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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Feb 02. 2024

짚신도 짝이 있대

"한번 부담 없이 만나 봐."

내향인인 나에게 '부담 없이'는 참 어려운 감정이다. '일단 한번'이라는 시도조차 상당한 도전에 속한다.


"별생각 없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엄마 생각해서 만나 보기라도 하지 그래?"

결혼이든 연애든 당사자는 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 자신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엄마'나 '아빠'를 생각해서 사람을 만나 보라고 권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정체성이 '비혼'이 되었다. 자의도 타의도 없이 세상에 관한 어떤 저의도 적의도 없이 현재 나는 '비혼' 상태이다. 열렬히 결혼을 거부하며 살아온 것도 아니요, 적극적으로 결혼을 주창해 온 것도 아니다. 이렇게 살다가 누군가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그땐 이 비혼일지 브런치북을 삭제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나도 한창 어릴 때는 친한 친구와 더블데이트 같은 것을 약속하였고, 애라도 낳으면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다니며 시댁 욕도 좀 하는 '보통'의 새댁이 되어 있을 줄로 알았다. 하지만 나는 보통이 아닌 '비보통' 혹은 'no보통'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부서진 짚의 부스러기' 처지가 되었다. 쉽게 말해 '지푸라기'의 처지, 혹은 짚신이 될 위기에 놓였다.


"뭐라고? 주변에 그 나이 되도록 시집도 안 간 사람이 있다고?"

"뭐라고? 주변에 그 나이 먹도록 장가도 안 간 사람이 있다고?"

주변 레이더가 작동하면 비혼이었던 사람들은 얼른 몸을 웅크려야 한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의도치 않게 엉뚱한 '짚신'을 만날 수도 있다.


"아니, 우리 아들 친구 중에 아직도 장가 안 가고 창업한 사람이 하나 있는데 만날 일만 하고 밤에 늦게 들어오고.. 장가갈 생각을 안 한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급기야 우리 엄마의 귓전에까지 흘러들고, 나와 두 살 차이밖에 안 난다는 그 '늙어 가는 노총각'을 만나 보라는 이야기가 '어떤 늙어 가는 노처녀', 곧 나에게까지 흘러 들어오고야 다. 동생네서 조카들과 신나게 야구를 하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엄마의 목소리는 사뭇 상기되었다. 보이진 않았지만 엄마의 볼은 (예비) 맞선 당사자인 나보다도 더 발그레했을지도.


"아니, 네 나이에 선이라도 들어온다는 게 어디야. 그리고 ○ 친구라니까 그래도 자라면서 쭉 봐 왔을 테고 말이야."

어디 이상한 사람은 아니지 않겠느냐는 소리다. 그 말인즉슨, 어디 좋은 구석이 하~~나도 없더라도 어디 이상한 구석만 없다면 그냥 다 괜찮다는 뜻다. 자식 잘되길 바라고, 혼자 늙어가지 않길 바라는 부모님들의 염려는 나도 잘 안다. 아플 때 혼자 아프면 서럽다고, 네 친구들은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 아니 심지어 대학생 아들딸들을 두게 생겼는데 늙어서 외로우면 어쩌겠냐는 것. (내가 좀 정신이 유약해 보여서 많이들 걱정하신다. 나 사실... 살면서 외롭다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나는 엉겁결에 사람들의 기대와 속설, 즉 '짚신도 짝이 있대'라는 예언을 들어주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사람들이 지정해 주어 졸지에 짚신이 된 나. 짚신은 볏짚, 즉 '벼의 낟알을 떨어낸 줄기'로 삼아 만든 신이다. 가는 새끼를 꼬아 날을 삼고 총과 돌기총으로 울을 삼아 만든다고 한다.(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짚신이라고 해서 간단히 만든 신이 아니다. 세로로 놓는 '날'을 기준으로 하여 단단히 낱낱의 신울을 엮는다. 줄기와 줄기가 얼기설기 자신의 최선을 다해 하나의 신을 만든다. 짚신 단 한 짝의 탄생이라 해도 그 과정이 결코 녹록했던 것은 아닐 터다, 



아직, 혹은 앞으로도 짝이 없을지 모를 '나'라는 짚신은, 사람들의 염려를 짐짓 모르쇠 한다. 다 나를 위하는 소리인 줄은 잘 알고 있지만 세상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는 조금쯤 그 각도가 다른 듯하다. '나이만 먹고 장가 안 간 짚신'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주변의 '나이만 먹고 시집 안 간 짚신'과 한 번쯤은 꼭 만나야 한다고, 그래서 두 발에 그 짚신들이 들어맞는지 신어 봐야만 한다고 말한다. 지만 나는 신데렐라가 될 생각도 없고, 평강 공주가 될 필요도 없다.



"언니, 근데 결혼할 생각은 있어?"

"아니. 없는데?"

"그럼 선보지 마. 그 사람은 지금 일을 엄청 많이 하는 사람 같은데 나중에 결혼해서 애라도 생겨 봐, 육아는 여자 혼자 다 해야 하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금요일 밤에나 퇴근할 것 같은데 그럼 결혼한 거나 안 한 거나 똑같은 거 아니야?"

"그러네. 근데 내가 애 낳을 나이는 지났지~"

"내 친구 언니 중에 시집 안 간 언니가 있는데 자기 인생에서 아기는 조카 하나면 족하다고 그런대."

"어. 나도 지금 귀여운 쌍둥이 남친들 있잖아. 나도 내 인생의 아기들은 조카들로 끝이야."

"그런 소리 엄마한테는 하지 말고."

"엄마도 이미 아는데 뭐."

"아무튼 난 맞선 반대. 남자친구 사귀고 싶은 거면 만나 봐도 좋은데 '사람이 좋대~'라는 말은 없었잖아. 그냥 부모님이 장가 안 가서 걱정하는 사람이라고만 하던데 그럼 '장가'만 목적인 것 같은데?"

"그러게. 그런 것 같은데?"


동생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거 뭐, 애 둘 딸린 내 동생이 더 비혼주의자 같은 모양새다. 어쨌든 동생 말에 크게 공감하며 '나'라는 짚신은 단시간 내에 '거절'의 결정을 내리기로 한다. 거절의 명분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이라는 명분이다.


나도 눈치는 있다. 내 나이가 어떤 나이인지는 조금 안다. 이젠 소개팅도 선도 안 들어오는 '나이'이다.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자발적 화살표가 아닌 억지 화살표가 나를 어딘가로 끌어당기곤 한다. 그 화살표의 한쪽은 당연히 N극이어야 하고, 다른 한쪽은 꼭 S극이어야 한다고, 세상은 종종 확신한다. '짚신들' 사이에 숨은 자기장에 어떤 취향과 어떤 가치관이 있는지는 물을 필요도 따질 필요도 없다는 듯이.


아니, 나 혹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짚신이 되어 주었어야 하나?


비혼을 신봉하자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결혼해서 행복하다는 소리를 별로 못 들어 본 비혼에게 너도 결혼을 신봉하게 될 거라는 예언만은 미뤄 주시길 정중히 부탁드릴 뿐이다.



맞선 이야기에 약 10분간 설렜던, 그날의 우리 어머니에게 씁쓸한 위로를 보태며,

오늘도 비혼인 나는 짚신을 벗어 던지고 내게 맞는 운동화로 갈아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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