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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미 Sep 03. 2019

아들만 둘? 너네 엄마 불쌍해서 어쩌니.

조언의 탈을 쓴 불쾌한 참견에 대하여

- 아이고, 아들만 둘인가?


한 할머니께서 다가오셨다. 부쩍 선선해진 날씨 덕분인지 놀이터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이 난 두 아들은 온 놀이터를 휘젓고 다녔다. 시소를 탔다가, 미끄럼틀도 올라갔다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그러던 중 그네를 밀어주고 있을 때 할머니께서 말을 붙이신 것이다.


- 네. 6살 4살이에요.


나는 적당히 공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미 무슨 말이 이어질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어르신들께 대본을 나눠주기라도 하는지 언제나 똑같은 패턴이다.  


- 딸은 하나 있어야지.


역시나였다. 딸 예찬론을 펼치고 아들 무용(無用)론까지 훑어야 끝나는 대화. 어차피 애들 그네를 밀어주느라 어디로 가지도 못하는 거 그냥 들어주자는 마음으로 마른 미소만 띤 채 가만히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딸 하나를 더 낳아야 한다며 우리 가족의 미래에 열을 올리셨다. 별 반응이 없는 내가 재미없어서였을까. 갑자기 우리 아이들을 향해 외치셨다.



너네 엄마 불쌍하다.
아들만 있어서 어쩌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순간 우리 아이들이 나를 불쌍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화가 났다. 그러나 종종 얼굴을 스치는 동네 어르신이었기에 내 감정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그 말을 이해 못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께서는 조언의 탈을 쓴 불쾌한 참견을 계속 이어가셨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있기 힘들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만 집으로 들어가자고 말했다. 둘째는 싫다고 징징거렸지만 나는 손을  붙잡고 끌다시피 놀이터를 나왔다.


- 엄마, 나 때문에 엄마가 불쌍해?


집으로 들어온 첫째가 말했다. 역시나 첫째는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었구나. 그제야 나는 할머니께 조금 더 확실히 대꾸를 못하고 온 것이 후회됐다. 아이 마음의 상처보다 동네 평판을 먼저 생각한 엄마가 미안했다. 나는 두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꼭 껴안으며 힘주어 말했다.


- 아니야! 엄마는 우리 아들이 엄마에게 와줘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정말이다. 3년의 고생 끝에 찾아와 준 소중한 아이. 남자든 여자든 성별은 나에겐 전혀 상관없었다. 세상에 태어나 내 품에 안겨준 것만 해도 나는 이미 감당 못할 행복을 맛보았다.


가슴 벅차오르던 그 순간









며칠 후, 딸만 둘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친구는 아들을 낳아야 든든하다는 소리에 미치려 하고 있었다. 집안 대를 끊어먹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어봤다고 했다. 그것도 웬 지나가던 할아버지로부터. 한참을 퍼붓던 친구가 말했다.


- 우리가 또 낳았다고 치자. 넌 딸, 난 아들. 그러면 이 참견 끝일 거 같아?

- 그럼?

- 그땐 대책 없이 많이 낳았다고 뭐라 할걸.


맞는 말이다. 아들만 둘이든, 딸만 둘이든, 외동이든, 무자녀든, 미혼이든, 애가 셋이든, 어떻게든 참견은 계속될 테지. 괜히 속상해 봤자 내 손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털어버리는 고수의 기술은 언제쯤 연마가 련가. 친구와 나는 품에 있는 아이들에게 후회 없을 사랑을 주고 성인이 되면 깔끔하게 놓아주자고 결론을 냈다.






딸이 있어야 비행기를 타지
딸이 있어야 집안에 생기가 돌아
아들이 있어야 든든해
아들이 없으면 대는 누가 이어?


과연 누구를 위해 하는 말일까? 과연 '위하는' 말이기는 할까? 제발이지 심심풀이 참견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듣는 사람을 위한다면 딱 한마디면 족하다.


'지금 잘하고 있다'라고 말이다.


아들 둘.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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