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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Feb 16. 2024

어디에 내놓아도 안 빠져, 빠져, 빠져

어느 날, 동네 가게에 갔는데 계산대에 놓인 가게 사장님의 전화기가 울렸다. 본의 아니게 발신자를 엿보게 됐다. 사장님 아들이 전화를 한 것이로구나.


“응~ 아들~~ 영국이야?”


일부러 ‘영국’을 강조하는 어조가 느껴졌다. 나는 묵묵히 적립 바코드를 내보이고 계산을 한 후 가게를 빠져나왔다. 내 뒤꽁무니에는 가게 안을 꽉 채우는 큰 목소리가 한 번 더 우아하게 울려 퍼졌다.


“거긴 지금 몇 시야? 새벽? 아침?”

그때 느꼈다. 아,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이나 앞으로 평생 보지 않을 사람에게라도 자랑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내가 어디 가서 이 동네 주민들에게 이 가게 사장님 아들이, 글쎄 영국으로 여행을, 혹은 유학을 갔대, 라고 소문을 퍼트려 줄 것도 아닌데 나는 대놓고 사장님의 ‘자랑’을 엿듣고야 만다. (혹은 영국도 못 가 본 나의 자격지심이 겪는 해프닝일 수도 있다.)



사실 우리 어무니도 이 가게 사장님과 별다르지 않다. 친척이나 친구를 만날 때면 은연중에 둘째 자랑을 할 때가 많다. (물론 그 둘째가 나는 아니다.)


-우리 애가 번역한 책이에요.

-우리 둘째가 프랑스에서 공부했어요.

-우리 애가 법원에 통역하러 갔어요.


나는 엄마와 그 나름 절친이라 엄마의 친척 모임에도 (기생하듯) 따라가 점심을 얻어먹곤 한다. 그럴 때면 엄마의 ‘유일한 자부심’이 ‘둘째 딸의 눈부심’이라는 것을 쉬이 눈치챌 수 있다. 그러다 긴 자랑 끝에 갑자기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첫째 딸의 칭찬을 사이드 메뉴로 곁들일 때가 있는데, 주로 나에 관한 칭찬은……. 찾고 찾고 찾다가,


“지 욕심 차릴 줄 모르고, 그냥 착하기만 해서…. 쌍둥이 손자도 얘 없었으면 할아버지, 할머니만으로는 못 키웠어. 그래도 착한 끝은 있다잖아.” 


나는 ‘착한 끝’은 있다는 소리를 줄곧 들어왔다. 그러면 나는 끝이 나서야 복을 받는 건가, 뭐 거의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이런 이런. 


아무튼 나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어서인지 세속적인 기준으로 따진 ‘자랑’의 영역에 좀체 입성하지를 못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네가 뭐가 부족해서 결혼을 안 하고 있냐’라고 말씀하신 어무니셨는데 말이다.)



서두가 길었다. 좀 더 자세히 엄마의 둘째 딸을 파헤쳐 본다. 뭐 그리 대단한 딸이기에?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쥔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 할 일을 묵묵히 잘 해내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추앙을 받는다. (그럴 만도 하다. 요즘 자기 밥벌이도 힘든 세상 아니던가.) 그러다 약간 우리 가족 사이에서만 회자되는 어떤 사건이 하나 발생했는데 그 경위는 이러하다.

“네? 이걸 다 형수님이 번역하신 거라고요오?”

요즘 동생이 부쩍 동화책을 많이 번역하는 편인데 제부가 자기 회사에다가는 자기 부인이 무얼 하는지 자랑을 안 하고 다녔다고 한다. (크게 자랑할 일도 아니고.) 그러다가 직장 동료에게 약간의 은혜(우유 등의 선물)를 입어 그것을 되갚는 차원에서 자녀들 읽으라고 내 동생이 번역한 동화책을 몇 권 갖다주었고, 그제야 뒤늦게 자기 부인의 직업을 공개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 동료의 반응이 거대해서 회사 내로 잔잔히 소문이 퍼져 나갔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남편 회사 일감까지 하나 맡기로 했다는 소식을 동생네 놀러 갔다가 우연히 전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딸내미가, 정확히 말하자면 ‘둘째 딸내미’가 갑자기 자랑스러워진다. 그래서 내가 본 그 가게 사장님처럼 빛나는 눈빛과 우아한 목소리로 자기 딸을 자랑하기 시작한다. 누구한테? 남편과 큰딸내미한테. (다행히 동생네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이었기 때문에 그 자랑은 우리 가족만 들었다.)



