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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l 16. 2024

아이...시죠?

I입니다

선생님, 혹시... 아이...? 아이...시죠?


여러 사람 앞에서 원맨쇼, 아니 (다른 강사님과) 투맨쇼를 하고 나오던 지난 금요일 오후.

"네. 대문자 아이예요."

나는 이렇게 응답하였다.

"저도 MBTI에서 I인데.. I인 사람끼리 이런 강사 일을 하고 있네요."

우리는 'I'끼리 나눌 법한 멋쩍은 미소를 한 줌씩 나누어 가진 채로 작별인사를 하였다.


학창 시절 친한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을 때는 래퍼 역할도 주저하지 않았고, 복지관에서 일할 때는 청소년들 앞에서 어떤 분장이든 마다하지 않았고, 이모가 된 뒤로는 조카들 앞에서는 동물 흉내도, 온갖 캐릭터 과몰입도 스스럼없었고, 밤늦게까지 가게 일을 하고 돌아오는 부모님 앞에서는 (베란다 밖으로 나가 집까지 길게 걸어오시는 그 시간 동안 덜 심심하시라고) 개다리춤도 추었던 나지만...


하지만 이 모든 '외향적인 자아'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친한 사람들', '익숙한 사람들', '편한 사람들'이라는 전제.


집 밖에만 나가도 부대끼는 대문자 'I'는 누군가와 친해지는 데 심지어 십 년 가까이 걸리기도 하고, 직업에 익숙해지는 데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물론 결코 익숙해지지 않아서 뒤척이는 밤이 길어지기도 한다.)


누가 보아도 '저 사람은 내향적인 I구나.' 싶은 나이기에 나는 아예 대놓고 'I'를 한 개의 정체성으로 내보인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지만 나는 주로 'I'로 출격할 때가 편하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희희낙락 편한 꼴을 못 보는 듯하다. 이 세상은 'I'와 'E'를 뛰어넘어 온갖 성향이 뒤죽박죽 뒤섞인 곳이다.


특히 요즘엔 내 속에 너무 파묻혀 있어 눈에 뜨이지도 않던 외향적 자아 'E'를 자주 끄집어내며 살고 있다. 이 삶과 친해지려면 가끔은 '깨발랄'이 필요한데 한 번쯤 미친 척하고 '발랄'을 내보이고 나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심정이 되어 내 영혼의 밑바닥이 흐트러지곤 한다.


전혀 다른 나였다면 어땠을까?

아니 조금만이라도 다른 나였으면 어땠을까?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입 꾹' 닫는 내가 아니었더라면?


성격을 '고쳐야' 살기 편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렇게 살면 너 혼자만 힘들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지금의 나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건 없었을까?

'이대로의 나'가 이 생에서 쭉 그대로 유지된다면 어떻게 될까?

낯익은 곳에서만 마침내 웃어 보이는 ''이지만 혹, 그런 내가 진짜 나는 아니었을까?


성격을 고치는 일은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다. 다만 '고치기'보다는 '고민하기' 정도로만 나를 괴롭힌 후 다시 'I'로 돌아와 내 방 책상에 앉곤 했다. 돌아와 잠시 숨을 돌릴 내 방이 있었기에, 나는 내 안의 아이('I')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그 책상에서 나의 '아이(I)'는 조용히 책도 읽을 수 있고 일기도 쓸 수 있고 '혼자만의 혼자'를 사랑할 줄도 알고, 이렇게 '아이.. 시죠'라는 글도 쓸 수 있다.



"아이시죠?"

"네. 저는 아직도 아이 같은 i입니다."



당당하지 못할 건 또 무엇인가 싶다. 아직 아이이고 앞으로도 아이일 테니 그것이 나의 주요한 정체성임을 부인하지 않겠다. 나는 여전히 내 안의 '아이'를 사랑한다. I가 내게 준 것이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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