쥐어져 있다. 형아가 예쁨 받는 걸 보고 아무렇게나 주워온 걸 테다.


- 아이고, 우리 아들들.


나는 둘을 꼭 껴안아줬다. 땀냄새가 고소하다.


- 저기요! 살려주세요!

- 주떼요!


자기들끼리 낄낄 웃는다.

여섯 살, 네 살.

평생의 효도를 다한다는 가장 예쁜 시기.

원 없이 사랑해주자. 버럭은 조금만 하자고 (오늘도 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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