“얼굴 예쁘지, 키 크지, 외국어 잘하지, 책도 많이 번역했지, 아들도 둘이나 쌍둥이로 턱 하니 낳았지. 일도 잘하지.” (거기서 ‘아들’이 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최애이자 내 목숨과도 같은 조카 녀석들이니까 일단 패쓰~)


나와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엄마의 높아진 텐션에 장단을 맞춘다. 물론 내 동생, 초등학교 때까지는 백설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리긴 했다. 어렸을 때는 같은 반 ‘남사친’이 같이 놀자고 집 앞까지 찾아온 적도 있었고. 배우 ‘장나라’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딱 ‘두 사람’에게서 들었을 정도로 눈 크고 얼굴 하얗고 ‘한때’ 예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자매는 둘 다 사춘기를 겪으며 급히 ‘역변’하였다. (나는 ‘역변’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자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동생은 좀 다르다. 예쁜 애가 역변하면 그 격차가 더 심하게 느껴지는 법.) 자, 그럼 다른 영역을 살펴볼까? 동생의 키? 170cm까지는 안 되지만 거의 근접하다. 작은 편은 아니다. 한데 키 크면서 덩치도 같이 커져서……. (이거 혹 동생 디스인가?) 하지만 외국어 잘하고 귀여운 쌍둥이를 낳았고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한다는 점은 나도 백퍼100% 인정이다. 



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힘이 들어간 엄마의 목소리에 동의한다. 사실 나도 어디 나가면 내 동생 자랑을 해댈 때가 많다. (이럴 땐 ‘쥐뿔 가진 것 없는’ 내가 약간 방어 기제 같은 것을 사용한다는 느낌도 든다.)

아무튼 두 사람(나, 아버지)을 향한 엄마의 자랑이 급기야 이런 문장을 낳기 시작한다.


“얼굴 예쁘지, 키 크지, 외국어 잘하지. 일도 잘하지. 어디 한 군데 빠지는 데가 없어.”

어디에 내어놓아도 안 빠져!


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네? 나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듯 내 동생이 그래도 속세의 기준으로 보아 어디에 내어놓아도 그리 크게 빠지지는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힘차게 박수를 치고 있는데 문득 이런 재밌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엄마에게 엉큼한 흑심을 품어 묻는다.


“엄마, 내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 줄까?”

“뭔데?”

“엄마네 둘째는 어디에 내어놓아도 안 빠지는데……. 엄마 첫째 딸은…….”



어디에 내어놓아도 다 빠져, 빠져. 빠져도 한참 빠져, 후훗.


얼굴 빠져, 키 작아, 외국어 못 해(한국어만 함), 책은 읽을 줄만 알지, 돈도 잘 못 벌어, 쌍둥이는커녕 애 하나도 없지……. 크크. 이거 뭐 완전 빠지는 조건 아니야, 그럼?



나의 반응에 엄마와 아부지가 갑자기 박장대소를 한다. (이거 뭐 완전 인정하는 분위기다. 쩝.) 여하튼 시원하게 나의 ‘빠진 부분들’을 통해 가족의 화목과 단합을 도모한다. 동생에게도 나의 이 촌철살인의 문장을 뒤늦게 전달하니, 동생 역시 표정을 통해 은근슬쩍 나의 문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오랜만에 살신성인의 자세로 가족들을 웃겼다는 자부심에, 나처럼 비혼 상태인 친구를 만나 이 일화를 자랑스레 전달했다. 


“난 어디에 내어놔도 다 빠져, 빠져. 크크크.”

“야, 그게 아니고.”

“그럼?”


야, 우린 이제 어디에 내어놓을 수도 없어. 


켁? 그, 그런가? 

한 발 더 앞서 나가는 친구의 혜안에 ‘빵 터진 웃음’과 ‘자조 섞인 미소’를 가득 지으며 친구와 나는 사회의 ‘틀’에 맞는 삶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우린, 지금까지 무엇이었을까?

어떤 모양이었을까?

동그라미였을까, 모난 돌이었을까?



그래도 어느 한구석 빠지는 데가 없는 삶보다

어디 나사 하나 빠진 녀석처럼 헐렁한 내가 좋다.



어디 내어놓을 수 없다는데도 내가 좋으니,

이거 참 문제가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사랑에 깊이 빠지면 약도 없고 답도 없다는데,


난 아무래도 나를 ‘쫌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난 아무래도 나를 ‘쫌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난 아무래도 나를 ‘쫌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난 아무래도 나를 ‘쫌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이거 참, 큰일이다.



(사진 출처: GDJ@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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