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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l 17. 2024

스티커병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어쩌면 거의 들러붙어 사는 나는 예전에 지은 동생의 시(?) 한 편에 문득문득 놀라곤 한다.



○○ 씨(=우리 엄마)는
지금 버섯을 다듬고 있다.

봄봄(=나)은 ○○ 씨를 쳐다보고 있다.

○○ 씨는
봄봄이 아직 딸인 줄 안다.

봄봄은 사실..
스토커,
는 아니고 스티커다.

○○ 씨는
아직도 봄봄이 자기 딸인 줄로만 안다.



엄마와 내가 너무 친해서 이를 비판(?)하는 시를 동생이 장난스레 지은 적이 있다. (위에 적은 동생의 글은 토씨 하나까지 정확하지는 않다. 그림까지 얹어서 내게 선물한 시(?)였는데 지금은 어느 창고 구석에 박혀 있을 것 같다.)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사실에 기반한 내용이기도 하다.


엄마와 나는 절친 이상으로 붙어 다닌다. 내가 출근하는 날이면 퇴근 시간에 맞추어 전철역에 나오신다.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때론, 다른 길로 샜다가 내 시간을 홀로 보내고 집에 들어오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장 볼 겸 역까지 마중을 나오시는 부모님 생각을 해서 나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지금' 아니면 언제?

'언제든'이 아닌 바로 지금!



부모님께서 경험도 전혀 없이 가게를 시작하셨을 때다. 친구들은 임용고사 시험이 더 먼저라고 그게 더 효도라고 주야장천 나에게 조언과 충고를 해 주었다. 하지만 결국 난 그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공부, 나머지 날들을 부모님 가게로 가서 가게 일을 도왔다. 늦은 나이에 시작하신 장사였으므로 두 분이서는 버거우셨을 것이다.


가끔은 거기서부터 동생과 나의 운명의 기로가 조금 갈라지고 성공의 기류가 달라진 건 아닐까, 자문했다.

하지만 나는 노력도 운도 부족했다. 동생은 자기 길을 간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이 아니었으니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내 것이 된 것이다.


가끔은 내가 너무 똑똑하지 않아 외려, 되레 다행이라 생각한다. 계산을 잘 못하고 얼렁뚱땅, 우유부단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 모습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이 두 눈에 다 담을 수 있는 자식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면서


오늘도 '스티커병'이 도져서 부모님이 잔기침만 해도 따순 물을 턱 밑에 갖다 바친다.



"이게 행복이지."

이건 아버지의 말. 베란다에는 동생이 가져다 놓은 탁자가 있다. 동그란 그 탁자를 우리는 '차 마시는 탁자'로 지정해 놓고 아침을 먹은 후 그곳으로 이동하여 커피를 아주아주 연하게 내려 마신다. 아버지가 이것이 행복이라고 하신다. 함께 차를 마시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러면서 '나무를 보고 새를 보고 매미를 보는 이 순간이 행복'이라고 말씀하신다.


가끔은 자발적 스티커

가끔은 의무적 스티커.


스티커여야만 하는 시간들이 늘어나지만 아버지의 문장을 빌려 와 나 스스로에게 말해 본다.



"이게 행복이지."


날개를 달고 자신의 꿈을 조금 더 빨리 이루는 자식도 있고

나처럼 아주 천천히 부모님 옆에서 늙어 가는 그런 자식도 있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붙임쪽지(포스트잇) 같은 자식이 옳을 때도 있고

딱풀 같은 자식이 옳을 때도 있다.



어쩌면 이런 '스티커'도 행운이다.

꽤 제법, '스티커'도 행복일 수 있다.


 



추신(의 반전): 위와 같은 글을 써 놓고... 방금 어무니의 바지를 건조기에 돌려서 '사달(?)'이 날 뻔했다. 서로 '미니 으르렁'으로 짜증을 내다가 언제나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란히 앉아 일일드라마를 보려는 중이다. 아, 시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지맞은 우리' 할 시간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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