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로 엄마가 다소 씩씩거리며 들어오신다.
"왜 그래? 무슨 일이셔?"
엄마의 표정만 봐도 몸놀림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알아채는 절친(=나)이 묻는다.
"아니, ○○가 글쎄……. (어쩌고저쩌고)……."
사실 엄마는 30년 넘게 이어 온 동네 모임이 있으시다. 앞집, 옆집, 뒷집, 혹은 건너 건너의 집이라는 이유로 정말 오랜 시간 친하게 지내 온 이웃들이 있다.
콩 한 쪽, 아니 콩 반쪽도 나눠 먹었다. 김치도 같이 모여 시끌벅적, 왁자지껄 담근다. 아주머니들끼리 시장에 몰려가서 흥정도 같이 하고 심심할 땐 함께 모여서 잔치판을 벌린다. 콩국수를 말거나 잔치국수를 비비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엔 김치전을 부치기도 한다. 음식은 일부러 다량으로 준비하여 푸짐한 하루를 함께 보낸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가 집에 없으면 이웃집에 들어가 다짜고짜 "엄마"를 외쳤다. 어린 나는 이 집 아니면 저 집으로 가서 비슷비슷한 여러 엄마들 사이에서 금세 우리 엄마를 발견해 내곤 했다.
그 인연이, 우리 집이 이사를 한 후에도 여전히 이어졌다. 그런데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왜 그러시는디유?"
"아니, ○○가 글쎄 결혼을 한다잖아."
응? 안 좋은 일이 아니었다. 외려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평정심의 대가인 우리 엄마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열을 낸다.
"근데 왜?"
"그냥 신경질이 좀 나잖아."
아니, 나이 들어 좋은 인연 만났다는데 그게 왜? 평소 나보고 시집가라는 소리도 일절 안 하시는 분이 오늘은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좋은 일이구먼, 왜?"
"축하할 일이긴 하지. 그런데……."
('그런데'의 뒷부분에 유심히 귀를 기울인다.)
"너보다 키도 좀 작고……."
응? 여기서 키가 왜 나오지?
"아니 너가 왜.…"
엄마의 문장에서 어느새 '주어'는 내가 된다. (엄마의 삶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늘 주어 자리를 차지해 버린다.)
"그냥 갈 사람은 가고 안 갈 사람은 안 가는 거지, 뭐."
심드렁하고 태평한 소리나 해대는 나를 두고, 우리 엄마는…….
"아니, 네가 뭐가 부족해서."
끝내 우리 엄마는 이 말까지 꺼내 든다. 탄식과 안타까움과 약간의 화가 섞인 문장, '넌 대체 뭐가 부족하기에.'
아, 엄마의 씩씩거림. 그 원산지는 바로 '나'였구나. '너가 왜'라는 말에 붙은 엄마의 숨은 표정을 좀 더 읽어 본다. 그 모임의 자녀들 가운데 이제 나 하나만 남았다. 다들 가는데(어디를 가는지 다들 알고는 가는 거겠지?) '너가 왜' 안 가고 있냐는 소리였다. '왜'에 대한 대답을 나도 아직 찾지 못한 터라 나는 엄마에게 그럴듯한 '왜'를 제시하지 못한다.
엄마의 이 말을 출발 신호로 하여, 오랜만에 '나의 부족함'을 철저히 탐구해 보았다.
우선 첫 번째 조건, 키. 흠……. 결혼한다는 언니가 나보다 약간 키가 작긴 하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 이 불필요한 비교야말로 '도토리 키 재기' 아니겠는가. 그래, 어쨌든 나의 '키', 부족하다고 치자. 두 번째, 직업. 불규칙적인 프리랜서. 아, 이것도 세상의 기준에선 좀 부족할 수 있겠다. 보수가 안정적이진 않다. 세 번째, 사회성 및 사교성. 그러고 보니 내게 '사'로 시작하는 낱말들은 죄다 없네? 친한 사람들끼리만 친하지, 모르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입을 꾹 닫는다. 먼저 다가가는 법이 좀체 없다. 네 번째, 연애 인자(因子). 이건 말해 뭐해, 역시 부족하다. 마지막으로 나이? 오, 나이는 차고 넘친다. 이건 부족하지 않긴 한데 이런 것도 '결혼'의 조건에 끼워 주려나?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닐까?)
아무튼 '아니, 네가 뭐가 부족해서'라는 우리 엄마의 질문에 이제 대답을 할 차례가 왔다.
"음... 엄마, 나.. 그러고 보니 한참 많이 부족해."
‘연소득 6700만 원’…2023년 결혼 조건은? [인포그래픽] (etoday.co.kr) 이런 제목의 기사도 있었다. 결혼에 성공한 사람의 표준모델을 봤더니 남자는 36.9세에 연소득 6,700만 원, 키는 175.7cm가 평균, 여자는 33.9세에 연소득 4,300만 원, 키는 162.8cm가 평균. 이거 뭐 정상분포 그래프로 쳤을 때 나의 위치는 저쪽 왼쪽에 위치하고 있음이 더욱 자명하다. 공식적으로도 한참 부족한 거 맞네요, 엄마.
그래, 많은 사람이 부족해서 결혼을 못 하는 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집이 없고 기반이 없고 애 낳아서 키우면 교육비도 들고……. 결혼해서 애 안 낳더라도 이쪽저쪽으로 돈 들어갈 데 많고.
그런데 가만…….
진정 사람들은 '부족해서' 시집+장가를 안 가는가? 정녕?
'부족'은 '누구누구'한테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한테나' 잠재되어 있다. 그리고 누구한테나 때때로 생겨난다. 그건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소위 '결혼의 조건'은 될지언정, 내 삶의 조건이나 기준은 아니다. 나의 '부족'이 누군가에게 민폐만 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난 결코 부족하지 않은 셈이다.
결혼에 입소하는 과정이 개개인의 '부족 요건'을 점검받는 과정도 아니고, 나의 부족함을 상대를 통해 채우려는 과정도 아니다. 뭐가 부족해서 결혼하려는 게 아니듯, 뭔가가 꽤 부족해서 혼자 살아가려는 것도 아니다.
모임을 다녀와 씩씩거리며 등장한 우리 엄마.
"엄마, 너무 씩씩거리지 마요. 엄마 딸 아직 씩씩해요."
저는 그냥 부족한 나 자신을 사랑해 버린, 아니 나의 부족함을 온전히 받아들이느라 충만해져 버린,
씩씩하디씩씩한 딸이니까요.
오늘도 엄마의 절친, 이 큰딸내미는 엄마의 토라진(?) 등을 토닥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