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통화를 한 지인(인삼 보내 드린 분, 어제 글 참조)께서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말씀하신다.
-아니, 너는 여전히 이○진이가? (컬러링을 듣고서 하시는 말씀이다.)
-네~~ "하늘을 날을 수 있을 듯한 밤이다~~~~ 잔요동이~~" (노래를 친히 불러 드렸다.)
-변하질 않냐, 좀 바꿀 수도 있지 않나?
<귀찮아서 다른 사람 안 좋아해요>
-푸하. 귀찮아서 다른 사람을 못 좋아한다고?
-네. 전 원래 그냥 좋아하던 거(?) 좋아하는 게 편해요.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일이 드문 나. 좋아하던 사람을 굳이 놓아 버리지는 않는다. 사랑이 시들해진 것은 아니다. 양은냄비에서 뚝배기로 내 사랑의 그릇을 바꿔 끼웠을 뿐이다.(일 년에 한 번 콘서트를 가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장하다고 여길 만큼, 딱 그만큼의 뚝배기로 팬심을 이어 가는 중이다.) 예전에는 순애보를 쓰는 편이었지만 요즘은 꼭 일편단심, 열렬한 순정파인 것만도 아니다. 알고 보면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부류)'인 편인데도 용케도 오랫동안 최애가 바뀌지 않고 있다.
그렇게 몇 년을 최애와 함께 흐르다 보니 삶의 패턴이 최애의 곡과 함께 흐른다.
봄이 되면 풋풋한 사랑 노래, 가령 '잠깐 시간 될까'나 '청혼하지 않을 이유를 못 찾았어' 같은 노래를 듣고,
여름비가 촉촉이 혹은 축축이 내리는 날이면 '비와 당신(슬의생 ost)'을,
문득 단풍을 느낄 때면 '가을 타나 봐(리메이크, 원곡 '바이브')'를,
저기 멀리서 캐럴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계절이 오면 '에피소드'를 듣는다.
삶에서 새로운 기로에 섰을 때는 '신호등'을,
답 없는 곳을 맴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8번 연습실',
내 욕심으로 삶이 삐걱댄다 싶을 때는 '욕심쟁아'를,
일이 싫어지고 사회에 불만이 생길 때는 '참고사항'을,
하늘을 넘어다 보다 문득 우주까지 궁금해지면 '우주비행사'를,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따르레' 후렴구가 그리워 '휘파람(원곡, 가수 이문세)'을,
하루를 마무리하며 숨을 내어 쉴 때는 '쉼표(무인도의 디바 ost)'를 즐겨 듣는다.
이런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와중에 나에게도 추가곡이 생겼다. 추가곡은 바로 바로 바로~~
01 가면 세계
02 무무의 하루
03 청춘만화(타이틀)
04 별자리
05 우리 둘이서
06 반투명 이방인
최애의 미니 앨범이 나온 것이다. 발매일은 10월 7일. 그래서, 앨범은 샀는지? 아니, 아직 안 샀다.아니 이래 가지고 어디 팬이라고 할 수 있나 싶은데, 11월에 있는 내 생일에 맞춰 최애 앨범을 스스로 선물하고 싶다, 라는 건 조금 포장된 거짓말이고... 아직 '귀찮아서' 주문을 안 했다. (귀찮지만 주문은 꼭 할 것이다.)
아, 그리고 콘서트 티켓팅 이야기를 추가해 본다. 지난번 글에도 올렸듯, 전국 투어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흘려듣고는 서울 예매에 한번 도전은 해 보았으나 실패하였다. 그 뒤로 내 삶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다른 지역 티켓팅 날짜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허, 이럴 수가... 사실, 다른 지역 공연 소식이 올라온 것조차 몰랐다. '귀찮아서' 팬카페에도 잘 안 들어가는 요즘이다.(조금 심하게방만한 팬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귀차니즘'이 때아닌 서프라이즈를 가져다준다.
1.
"응? 뭐야? 이거 내 최애 목소리 아니야?"
주말 드라마가 끝나며 나오는 목소리가 내 최애 목소리다.
2.
<싱크로유, AI 가수와 진짜 가수의 소름 돋는 싱크로율, 1% 차이를 발견하는 뮤직쇼~>
"이런 프로그램이 다 있어? 그럼 가수는 누가 나오려나? 읭? 뭐야? 내 가수가 다 나오네?"
3.
(티브이를 멍하니 보다가..)
아, JTBC에서 서울 마라톤을 다 주최하는구나.. 응? 잠깐만, 뭐지, 익숙한 이 노래는? 앗, 이거 내 최애 노래잖아? 신곡신곡! 구름을 향하는 비행이 망설여지기도 하겠지만 한 번뿐인 이 모험을 겁내진 않아~ 푸르른 공기가 나를 사무친다~ 가득~~~ 청춘만화!!
꼬박꼬박 일정을 챙기지 않으니 일상에서 우연히 최애를 만난다. 우연히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우연한 기쁨은 예정된 기쁨 못지않게 커다랗고 몽글하다.
앞으로도 '귀찮아서' 최애를 바꾸지 않고, 내 최애를 당분간 더 좋아해 볼 생각이다. 전면에 나서서 아티스트를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팬의 마음도 팬심이고, 가끔 귀찮아도 늘 마음만은 뜨거운 열정이 가득하여, 몰래 숨어서 응원하는 이 마음도 팬심이다.
"친구야, 이번에 우리 만날 때 또 코인노래방 가자."
"왜? 최애 노래 부르게?"
"응. 이번에 새 앨범 나왔거든. 지금부터 연습할 거야. 너 만날 때까지."
"그래, 나도 투바투(투모로우바이투게더) 노래 연습해야겠다."
자식들이 코인노래방 가서 최애 노래 부를 나이에 나와 친구는 직접 선택한 최애의 곡으로 마음껏 한 평 남짓 코인노래방을 누빌 생각이다.
나는 아무래도 내 최애를 '아직은' 좀 많이 좋아하나 보다.
딱, 내 일상을 귀찮게 할 그만큼~~
컬러링과 벨소리를 주기적으로 최애 목소리로 바꾸고 싶을 딱 그만큼~
카톡 프로필에 뜬금없이 최애를 올리고 싶을 딱 그만큼~~
<추신. 사심 담아 노랫말 소개 및 유튜브 링크 첨부>
멈추지만 않으면 도착해 한 번뿐인 이 모험을 겁내진 않아
안녕이란 인사 뒤에 나올 음악 시간은 흘러서 이건 명장면이 될 거야
지나면 아련한 만화 그래서 찬란한
우리가 기다린 미래도 우릴 기다릴까
푸르른 공기가 날 사무쳐 안아 하늘을 날을 수 있을 듯한 밤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을 향해서 뛰어오르자
<청춘만화> 일부
우리가 기다린 미래도 우릴 기다릴까 (청춘만화, ㅇㅁㅈ)
(부디 이 글을 보는 모든 이의 미래가 길을 잃지 않고 우리를 제대로 마중하러 와 주기를...)